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지배층의 속마음?
    '말' 아니라 '일'의 실제를 살펴야
        2017년 11월 15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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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직업상 한 가지 재미없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게 돼 있습니다. “코리아학”(한국학)을 가르쳐야 하기에 양쪽 코리아의 공식 문서들을 계속 읽어야 되고, 그 내용을 소화해서 강의 때에 언급해야 합니다. <로동신문>의 논설도 잘 챙겨 읽지만, 동시에 한국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문들도 읽고, 나아가서 홍석현 등 한국 지배층 핵심인물들의 발언도 하나하나 챙겨 읽습니다.

    물론 이런 “공식 언설”에 대한 고찰은 전혀 무의미한 건 아닙니다. 수사의 변화는 많은 경우 정책 변화와 연동돼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공식 언설에서 “단일민족”은 약 2003~4년쯤 사라졌는데, 그 때에 국제결혼, 즉 결혼이민자 수가 막 오르고 있었을 때고 거기에다 고용허가제 도입 과정이 시작되기도 했죠. 즉 “단일민족” 이야기를 폐지하면서 노무현 정권이 동화 대상인 결혼이민자와 단기 착취와 축출의 대상인 외국인 남성노동자들의 수용을 제도화하려 했던 것이죠.

    그런데 언설은 늘 “바른 말” 위주로 돼 있고 늘 되도록이면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방식으로 짜입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국민적 화두가 됐기에 연설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꼭 언급되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해결되는 것도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 지배층(대자본의 주요 대주주, 고급 임원, 고급 관료 등)의 “진짜 의도”를 알려면 저들의 “말”보다 저들이 하는 “일”을 관찰하는 게 아마도 더 유의미할 듯합니다. 일단 지배층이 공식 언설에서 자주 사용하는 두 핵심어와 그 핵심어하고 관련된 그 “속마음”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다문화”

    계속 들리는 단어 중 하나지만, 실제 한국 지배자들이 원하는 것은 동화정책의 대상이 될, 그리고 앞으로 납세자나 군인으로 살 (금일 법률상 외관상 식별 가능한 혼혈인들은 병역 의무에서는 제외되지만 이는 조만간에 바뀔 셈입니다) 평민 남성들을 낳을 여성 결혼 이주자와 단기적으로 착취 당하고 그 다음에 본국에 떠날 남성 노동자들일 뿐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하면 실제 이민/이민자 관련 정책의 내용을 보면 됩니다. 국고 자금을 비교적 많이 쓰는 것은 결혼이주자(대다수는 여성)의 동화에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한국어 강습 같은 겁니다. 동시에 (주로 남성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정주/정착은 물론이거니와 가족 동반이나 심지어 직장 이동마저도 불허하는 고용허가제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바뀔 전망도 없습니다.

    한국어 구사능력이 있고 “성실 근로자”로 인정받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재입국이 한때 가능해졌지만, 요즘 이 통로도 막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성 외국인 근로자는 원칙상 길어야 한국 땅에 4년 10개월 정도 체류할 수 있게 돼 있죠 (3년은 기본, 1년 10개월은 최장연장).

    “다문화, 다문화”라고 하지만, 한국 지배자 입장에서는 “말을 제대로 들을”지, 즉 통치 대상으로서 수월할지 알 수 없는 외국인들과 진짜 공존공생하는 건 “통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일로 보인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문화” 언설과 무관하게 한국은 여전히 이민법상 가장 배타적인 사회들의 대열에 속합니다. 한국보다 더 배타적인 나라를 찾자면 아마도 일본쯤일 겁니다.

    “통일”

    통일이란 헌법에서부터 법제화돼 있습니다.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나오죠. 그러니까 대놓고 “통일이 필요 없다”라고는 그 어느 대한민국의 고급공직자도 공석에서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말이야 늘 “통일”이 들어가고 북한 관련 일을 보는 부서도 “통일부”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즉 정책적인 통일 준비는 지난 9년 동안 없다시피 했습니다. 햇볕정책 시절에는 통일 준비 중에서는 유일하게 경협을 어느 정도 시도했는데, 그것도 비교적 미약한 규모이었습니다.

    남북 무역이 가장 번창했던 2007년에도 북한의 전체 대외무역 중에서는 남북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38%에 불과했으며, 반대로 중국과의 교역은 40% 이상이었습니다. 남북 무역은 북한의 중국과의 무역보다 양이 더 많은 경우는 한 해에도 없었죠. 경협도 미약한 레벨이었지만, 그 이상의 시도, 즉 예컨대 쌍방 군축에 대한 교섭이라든가, 남북한 군대 사이의 신뢰 구축이라든가, 이산가족의 상시적인 서신왕래의 제도화라든가, 아예 해본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햇볕정책 기간이 끝나고는 경협마저도 2015년 이후에 거의 실종한 듯한 상태죠. 한국의 공공교육 제도 속에서는 북한 관련된 교육 내용은 대단히 단편적이며 또 매우 남한 중심적 입장에서 짜여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북맹”, 즉 북한을 모르고 관심도 잘 없는 사람들을 키우는 정책을 집행해온 관료들은 과연 한국의 미래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요? 북한 지도층과 타협하고 그쪽에도 일정한 양보를 하고 파트너로 삼는 “노력”보다는 그저 외세의 “보호”(?) 속에서의 오늘날과 같은 분단 상태를, 저들의 배타적인 기득권 유지 차원에서 더 나은 것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다문화”나 “통일”을 들먹여도 한국 지배자들이 실제로 신경 쓰는 것은 기득권 유지와 통치의 편리, 그리고 물론 자본의 축적과정 정도인 듯합니다. 한데, 저들의 “말”들을 그대로 믿어주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도 당연하게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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