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체들의 귀환,
    새로운 메시지는 늘 ‘외진 곳’에서 온다
    [아트살롱] 미술과 여성② – "페미니즘과 예술"
        2017년 11월 10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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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과 여성1 – 존재를 부정당했던 존재, 여성

    미술계에서 오브제에 불과했던 여성‘들’이 오브제를 거부하고 역사(History)를 어긋나게 하기 시작했다. 역사를 어긋나게 한 그들의 행동에 처음부터 새로운 주체의 등장이라고 이름을 붙이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역사를 어긋나게 한 사고뭉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이가 대신 이름을 붙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긋남과 주체화의 사건 사이에는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을 주체로 선언할 수 있는 기존의 자원들(언어, 지식, 가치, 환경 등)이 부족할뿐더러, (캐롤 길리건의 돌봄의 여성성처럼) 스스로 정체성을 정립했다고 해도 여전히 남성의 그늘이 드리워진 경우도 있다. 객체 또는 타자였던 존재가 주체의 자리로 진입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비체(abject)의 전략이었다. 이념이나 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인 비체는 남/여, 주체/타자의 이분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저항의 힘‘들’로 귀환할 수 있는 존재자들이었다. 덕분에 비체는 특정 정체성에 고착되지 않아도 되고, 동시에 자신의 잠재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다. 이 잠재성의 발현은 각각의 비체마다 다를 테니, 문화적 다양성을 생산하는 모태가 될 수 있다. 이 다양성으로 남성중심주의라는 허구적 중심을 터뜨려 버릴 수도 있다. 미술계 역시 이 비체(abject)들이 귀환하기 시작했다.

    레더멘 유켈레스의 미술관 청소하기

    1973년 밀 레더맨 유켈레스(Mierll Laderman Ukeles)라는 작가는 갑자기 미술관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미술관이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단절된, 중립적 감상의 공간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미술관은 여전히 사회적 맥락과 연관되어 있는 공간이며, 대부분의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청소노동을 통해야만 미술관이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독립된 중립적 공간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 미술관은 정작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이 없으면, 미술관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미술관은 철저히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이라는 사회적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며, 따라서 결코 사회적 맥락과 분리된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메시지에서 공식적으로 삭제되어 있다. 유켈레스의 퍼포먼스는 1) 미술관의 사회적 맥락 의존성과 (제도미술비판), 2) 삭제된 여성노동의 흔적을 복기(페미니즘적 실천)하려는 이중의 실천이었다.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는 이 작업이 있은 후 6년 후 등장한다는 점에서 유켈레스의 작업은 선구적이다. 수잔 레이시는 이러한 영향사의 끝에서 등장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레이시는 페미니즘 미술을 새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라는 새로운 고안물과 연결시켰는데, 새장르 공공미술은 마을 벽화로 대표되는 공공미술의 관성을 넘어,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그 참여로 인해 완성되는 예술작업을 실현시키는 사조였다.

    이를 위해 중요한 방법이 바로 ‘대화’와 ‘기록’이다. 발화하지 못했던 여성들을 예술이라는 공적인 영역에 참여시키고, 그들의 사적 이야기들을 펼쳐냄으로써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소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여성주의적 정치 슬로건을 예술을 통해 실현해 냈던 것이다. 비체들이 스스로 역사에 균열을 내고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를 위해 레이시의 작업을 간단히 살펴보자.

    1970년대 중엽 작가이자 이론가인 레슬리 라보위츠와 협업한 것이 레이시의 작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77년 라보위츠는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레이시의 대작 <5월 3주간(Three Weeks in May)>의 극장 이벤트를 담당했다. 이 작품은 로스앤젤레스의 강간사건에 대한 3주간의 조사와 항의 시위를 담은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둘은 몇 년 동안 공동으로 작업한다. 같은 해 후반기에 이 둘은 <애도와 분노 속에(In Mourning and in Rage)>를 제작한다. 이들은 함께 일하면서 행동주의 이벤트를 기획하였고, ‘아리아드네: 사회적 네트워크(Ariadne: A Social Network)’라는 조직도 결성한다. 이는 예술계와 언론계와 정부에서 일하는 여성들 중 페미니즘에 헌신하는 여성들을 결집시키는 사회조직이자 네트워크였다.

    레이시의 작업은 1982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한다. 레이시에 따르면, 정치에 관여하는 페미니스트 퍼포먼스 작가들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페미니스트 서클 밖의 사회적 변화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위해 정교하게 관람자와 소통하는 방식을 만들어나갔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198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거대한 작품 <정지화면: 거실을 위한 공간(Freeze Frame: Room for Living Room)>을 기획한다. 샌프란시스코 국제연극제가 의뢰한 이 작업은 고가의 우아한 가구 전시장에서 행해졌고, 여기에 참가한 여성들은 다양한 주제로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 대해 이야기 했다. 관람자들은 그들 주변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레이시는 평소 잘 들을 수 없던 여성들의 사적 이야기를 공적 장소로 등장시켰다.

