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고 회동, '동상이몽 정치의 끝'
        2006년 03월 13일 01: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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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고건 전 총리의 12일 회동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서 열린우리당은 현재의 지도부를 중심으로 오는 지방 선거를 치뤄내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정 의장과 고 전 총리의 회동을 계기로 정책과 노선에 대한 고려없이 인물과 계파 중심의 이합집산을 전제로 지루한 줄다리기를 거듭하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요된 만남, 예고된 결렬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고건 전 총리는 12일 만남에서 ‘연합’에 대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둘은 다음 만남도 약속하지 않고 헤어졌다. 이번 회동으로 양측의 이번 지방 선거 연대는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는 사전에 충분히 예상됐다. 내심으로는 양측 모두 ‘연대’를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둘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구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로부터 지지율이 높다. 정치적 기반이 겹치는 두 사람은 보완재보다는 대체제에 가깝다. 한 쪽이 커지면 다른 한 쪽이 줄어드는 관계다.

    그렇지만 서로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정 의장으로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 ‘최선’의 내용에는 자신의 유력한 대권 후보 경쟁자인 고 전 총리와의 연대도 포함된다. 여기서 자칫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사심’때문에 선거 승리라는 ‘대의’를 그르쳤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앞으로 남은 대권가도에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

    고건, 열린우리당 적당히 ‘깨져주는’ 게 좋아

     고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고 전 총리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적당히 ‘깨져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 선거 패배로 여당 내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흐름이 형성되면 정치적 운신의 폭이 한결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이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마냥 즐기면서 바라볼 수도 없다. 열린우리당 당원과 지지자의 인심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알맹에 없는 추상적 대의의 공유, 아마도 이 정도가 양측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공히 요구하는 ‘연대’의 최대치였을 것이다.

    양측의 회동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핵심 당직자가 "구체적인 합의는 힘들 것"이라며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인식의 공유정도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한 것도 이 같은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열린우리당, "고건 반응 예상했던 대로"

    이날 회동에서 정 의장은 "2년전 오늘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있었던 날"이라며 "참여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만큼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자신이 주장해 온 중도 실용주의와 개혁세력연대론은 정략적 차원의 연대와는 다르다"며 "이번 선거에서 정당 차원의 연대는 하지 않겠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정 의장측 핵심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이기기 바란다, 는 추상적 수준의 언급만 있었어도 반한나라당 연대 전선을 넓게 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고 전 총리의 단호한 거부 표시에 당혹감을 드러내면서도 "당초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도 "고 전 총리의 이런 반응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정동영 당의장은 13일 오전 최고위원 회의에서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로서 도움을 주기를 바랬지만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다"면서 지난 전당대회 때 주장했던 선자강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는 고 전 총리측과의 연대 결렬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현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번 선거를 치뤄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열린우리당이 이번주부터 강도 높은 민생 방문 일정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근태 쪽, "이제 정의장 살신성인해야"

    물론 이런 기류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당내에 존재한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김근태 후보측 대변인을 지냈던 우원식 의원은 "헤어지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 만나기 위한 만남이 되어야 한다"면서 이후 지속적인 연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또 정의장이 고 전 총리와의 연대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제껏) 노력했다기보다는 (앞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지방 선거 승리를 위해 당의장이 살신성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세력이 광범위하게 규합되어야 한다"고 말해 이후에도 당내에서 고건 전 총리측과의 연대를 위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언론 정치공학 쫓아다니며 보도하는 것도 문제"

    한편 정 의장과 고건 전 총리의 12일 회동을 계기로 인물과 계파 중심의 이합집산을 전제로 논의되고 있는 각종 ‘연대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이들이 연합을 하건 안 하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이들의 연합론이)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장하는 것에 불과할 뿐 서민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또 정 의장이 평화세력, 개혁세력의 연대를 말하는 것에 대해 "이라크 파병에 찬성해놓고 평화세력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가진자를 위한 개혁은 한 적이 있을지 몰라도 고통받는 자를 위한 개혁은 한 적이 없다"면서 "좋은 말을 가려 써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 우리 정치는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이나 대안, 비전을 가진 세력이 중심이 되지 못한 채 정계개편 등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을 도모하는 세력이 주도해왔다"면서 "언론이 이런 정치공학적 이슈를 의도적으로 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의원은 또 "평화, 개혁, 실용 등 이들이 내거는 캐치프레이즈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평화, 실용, 개혁 등 추상적인 구호들이 구체적인 수단으로 뒷받침되지 않을 때 이미지 정치를 위한 공허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미지 정치로는 실질적으로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참여정부는 똑똑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연구실장은 "정책이나 정체성에 기반한지 않은 채 인물과 계파 중심의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과거의 정치 행태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열린우리당과 고 전 총리측의 정책적, 이념적 연대 가능성에 대해 한 실장은 "정책과 이념의 같고 다름을 말하려면 각자의 정책과 이념이 분명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양측 모두 각자의 정책과 정체성이 모호하고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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