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노동운동, 타산지석의 경험
    [책소개] 『일본 노동 정치의 국제 관계사』 (나카키타 고지/ 후마니타스)
        2017년 11월 18일 11: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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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일본 전후 정치의 구도가 확립된 결정적인 시기, 즉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50년 총평 결성, 1954년 전노 발족을 거쳐 IMF-JC(국제금속노련 일본협의회)와 동맹이 결성되고, 고도 경제성장이 절정에 달했던 1964년까지를 다룬다.

    패전국 일본을 접수한 맥아더 점령군 사령부의 노동정책, 한국전쟁으로 촉발된 냉전 구조 심화의 영향, 세계노련과 국제자유노련의 대립 속에서 격화된 일본 노동운동의 내부 갈등, 미국의 정권 교체에 따른 대일본 노동정책의 변화 및 미국 행정부들 사이 및 그 내부의 온건 좌파와 강경 우파의 갈등,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거대 노조들의 일본 노동운동의 향방을 둘러싼 각축전, 자민당 정권과 경단련을 중심으로 한 총자본의 노동 포섭 전략 등 국제적·국내적·구조적·정세적 요소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며 빚어낸 일본 노동 정치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냉전과 노동조합
    : 냉전의 또 다른 전선이 된 자유주의 진영 노동조합의 역사

    1990년 3월 7일 AFL-CIO(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노조회의)의 국제부장이자, 통합 이전 AFL의 대외 활동 조직인 ‘자유노동조합위원회’의 사무국장이었던 제이 러브스톤이 소련 붕괴를 목전에 둔 채 사망한 뒤, AFL-CIO의 조지 미니 기념문서관과 스탠퍼드 대학교의 후버 연구소에서 그의 개인 문서들이 공개되었다.

    그에 따르면 AFL의 자유노동조합위원회는 1949년부터 1958년까지 지속적으로 CIA의 자금 지원을 받았고, 그 총액은 (당시 노동조합의 자체 자금과는 비교되지 않는 큰돈인) 46만4,167달러에 달했다. 그중에서 일본에서의 활동에 들어간 돈은 6만6,902달러였다. 거액의 CIA 비밀 자금이 냉전 시기 내내 러브스톤 등의 손을 거쳐 일본 노동계에 흘러들어 반공 공작에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냉전 시기 미국의 외교에서 노동조합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자유주의 진영의 노동조합은 ‘철의 장막’에 더해 냉전의 또 다른 전선이 되었다. 만일 조직노동자들이 매우 주변적인 세력에 불과했다면 공산주의가 침투한다 해도 냉전의 구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겠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은 사회의 모든 방면에서 커지고 있었다. 물론 노동조합의 이런 득세는 동시에 그 제도화와 온건화를 수반하는 것으로, 의회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자본주의의 개혁을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가 많은 나라에서 다수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특히 전쟁 직후의 시기에는 불안정했다. CIA의 비밀공작은 그런 상황 속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 미국의 무역 정책은 ‘은폐된 보호주의’인가, ‘공정한 글로벌화’에 대한 요구인가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건 트럼프가 ‘녹슨 지대’(Rust Belt)로 불리는 중서부 지역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모아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를 결정하고,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도 표명하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상황도 맥락을 같이한다. 유럽에서는 같은 해 6월 영국이 국민투표로 EU(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이처럼 배외주의적인 반세계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 각국에 약육강식의 시장 원리를 강제하고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잘못된 비판은 아니지만, 이 같은 현상의 역사적 연원은 깊다. 빈부 격차가 크다고는 해도, 미국의 노동자는 세계적으로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또 노동조합도 꽤 강력해, 전국 조직인 AFL-CIO는 민주당의 최대 지지 단체로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 정부는 국제 공정 노동 기준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임금과 노동조건 향상을 세계 각국에 요구했다. 낮은 노동비용으로 만들어진 타국 제품이 자기 나라의 산업과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상세히 서술되는바, 냉전의 영향 아래 지금까지 작동되고 있는 서방측의 정책 방향은 일본에도 오랫동안 적용되어 왔다. 1955년 일본이 WTO(세계무역기구)의 전신인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에 정식 가입했을 때, 아이젠하워 정부가 일본 정부에 최저임금제 도입을 압박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케네디 정권은 일본의 저임금을 시정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임금 공동 조사를 요구했다. 그리고 현재 일본 최대의 전국 중앙 조직인 연합(連合)의 결성으로 귀결된 노동 전선 통일을 후원했던 것도 일본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국제 노동운동의 중요한 전략적 목표는 기업 주도의 글로벌화에 대항하기 위해 WTO를 비롯한 다자·양자 무역협정에 공정한 노동 기준(사회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이며, 특히 ILO(국제노동기구)의 핵심 노동 기준이 중시되고 있다. 미국의 AFL-CIO는 이에 열심인 노동조합 중 하나이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은폐된 보호주의’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바닥을 향한 경쟁”을 일으키고 있는 글로벌화라는 조건 아래 세계 각국은 국제경쟁력을 유지·강화하고 외국의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경쟁적으로 낮추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맞서고자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자국의 산업과 일자리를 지킨다는 시도는 공정한 글로벌화에 대한 요구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사회민주주의를 선택할 수 있는 중간의 공간
    : 국내적·국제적 행위자로서 새롭게 자리매김되는 노동조합운동

    냉전하에서도 미국은 일본에 다양한 압력을 가했고, 따라서 일본에는 보수 지배가 아닌 다른 정치적 선택지도 존재했음을 이 책은 밝힌다. 물론 미국은 자민당 정권을 지원하고 재계가 주도하는 생산성운동도 후원했다. 중립주의를 내건 총평을 분열시키려는 공작도 진행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킬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그 일환으로 중립주의자들을 포함한 노동 전선 통일을 지지했다. 이를 기반으로 서방측 지향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결성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미국, 특히 민주당 정권하에서 미국이 일본에 가한 압력은 사회민주주의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만 그런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앞장서서 사회적 덤핑을 비판해 온 영국은 정부와 노동계가 일체가 되어, 일본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통일된 전투적 전국 중앙 조직이 결성되도록 뒤에서 지원했다. 국제자유노련 및 국제금속노련을 위시한 국제 산별 조직들, 그리고 미국의 CIO와 영국의 TUC(노동조합회의) 등도 모두 같은 방침이었다.