    정지화면: 거실을 위한 공간(Freeze Frame: Room for Living Room)

    이후 로스앤젤레스의 집으로 돌아간 레이시는 지역사회에서 강력한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약 3년을 보낸 후, <속삭임, 물결, 바람(Whisper, the Waves, the Wind)>을 제작한다. 문화적, 인종적, 계급적 배경이 다른 60세에서 98세에 이르는 150명 이상의 여성들이 흰옷을 입고 라 호야(La Jolla) 해안의 흰 탁자보가 씌워진 테이블 앞에 둘러앉았다. 거기서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천 명의 관객들이 사전에 녹음된 여성들의 음성을 들으며 이를 지켜보는 작업이었다.

    속삭임, 물결, 바람(Whisper, the Waves, the Wind)

    유사한 작업은 <속삭임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이 작업은 미네아폴리스 시내의 필립 존슨 빌딩 내부의 유리로 덥인 넓은 중정에서 진행되었다. 여기서 일종의 살아 있는 퀼트가 만들어졌다. 일명 <크리스털 퀼트> 작업이다. 이 작업은 4백 명의 검은 옷을 입은 고령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퀼트를 발코니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했다. 관람자들은 위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면서 몇몇 연기자들이 나누는 대화의 음성, 수잔 스톤의 깨끗한 목소리, 인디언 부족과 캄보디아 몽족의 노래, 천둥소리, 새들의 지저귐이 짜깁기 녹음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크리스털 퀼트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레이시는 자신들의 차이, 공통점, 생존, 지혜를 축하하는 여성들의 거대한 모임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 작업은 참가자와 관람자들에게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크리스털 퀼트>에서는 나이 든 여성들의 몸과 정신과 삶,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방식 등, 노인 여성들에 집중했다. 크리스털 퀼트는 여성에 대한 상징적인 암시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테면 레이시가 사용한 색이 그렇다. 북서부 유럽과 남서부 아시아에서는 여성의 삼위일체 즉 처녀, 어머니, 노파 또는 창조자, 보호자, 파괴자의 일체성을 색으로 나타내곤 했다. 흰색은 처녀, 붉은색은 어머니, 검은색은 노파를 상징했다.

    레이시 <크리스털 퀼트>에는 이 색이 적극 사용되었다. 이로서 레이시의 작업은 오래된 전설과 신화와 제의들 사이의 무의식적 유사성을 보인다. 여기서 레이시는 나이든 여성과 숭배적 가치를 연결시킴으로써, 여성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여성에 대한 존중을 이끌어 내고자 했다. 이를 통해 레이시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의 저장소인 나이든 여성이 미국 사회에서 잘 활용되지 않은 자원임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이다.

    여성+세대의 문제에 대한 레이시의 관심은 이제 인종+여성의 문제로 확장된다. 레이시는 1987년 수잔 스톤, 앤 브레이, 위로우 영, 캐롤 힙키와 협업하여 <다크 마돈나The Dark Madonna>를 연출한다. 레이시는 1년 간 지속적으로 타민족 여성들 간의 관계들을 탐색하면 세 개의 퍼포먼스를 연출했는데, 이 작업은 그 마지막 작업이었다.

    UCLA에 있는 프랭클린 머피 조각공원에서 흰옷을 입은 50명의 여성들이 좌대 위에서 정지 자세를 취한 채 서 있다. 여기에 모인 약 2천명의 관람자들은 인종과 관련된 여성들의 경험이 담긴 목소리를 스피커로 듣고 있다. 해가 저물자, 검은 옷을 입고 정원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흰색 의상을 입은 ‘조각상’(여성) 위로 검은 옷을 덮으며 쏜살같이 사라졌고, 다른 조각들은 입고 있던 흰 겉옷을 천천히 떨어뜨려 검은 색의 옷을 드러냈다. 15개 팀으로 무리지어 정원의 각 코너에 있던 검은 옷의 사람들이 손전등을 들고 정원을 가로질러 갔고, 사운드 트랙에는 이 여성들의 투쟁적인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무리들은 손전등으로 서로의 얼굴을 비춰 가며 인종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다크 마돈나

