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위 최초 진보정당 지역조직 만들다
    2006년 04월 03일 01:15 오전

Print Friendly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 1번지…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 설악산 대청봉 역시 선거구이다. 한계령 아랫마을 오색리, 구룡령 아랫마을 갈천리, 조침령 아랫마을 서림리… 땅군이건, 심마니건, 다 유권자이다. 마을마을 흩어져 살아 양양읍, 서면, 강현면까지 무려 68개 리가 하나의 선거구이다보니, 정신없이 하루가 지난다.

2004년 7월, 민주노동당 속초고성양양지구당 준비위원회가 발족할 당시, 양양군의 당원은 2명밖에 없었다. 어떻게 분회모임을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는데, 단 두 사람이라도 매달 셋째주 목요일이면 꼭 만나기로 했었다. 분회 모임이라봐야 셋이서 술이나 한잔 하는 정도였지만, 다음달, 그 다음달, 그리고 1년이 지나자 무려 60명이 넘는 당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힘을 바탕으로 2005년 7월, 민주노동당 양양군위원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38선을 넘어 만들어진 최초의 지역조직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말이다.

   
 
▲ 2005년 7월 양양군위원회 창립대회. 2004년에는 2명에 불과했던 양양군 당원이 1년사이 무려 60명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김동일 위원장의 발품팔이가 한몫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김동일 위원장.
 

김동일 양양군위원회 준비위원장. 맨 처음 양양에서 만난 두 명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춘천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95년도에 고향에 내려왔다고 했다. 군청 옆에 작은 컴퓨터가게를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듯, 셔터를 내리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학습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슴에 품은 뜻과는 다르게 지역의 정서는 그를 옥죄였다.

작가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지리산 인근의 사회주의자들만 다루었지만, 설악산 부근의 사회주의자들은 한국전쟁 당시 거의가 월북을 했다. 국군과 인민군의 치열한 대치가 끝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일제시대 사회주의자였던 그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요새는 예비후보가 되어 명함 한통을 들고 마을마을 다니고 있다. 남편을 잃은 그의 할머니는 ‘민주’자는 빼버리고, ‘니 노동당하면 안돼’라며 손자를 극구 말렸다고 하는데, 그 역시 할아버지처럼 옳다면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원래, 양양군은 영동권에서 최초로 3.1 만세운동이 벌여졌던 곳이었다. 이 때 당시, 무려 18명이나 젊은 청년들이 죽어나갔었고, 영동지역 최초의 농민운동 역시 낙산사 부근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분단이 진행되고, ‘반공’이라는 국시 아래 저항이 억눌러지면서, 이 곳 사람들은 숨죽인 채 살아야했다.

그의 활동은 작년 4월 양양에 대형산불이 일어났을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산불이 발화한 화일리부터 시작해서 감곡리, 기정리, 정암리, 용호리, 적은리, 조산리 등 10개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눈물과 울분으로 이재민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양양산불범국민대책위’을 조직하고,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아 낮밤으로 뛰었다. 여야 보수정당 모두 생색내기로 일관할 때, 직접 주민들을 조직한 것이다. 산불피해에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낙산월드의 상인들이 ‘상가대책위’를 만들 때도 김동일위원장을 찾았다.

   
 
▲ "대청봉에 희망을" 민주노동당 양양군 위원회 김동일 위원장이 오는 5월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후보로 나섰다.
 

산불피해 이후 양양군 최초로 주민발의 조례제정운동이 벌어졌다. 이 운동의 진원지 역시 김동일위원장에서 비롯되었다. 제대로 된 보육시설 하나 없는 양양에서 1,000명이 넘는 군민들의 서명을 받아낸 것이다. 장날이면 농협앞에 서명대를 펼치고, 사람들의 손을 이끌어 펜을 들게 했다. 아마도 4월 중순이면 군의회에서 최초로 보육조례가 통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 밖에도 전농이 없는 지역의 농민운동가이기도 하다. 쌀 협상이 통과되어도 움직이지 않는 농민들에 대한 불만으로 쌀협상 무효 군청 앞 1인 시위를 벌이고, 북한수역에 중국어선이 들어와 한탄만 하고 있는 어민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보니, 그는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 반대만 일삼는 자로 낙인찍혀 버렸다. 더구나 이번에는 산불피해지에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반대투쟁에 앞장서 있다. 후보고 뭐고, 옳다면 하는 거지, 눈치보려고 민주노동당 할려면 왜 하냐며 또 인근 주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설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사람에 치이지 않고, 설악산과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산 사람들이라 태생자체가 참 순박하다. 이 좋은 날, 선거운동이라니…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