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 ‘문화의 전당’
    [낭만파 농부] 세상에 공짜는 없다
        2017년 11월 17일 12: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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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창으로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쬔다. 오늘 아침 수은주는 0 아래로 쑥 내려갔다. 좀 억울하지만 ‘초겨울’이라 해야 마땅한 날씨. 바깥은 쌀쌀하지만 깊숙이 들어온 햇볕 덕분인지 방안은 따뜻하다. 저만치 울긋불긋 물든 앞산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오후의 한나절이 느릿느릿 흐르고 있다.

    농한기. 이제는 덤덤해진 이름이지만 한때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더랬다. 아니 그걸 기다리는 맛에 농사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바쁘지 아니하여 겨를이 많은 때’, 뜻 또한 얼마나 착착 감겨오는가. 농사일에서 해방돼 거침없는 자유를 누리는 시절.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마음이 넉넉하니 몸도 느긋하고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사실 거둬들인 건 보잘 게 없다. 부치는 논배미가 줄어든 데다 작황도 탐탁지 않아 지난해보다 소출이 줄었다. 그러나 저러나 가을걷이는 다 끝났고 첫 방아도 찧어 여기저기 나누고 싸전을 열었다. 갖가지 영농비를 갚아야 하는 부담이 남아 있지만 줄곧 해오던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니 마음은 집시, 홀가분하게 누릴 기대에 부푸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역마살이 끼어서 훌쩍 떠나는 걸 동경하지는 않는다. 그저 ‘일탈’이랄까, 일상과 규격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다닐 수 있으면 그만이다.

    물론 내가 짓는 농사라는 게 사람을 얽어매거나 짓누를 만큼 무겁지는 않다. 이른바 쌀 전업농, 벼농사만 짓는다. 봄에 볍씨를 넣어 가을에 거둬들이는 반년 농사다. 그 나머지 반년이 농한기인 셈이다. 소득 대신에 ‘자유’를 선택한 결과다. 만약 소득을 선택했다면 얘기가 많이 달라졌겠지. 축산, 시설채소, 특수작물… 돈 된다고들 하는 작목이다. 사시사철 가축에 얽매이고, 작물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분야다. 농한기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고소득의 압박에서 벗어나 철따라 농사지으면 한결 겨르롭게 마련이다. 농사철이라 해도 농번기를 빼면 일에 쫓기는 일이 별로 없다. 농번기의 그 바쁜 틈마저 없애버리는 것이 바로 농한기다.

    어제 밤에는 읍내 카페에서 음악공연이 펼쳐졌다. 가야금 산조와 25현금의 현란한 가락, 그리고 3인조 밴드의 정통재즈. 그야말로 아름다운 선율이 가을밤을 수놓았더랬다. 공연 뒤풀이에서는 늘 그래왔듯 와인이 제공된다. 나처럼 촌스러운 주당들은 따로 소주며 맥주를 준비해두지만.

    이런 식의 문화공연은 내가 이 곳에 자리 잡을 즈음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음악공연뿐만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이름 짜한 이들의 초청강연도 줄을 잇는다. <음주가무>니 <생활 속의 인문학>이니 그 새 내걸어온 문패는 바뀌었지만 공연(강연)과 와인파티(뒤풀이)라는 콘셉트는 여적 그대로다. 다들 자그마한 면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공연실황을 전한 SNS에 달리는 댓글은 하나 같이 “(개)부럽다”.

    흔히 시골살이의 단점으로 ‘문화적 소외’를 꼽는데, 실은 정반대가 아닌가 싶다. 단언컨대 문화적 삶은 시골 쪽이 훨씬 풍요롭다. 기회가 적고, 선택의 폭이 적을 뿐. 기회가 많으면 뭐하나? 선택할 여유가 없는데. 선택의 폭이 적기 때문에 더 욕구가 높고, 기회가 닿는 대로 누리는 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촌로’는 서예에 심취하고, ‘촌부’는 에어로빅에 열광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동네에 문화의 꽃이 만발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문화도시’ 전주와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도 분명 있다. 하지만 전주와 가깝다고 다 이렇지는 않다. 여기보다 더 가까운 읍면이 쌔고 쌨다. 다 그만한 역량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내가 ‘읍내 카페’라 일러온 커피점. 커피와 음료를 파는 가게지만 그 실체는 이 동네의 문화 중심지라 할 만하다. ‘서쪽숲에 네발요정이 내린 커피’라는 숨넘어가게 긴 상호를 달고 있어 사람들은 보통 ‘서쪽숲’이나 ‘네발카페’로 줄여 부른다.

    나는 소득 대신에 내 자유를 좆지만, 여기는 이윤보다 ‘사회공헌’을 중시하는 무척 이타적인 곳이다. 어제처럼 공연이나 강연이 잡힌 밥에는 눈물을 머금고 장사를 접는다. 공연뿐 아니라 전시공간으로, 강연장으로 읍내 카페는 이 동네 ‘문화의 전당’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이 동네를 다녀간 적 있는 한 친구는 ‘커피보다는 문화행사를 우아하게 파는 곳’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핵심은 카페라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괜찮은 공연과 강연, 전시를 할 예술가, 작가를 데려와야 한다. 그거 아무나 못 하는 것 상식이다. 그걸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이들이 이 동네에 있다는 얘기다. ‘재능기부’라는 형식으로 그것이 이루어진다. 더 길게 쓰지 않겠다. 읍내카페에 오면 그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좋은 예술가와 작가를 ‘모시려면’ 돈이 들게 마련이다. 아쉽지만 아직은 행사 주최 측이나 동네사람들이 그 비용을 모두 감당할 깜냥이 못 된다는 것. 해서 행정기관에 기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가끔 ‘자유’보다 ‘고소득’에 끌리기도 한다.

    지금보다 소득을 더 늘리려면 내 사전에서 농한기를 지워야 한다. 사실 지금보다 조금 더 벌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당장 졸리지는 않지만, 새로 집을 짓느라 생긴 빚도 빚이고, 애들이 커 갈수록 늘어날 비용도 맘에 걸린다. 여기에 여럿이 함께 누리는 삶까지.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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