    사실 프랭클린 머피 조각 공원에 있는 70여 개의 조각품들 중 54개는 남성상이고, 5개는 여성상이다. 그 정원에는 스스로를 재현하는 노년의 여성, 흑인 여성, 아시아계 여성, 여성 장애인, 아이들을 동반한 여성, 임산부 등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래서 <다크 마돈나>는 대중적이고 반영웅적인 면모를 띠고서, 유색 인종 여성들의 실제 경험과 몸을 수단으로, 그 영역을 침범한 작업이었다. <다크 마돈나>는 대중들과 함께 백인 남성의 공적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1993년 수잔 레이시는 시카고에서 <풀 서클(Full circle)>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연다. <<행동하는 문화: 시카고에서의 새로운 공공미술(Culture in Action: New Public Art in Chiago)>>의 비공식적 출발을 알리는 이벤트로 진행된 전시였다. 레이시는 100개의 돌덩어리에 시카고에서 기억할 만한 여성들을 기리는 기념패를 새기고 이 돌은 시카고 거리에 전시했다. 이 전시를 위해 여러 여성위원회가 설립되었고, 기념할 만한 100명의 지역 여성을 지명하고 선정했다. 여성 위원회는 작업과정에서 작품의 완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풀 서클(Full circle) 전시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낮춤으로써 관객이 작품에 부드럽게 개입(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위원회와 선정된 100여명의 인물은 시카고 거리에 젠더 감수성을 공적 이슈로 등장시켰던 것이다. 동시에 레이시는 이 전시를 통해 공공의 참여와 상호작용, 행동하는 사회운동가로서 미술가의 역할을 시험하려 했다. 이들은 작품에 대한 단순한 관람의 형태를 극복하고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지향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가 실내에서 벌어진 여성의 파티라고 한다면, 레이시의 작업은 시카고 거리를 여성을 위한 상징적 만찬의 장으로 바꿔 버렸다. 비체들이 이제 미술관 내벽을 뚫고 공공의 장소로 진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에 대한 억압과 혐오는 여전하다. 레이시는 일찍이 <레이디와 양 혹은 염소와 노파(The Lady and the Lamb or The Goat and the Hag)>라는 작업을 한 바 있다. 레이디와 양은 기독교식 표현이며, 노파 혹은 마녀라는 뜻의 Hag는 그리스어인 하기아(hag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는 신성한 자라는 뜻이다.(터키의 소피아 성당의 영어식 이름이 하기아 소피아이다.) 그러나 동시에 hag라는 단어는 이교도의 마녀 또는 현대의 페미니즘적인 의미를 연상시킨다. 레이시의 다양한 작품들에 등장한 아이언 우드(Iron Wood) 부족의 hag는 독일 신화 속의 신으로 색슨 족과 덴마크의 부족이 숭상하던 여신이었다. 그리고 염소는 프랑스의 마녀재판 기록과 관련된 것으로 마녀의 연인인 악마가 염소로 위장했다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나이든 여성이 어쩌다 마녀가 되었을까? 실제로 중세 마녀 사냥 기간 중 가장 많이 죽은 사람이 홀로된 노파였다고 한다. <크리스털 퀼트>로 귀결된 그녀의 작업은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뒤집으려는 노력이었다. 굳이 <크리스털 퀼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레이시의 작업은 모두 여성 젠더의 문제로 묶일 수 있다. 레이시의 전략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1) 이런 주제는 장문의 공적 연설이 아니라 개인의 단편적 대화로 표현되었고(공적 서사 vs 사적 에피소드), 2) 공원에 기념되는 영구적인 기념비가 아니라 잠시 있다 사라지는 일회적 퍼포먼스로 표현되었으며(영구성 vs 일회성), 3) 수동적인 관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작품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귀 기울이며 스스로 참여하는 민주적 작품으로 등장했다(권위성-수동성 vs 민주성-참여성). 여기서 발생하는 경험은 4) 획일적이고 일관된 경험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된 경험의 다양성을 제공한다(획일성 vs 다양성). 이를 위해 5) 미술관이라는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 바깥이라는 개방된 공간이 필요했다(폐쇄성 vs 공개성).

    덕분에 레이시의 작품은 기존의 미술 작품과 ‘다르게’ 말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경험을 제공했고, 다른 장소에 펼쳐졌다. 이는 최종적으로 기존의 미술 ‘제도’에 변형을 가했으며, 기존의 사회적 지평(남성중심적 사회)을 바꾸기 위한 촉매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인종, 나이, 지역 등을 초월하여 여성이라는 억압된 이슈를 공적인 영역으로 지속적으로 진출시키려 했던 레이시의 입장은, 페미니즘 미술의 진전(사회적 변화)만이 아니라, ‘새장르 공공미술’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제도 미술의 변화)했던 것이다.

    새로운 메시지는 늘 ‘외진 곳’에서 온다. 레이시는 이 새로운 메시지를 받아낸 일종의 샤먼이었다. 그러나 레이시는 스스로 마녀를 자처한다. 샤먼에 대한 호의적 시선과 달리, 마녀는 늘 비난과 악의적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한국처럼 여성 샤먼이 존재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샤먼들이 남성이다. 그렇다면 마녀는 늘 여성의 차지였다. 치료자로서의 남성 이면에는 여성의 힘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려는 전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레이시의 작업은 터부시된 마녀에 대해 주목하게 하면서, 여성들의 힘을 마녀의 힘이 아닌 샤먼의 능력으로 되돌려놓으려는 주술이었다. 어쩌면 레이시 자신은 스스로 마녀를 자처하면서, 남성중심의 성벽을 뚫고 비체들을 공적 장으로 소환시키려 했던 ‘새로운 샤먼’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직 도래할 마녀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필자소개
    민주시민교육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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