블레어, 보수당 손잡고 '교육법안' 통과
    2006년 03월 16일 0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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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집권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보수당의 데이비드 카메론 당수의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당 내에서 심각한 내분을 야기했던 블레어 총리의 교육개혁법안이 보수당의 지지를 받아 15일(현지 시간) 열린 하원 본회의에서 1차 심의를 통과한 것이다. 찬성 343표, 반대 115표.

이날 하원의 1차 심의를 통과한 교육개혁법안은 현재의 공립학교를 민간에게 위탁해 이른바 ‘트러스트학교’로 전환시키고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업체, 자선단체, 종교기관, 대학 및 학부모, 지역사회 등이 트러스트학교의 운영을 위탁 받아 지방정부의 통제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위탁기관은 지방정부로부터 학교건물을 양도받고 교직원 채용권한, 자산운용 권한 등을 갖는다.

또 트러스트학교는 신입생 선발절차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으며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우월반을 편성할 수도 있다. 사립학교들도 자체 결정에 따라 트러스트학교로 전환할 수 있다.

현재까지 영국의 중등학교는 우리의 학군제와 유사하게 인근의 학생들을 배정받는 공립학교와 별도의 전형절차를 거쳐 학생들을 선발하는 사립학교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법안이 시행되면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사이의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

지난해 10월 루스 켈리 교육부 장관이 이같은 내용의 교육개혁안을 담은 ‘중등교육개혁백서’를 발표하자 노동당 내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노동당의 좌파의원들은 블레어 총리의 교육개혁법안이 그의 신자유주의적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경쟁을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거나 “민간부문이 공공부문보다 효율적”이고 “정부나 공공역역의 규제는 되도록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는 등의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등교육 개혁법안에 반대하겠다는 좌파의원들이 1백여명을 넘어서자 당지도부는 표단속에 나섰다. 지난 2월에는 이안 맥카트니 당 의장이 ‘분당’을 경고하면서까지 입단속을 했다. 맥카트니 의장은 노동당의 참패로 끝난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유권자들이 당내 불화를 용납하지 못한 결과”라며 “한줌밖에 안 되는 의원들이 야당과 협력해 노동당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야당과 협력한 것은 블레어 총리를 비롯한 노동당의 우파 지도부였다. 법안표결 직전까지 하원의원들의 반대가 쉽게 잦아들지 않자 블레어 총리는 보수당의 카메론 당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노동당의 내분을 흐믓하게 지켜만 보던 카메론 당수는 표결을 앞두고 블레어 총리와 지난달 28일 만난 자리에서 “노동당 하원의원의 반발이 계속되면 법안이 완화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교육 시장화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보수당으로서는 블레어 총리에게 확고한 법안 추진 의지가 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블레어 총리가 “결코 그럴 일은 없다”고 답하자 보수당은 협력을 약속했고 결국 논란을 벌여온 교육개혁법안은 하원의 1차 심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블레어 총리에게 이번 법안 심의 통과는 결코 승리가 아니었다. 블레어 정부에서 각료를 지낸 7명을 비롯해 노동당 하원의원 52명이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은 총리의 당내 위상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반란표를 던진 존 맥도웰 하원의원은 블레어 총리가 “사실상 노동당 지도부에서 물러난 것”이라며 블레어 총리를 1931년 보수당, 자유당과 손을 잡고 거국내각을 구성한 노동당 최초의 총리 램지 맥도날드에 비유했다.

한편 영국 언론은 노동당이 앞으로 남아있는 법안의 2차 심의 통과를 위해 보수당과 더욱 협력할 수밖에 없어 블레어 총리의 정치적 위상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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