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저자세의 배경
    [중국매체로 중국읽기]아베·트럼프
        2017년 11월 08일 0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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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일본 수상 아베는 왜 트럼프를 만날 때마다 그렇듯 저자세를 취하며 ‘한없이 낮아지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복잡한 미·중·일 삼각관계를 보게 되며, 이것은 물론 한반도 정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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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구시보 사설>  

    아베가 트럼프를 꼭 껴안지만, 눈동자는 북경을 본다.

    2017-11-07 01:05:00 (현지시각)

    도쿄를 방문 중인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6일 일본 수상 아베와 회담을 가졌는데,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쌍방은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한도로 높일 것과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양-태평양’ 구상의 실현을 확인했다고 한다.

    트럼프와 아베가 논의한 ‘인태 구상’이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지는 현재 분명하지 않는데, 도쿄 측은 얼마 전 미국·일본·호주·인도 4국의 전략 대화 기제를 다시 끄집어내면서 트럼프 방문 시에 논의할 것임을 내비쳤었다. 트럼프 측은 6일 일본의 이처럼 분명하게 중국을 겨냥하는 제안에 대해 어떤 태도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미일 관계가 전성기에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매우 긴장되어 있고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아베가 미일 관계의 긴밀성을 강조할 때는 예의상 인사치례가 아니라, 정말로 대외적으로 자랑하고 싶어 참을 수 없을 정도인 것처럼 보였다.

    이치로 따지자면 미일 동맹은 서로간의 필요에 따른 것인데, 그러나 지금은 일본이 미국에 대한 일방적 필요와 동정을 받는 셈이 되고 있다. 트럼프 측 앞에서 아베와 각료들은 감히 당당함을 드러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트럼프는 주인 면전에서 매우 직설적으로 미일 무역불공정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일본이 충분히 개방적이지 못하다고 하였다. 아베의 허리는 아마도 역대 일본 수상이 미국인 면전에서 구부린 것 중 가장 낮은 것이었을 것이다.

    사실 일본은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지만, 도쿄는 이 모든 카드를 잃어버렸을 뿐이다. 일본이 미국을 향해 초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그 근원을 찾자면 중국과의 전략적인 우호관계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대치는 도쿄에 커다란 압력이 되었으며,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가 아무리 긴밀해도 부족하다고 느끼게끔 되었다. 이리하여 워싱턴이 끊임없이 자신을 꼭 껴안아 주기를 바라면서, 끊임없이 굳은 맹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 혹시나 중국 역시 반성할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일본인들이 놀라서 저러는 걸까?

    이미 ‘최절정’에 이른 미일 관계는 다음과 같은 교환의 논리를 형성하고 있다. 즉, 일본은 미국에 경제적 이익을 많이 양도하고, 미국은 최대한도로 일본의 지역정치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이 교환에 있어 분명 미국 측의 수확은 더 실제적이며, 일본 측의 수확은 주요하게는 심리상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이 그렇게 생각처럼 불안하지 않다는 데 있다. 중국은 일본을 공격할 수 없으며, 또 북한이 일본 영토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진짜 우려할 만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한국과 비교할 때 일본의 안전성은 훨씬 더 높으며, 그러한 한국조차도 일본에 비해서는 적지 않게 여유로워 보인다.

    중국의 각도에서 보자면 일본의 불안감은 얼마간 납득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줄곧 그것을 의심스러워하는 중국의 학자들이 있게 되었다. 그것의 많은 부분은 쇼라는 것이며, 최소한 일부 일본의 엘리트들에게 있어선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의 불안을 강조하는 것은 현 평화헌법을 수정하는 동원력으로 전화될 수 있으며, 이는 일본이 군사·외교에 있어 지금처럼 워싱턴의 통제를 받는 조건하에서 일종의 복잡하긴 하지만 그러나 최종적으로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는데 유리한 정치적 게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 천황은 6일 트럼프에게 겸손하게 “일본의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많은 부분 미국의 원조덕택이다.” 라고 감사를 표하였다. 그렇지만 천황의 이 말을 많은 일본 엘리트들은 내심에선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본은 미국에 대해 줄곧 애증이 교차하며, 그들의 미국관은 사실은 중국에 대한 생각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게 뒤얽혀있다.

    일본은 근대 이래로 줄곧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서 시행착오를 겪어 왔는데, 매 시기에 따라 다른 각도에서 사람들을 분노케 하였으며, 그중에는 배울 점도 있는 반면 탄식을 자아내게도 만들었다. 일본은 지금 미국의 전략적 도약판이 되었지만, 또한 옮겨 갈 수 없는 중국의 이웃이기도 하다. 중일 간에는 서로 간에 대단히 뿌리 깊은 선입견이 존재하며, 이 선입견은 미국이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 중의 하나이다.

    중·미·일은 전략적 大 삼각형은 못되지만(주: 지구 차원의 전략적 삼각형은 미·중·러 삼국 관계를 지칭한다), 그러나 일종의 삼각관계 체계를 형성한다. 이 체계에서 미국이 가장 주동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일본은 최소한 표면상으로 볼 때 미국에 기울어지는 식이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피동적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동과 피동의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약화되었음을 보아야 한다. 미일 동맹은 줄곧 존재해 왔지만, 그것이 실제로 중국을 억제하는 작용은 일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다.

    중국인은 아마도 앞으로도 상당기간 일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중일 간의 애증 관계에 빠질 필요는 없다. 또 미일 동맹의 군사·전략적 의미를 가지고서 일본과 미국 및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우리의 전체적 인식을 덮을 필요도 없다. 일본은 아마도 외곬로 파고들길 계속할 것이지만, 우리는 마땅히 그보다는 좀 더 높은 곳에 서있어야 한다.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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