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바람 부는 날에는 육회
    [밥하는 노동의 기록] 취학 통지서
        2017년 11월 15일 08: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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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겨울 어느 날 저녁, 반장 할머니가 집으로 찾아와 큰 아이의 취학 통지서를 주고 가셨다. A4를 가로 세로로 한 번씩 접으면 나오는 크기의 종이를 나는 꽤 오래 들여다보았다. 나도 정규교육을 착실히 받았지만 막상 아이의 취학통지서를 받고 나니 고작 햇수로 꼭 채워 여섯 해를 산 아이를 데려다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일까 마음이 복잡했다.

    내 마음과는 별개로 친족들과 친구들은 책상이며 가방이며 옷을 선물로 보냈고, 큰 아이는 선물 받는 일은 좋은 일이겠거니 설레며 입학식을 기다렸다. 입학식이 있던 날, 큰 아이는 나에게 먼저 갈 테니 엄마는 동생이랑 나중에 오라고 말했다.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무사히 도착해 입학식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었다. 어미의 걱정이란 것이 끝을 모르는지라 제대로 찾아갔다는 안도에 앞서 저렇게 노는 애가 수업시간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일은 어떻게 하려나 싶었다. 둘째 때는 좀 더 끼고 있고 싶은 생각에 학교를 보내고 싶지 않아 홈스쿨링을 알아보다가 친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둘째 성격이 홈스쿨링과는 전혀 맞지 않아 포기했다.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둘 다 학생이라 할 만하고 나도 학생의 보호자이니 학부모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끔 그런 호칭이 몸에 맞지 않게 느껴진다. 그나마 초등학생은 ‘어린이’라고 불러주지만, 10대 중반부터는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학생’으로 뭉뚱그려 부르며 ‘학생의 본분’을 강요한다.

    그 학생의 본분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현령비현령인지라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연애를 하면 안 되고 옷을 단정히 입어야 하며 화장을 하면 안 되고 비싼 물건을 몸에 지녀서는 안 되며 파마나 염색을 하면 안 되고 어른을 공경하고 하여튼 공부 빼곤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말 정도로 알아들으면 된다. 얼굴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를 하라는 말은 매우 기이하다. 여드름 때문에 공부가 안 된다면 학생을 탓할 것이 아니라 여드름을 해결해주면 될 것 아닌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모두 쓸모없다 여기지는 않는다. 어쨌든 정해진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삶에 도움이 된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든 끈기는 소중한 자산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정규교육 과정 안에 있는 동안 꼭 그런 태도만은 배웠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은 외면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제 운이 나쁘면 백 살 넘어서 죽는 유병장수의 시대에 한창 피가 더운 사람들을 매일 모아놓고 가르칠 것이 삼각함수나 5형식 영어문장, 만연체 간결체만 있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으로서 혐오에 대처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을 함께 배워야 학교 졸업 후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욱 풍요롭겠다. 대학만 들어가면 다 해결된다는 거짓말은 제발 이제 그만하자.

    마지막으로 나는 항상 교복 위에 코트를 입지 않거나 검은색 스타킹만을 신는 것이 학생의 본분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계속 궁금한 채로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났는데 우리 딸이 가게 될 중학교에선 아직도 그런 교칙이 있는 모양이다. 이번엔 그 상관관계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애들이 그 동안 육회가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찬바람이 불면 해주겠다 약속했는데, 마침 이름도 붙은 날이겠다 싶어 장만했다. 학생의 날 특식 육회, 깍두기, 연근조림, 청국장, 보리수수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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