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伊 베를루스코니 “나 인터뷰 안해!”
        2006년 03월 13일 04: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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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달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밀라노 검찰에 의해 부패혐의로 기소되는 등 궁지에 몰린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지난 12일(현지 시간) 국영방송사 RAI의 TV 시사프로그램에서 사회자와 격론을 벌이다 자리를 박차고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날 RAI의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 루치아 아눈치아타가 진행하는 “30분 동안”이라는 이름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20여분만에 퇴장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비판적인 아눈치아타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와 최근의 언론개혁법안에 대해 공세적으로 인터뷰를 하자 “당신이 내 대답을 요구하면 나는 퇴장하겠다”며 준비한 자료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에 사회자가 “질문은 내가 정한다. 총리께서는 언론인의 질문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대꾸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당신은 편견에 빠진 좌파 인사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줬다”며 “좀 부끄러워 할 줄 알라”는 독설을 퍼부으며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베를루스코니는 아직 무선마이크가 옷에 달려 있는 줄도 모르고 스튜디오 밖에서 “그러고도 나더러 RAI를 지배한다고 말하지”라며 코웃음을 쳤고 RAI는 이 말까지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다.

    민영방송사 3개를 소유하고 있는 이탈리아 최대의 갑부인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끄는 우파연합 ‘자유의 집’은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로마노 프로디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좌파 ‘연합’(L’Unione)에 3.5% 포인트 차이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4월 9일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이처럼 야당에 뒤지는 것으로 조사되자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최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방송사는 물론 국영방송사의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해 지지율을 역전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와 프로디가 맞붙는 텔레비전 토론이 두 차례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으로 베를루스코니의 미디어 전략에는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다. 이탈리아 전역에 방송된 이날 해프닝에 대해 프로디측은 “총리가 14일 있을 토론에서는 퇴장하지 말길 바란다”며 조롱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날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을 받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베를루스코니로서는 매우 불리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또 이날 인터뷰에서는 베를루스코니의 언론통제도 도마에 올랐다. 국영방송사 RAI의 지배구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언론개혁법안은 이탈리아 정가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1년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집권한 이후 이탈리아는 “서유럽에서 언론이 가장 자유롭지 못한 나라”라는 치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실명을 거론하며 불쾌한 심사를 밝힌 후 몇몇 언론인과 시사 풍자로 유명했던 코미디언의 방송출연이 봉쇄된 바 있다.

    이라크전과 언론통제, 그리고 최근의 부패혐의로 궁지에 몰린 가운데 치러지는 다음달 총선은 그동안 승승장구해왔던 베를루스코니에게 최대의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좌파정당 연합체 ‘올리브나무동맹’에 재건공산당, 이탈리아공산당, 녹색연맹 등이 참가한 ‘연합’은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해진 이번 선거에서 집권을 자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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