    미국 정부의 대일 정책에 편중된 기존 연구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영국을 포함한 영미 정부들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세계 각국의 총연맹이 가입한 국제자유노련, 각국 산별노조들로 구성된 국제 산별 조직 등)까지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냉전 시기에 일본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이 책에서는, 특히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선택하라는 압력이 이 시기 일본에 가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서방측 입장에 서서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면서도 노동자의 생활수준 개선을 강력히 추진하는 전투적·통일적 노조 총연맹을 지지해 그것의 성립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의 사회민주주의적 외압은 미국으로부터도 주어졌다.

    이 책은 미국의 대일 정책에 관한 통상적인 인식, 즉 점령 정책의 전환 이후 미국은 보수 세력을 육성하는 데 전념했고, 그에 따라 자민당 정권이 장기 지속할 수 있었다는 인식은 수정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 기초해 1945년 패전부터 고도 경제성장이 절정에 달했던 1964년까지 일본의 노동조합운동을 국제 관계사의 맥락에서 재해석함으로써 국내적·국제적 행위자로서의 노동조합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하는 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

    출간 의의

    “일본 노동운동의 경험은 여전히 여러 점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 관문 역할을 해주기를 기원한다. 성공으로부터 배우기는 쉽지만, 그것은 자칫 실용과 편의주의를 낳기 십상이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그 고통은 반성과 각오로 이어질 수 있을 터이다.”_옮긴이 후기 중에서

    이 책은 일본 전후 정치의 구도가 확립된 결정적인 시기인 1945~64년의 20년 동안 일본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노동정책에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 기구와 미국 노동조합(AFL-CIO), 국제 산별 노조 등 여러 행위자들이 참여한 국제적 노동 정치의 과정을 다루며 그 정치적·경제적 의미를 살펴본다. 주로 일본 및 해외(주로 미국과 영국)의 노동 자료 아카이브에 보관된 1차 원자료를 치밀하게 수집해 분석했는데, 2008년 국제학술지인 노동사(Labor History Vol. 49, No.2)에 같은 주제로 발표한 논문이 2009년 ‘최고 논문상’을 수상할 만큼 그 학술적 성과와 의미를 인정받은 바 있다.

    또한 이 책은 역자인 임영일 선생이, 일본 노동운동의 과거·현재·미래를 총괄적으로 다룬 일본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2009), 전후 일본 노동 정치를 총평과 사회당을 중심으로 분석한 일본 전후 정치와 사회민주주의(2016)에 뒤이어, 세 번째로 번역·출간하는 일본 노동운동 소개서이기도 하다.

    역자는 한국의 노동운동은 앞으로 일본과 유사한, 혹은 일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노동운동 전선 재편의 요구에 점점 더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냉전 체제의 질곡과 미국 주도 동아시아 질서로의 편입, 뒤늦은 산업화와 압축적 경제성장, 노동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과 국가주의적 통제의 유산,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 단위의 파편화된 노동 체제 등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노동운동은 다른 대륙 어느 나라의 노동운동과도 다른 특징들을 공유해 온 만큼, 우리보다 한발 앞서 일본이 겪은 성공과 실패의 역사는 타산지석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노동운동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노동 정치의 성과를 되돌아보며, 더 나아가 국제 연대 노동운동의 주변부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노동운동이 변화하는 국제적 정치경제 정세 및 국제 노동에 상응한 원칙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를 고민할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용 소개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50년 총평의 결성, 1954년 전노의 발족을 거쳐 IMF-JC와 동맹이 결성된 1964년까지를 분석 시기로 한다.

    제1장에서는 우선 AFL 출신의 제임스 킬렌이, 이어 CIO 출신의 발레리 부라티가 총사령부 노동과를 주도해 공산당의 노조 지배를 뒤집으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총평의 중립주의화로 귀착된 과정을 밝힌다.

    제2장에서는 다카노 미노루가 이끄는 총평이 더욱 좌경화하던 가운데, AFL과 아이젠하워 정권이 전노의 결성을 지원해 생산성 프로그램을 개시했으나, 오타·이와이 라인이 등장했음에도 총평의 중립주의 노선이 계속된 과정을 분석한다.

    제3장에서는 중립주의를 채택한 총평을 둘러싸고 한편으로는 아이젠하워 정권과 AFL,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정부와 국제자유노련, 국제금속노련, CIO, TUC 등이 대립하고 있었으나, 일본의 국제경쟁력이 강화되고 미·일 무역마찰이 격화됨에 따라 후자의 입장이 점점 강화되고 국제 공정 노동 기준 개념이 대두한 과정을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케네디·라이샤워 노선이 등장한 이후 IMF-JC의 결성과 전노(이후 동맹)의 국제자유노련 일괄 가입으로 일본의 노조운동에서 서방 지향의 기반이 구축된 과정을 해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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