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베를린에 간
    한국의 진보 동네 구의원
    ‘복지와 노동’ 둘러싼 싸움이 핵심
        2017년 11월 07일 01: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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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은 두 번째다. 더 정확히는 베를린에 두 번째 갔다. 두 번 모두 정치발전소라는 ‘정치(교육)집단’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이었고, 이번에는 ‘독일 총선 기행’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참 잘 짜였는데 독일 정당정치의 ‘전통의 강호’ 기민당과 사민당을 직접 만나고, ‘스팩터클’한 정당 녹색당과 좌파당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나. 그것도 선거 한복판에서 말이다.

    독일 정치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노동조합’을 만나는데 ‘독일노총’과 자동차산업을 포괄하는 독일 최대의 ‘금속노조’를 만난다니 가슴이 설렌다. “나도 코리아에서 금속노조 조합원입니다” 라며 뭔가 막 들이대고 싶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다들 양복들 입고 ‘로비스트’의 모습으로 나오셨는데 이들이 건네주는 정치적 입장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정치전문가가, 또는 독일정치에 관심이 좀 있다는 사람들이 꼽는 이번 총선의 관전 포인트는 AFD(독일을 위한 대안)의 충격적 등원과 그 이유, 메르켈의 장기집권(이에 비례하는 반 메르켈 정서), 기민-사민 연정의 운명, 동독지역의 표심 등등 되겠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관전 포인트들은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다 정리해 주었다. 내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그저 동네 구의원, 현실 정치인의 눈에서 인상 깊었던 순간을 정리해 남기고 독일정치를 통해 얻은 한국정치에 대한 영감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선거는 역시 포스터.

    길거리를 다니며 포스터를 보았다. 구글 번역기의 위력을 실감하며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있었다. 인상적인 포스터는 세 가지 였다.

    AFD 선거포스터

    ‘부르카? 우리는 비키니를 좋아한다’

    극우정당 AFD의 포스터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 뒷모습을 걸어놓았다. ‘부르카’는 이슬람 여성옷이다. 내가 볼 때 가장 선명한 정치포스터였다. 물론 동의한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이들이 내건 또 다른 포스터는 ‘독일 아이는 독일인이 낳자’였다. 이들 포스터 옆에는 ‘FUCK’ 같은 욕들이 쓰여 있는 것도 많았고 우리가 만난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그들의 등장 자체를 치욕스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번 선거에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12.6% 득표. 94석이라는 충격적인 성공으로.

    자유민주당과 좌파당의 포스터

    ‘우리는 우파와 싸우기로 결심했다’

    디링케. 독일 좌파당의 슬로건 중 하나. 이번 독일 총선에서 핵심 중의 핵심은 AFD였다. 어차피 메르켈의 집권은 거의 정해져 있었고 별다른 이슈도 없었다. 반이슬람주의, 이민정책을 선봉으로 극우정치를 표방하는, 그래서 때로는 신나치로까지 비유되는 AFD의 원내진출에 이들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과 지지자들이 전선을 그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좌파당’의 슬로건. 이번에 20% 득표로 역사적으로 보면 ‘몰락의 충격’을 겪은 사민당보다는 훨씬 나은 슬로건을 보인다. 사민당의 슬로건은 ‘정의로운 사회’다

    자유민주당 포스터

    ‘섹시한 슈트빨’ 자유민주당

    자유민주당은 노선도 정책도 명확하지 않았다.(물론 따지고 들면 친시장주의 친기업 노선이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포스터를 내걸었다.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포스터 슬로건은 기억이 안 난다. 사진만 기억난다. 총리 후보 린트너는 모델 화보급 포스터로 관심을 받고 동시에 욕을 먹었다. 결과는 나름 성공이었던 듯. 노선도 정책도 여전히 각광받지 않았지만 4년 만에 다시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그것도 무려 80석. 슈트빨, 흑백화보빨로 치부하면 독일 유권자들이 섭섭할 수 있겠지만 하여튼 성공적인 포스터였던 건 분명하다.

    위 3개당과 더불어 녹색당까지 모두 4개당이 10% 내외의 득표를 얻었다.

    “이건 대연정이 가져온 후폭풍이다. 한때 좌와 우에서 40~50%의 지지를 받으며 이념과 노선을 이끌던 기민당, 사민당 두 당이 연정을 해 버리니 유권자들의 선택은 다양해지고 극단적(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이 됐다.” 이번 선거를 평가해준 예나대학 렘백 교수님의 말이다.

    렘백 교수의 독일 총선 평가

    노동조합 방문… “나는 로비스트” “슈뢰더는 꼰대”

    ‘나는 로비스트다’ 독일금속노조를 방문했을 때 우리를 맞아주신 상근자의 말이다. 그는 정당과 국회의원에게 노동조합의 요구와 정책을 설명하고 국가정책에 반영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진짜 로비스트다. 금속노조에는 6명의 로비스트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측(기업측 로비스트)는 수백 명이라고 했다. 1당100 로비스트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만난 노동조합은 ‘독일노총’과 ‘독일금속노조’였는데 맞아준 분 두 분 모두 사민당 당원이었다. 상층 간부들은 사민당과 디링케 당원들이 많다고 했고, 조합원들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것 중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대연정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

    한 분은 개인적으로 ‘대연정’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개인적 의견에 상관없이 ‘대연정’이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에게 나쁘지 않다고 했다. 본인들의 정책적 목표를 사민-기민 연정 집권당을 통해 반영할 수 있고, 이 속에서 더 많은 권리들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 그 와중에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 주는 두 조합원이 속해있고 연정 집권당이기도 한 사민당은 지지율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고 결과적으로는 20% 득표로 ‘몰락’ 했음에도 말이다.

    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아젠다 2010 – 소위 ‘하르츠개혁’>에 대한 거부감이다.

    아젠다 2010은 간단하게 말하면 사민당 슈뢰더 정부가 2003년부터 시행한 ‘복지축소-노동유연화’ 정책인데 우리가 방문한 곳에서 이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 ‘회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추진했던 사민당 소속 슈뢰더 전 총리에게는 ‘원래 늙은이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던 사민당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추진한 것은 독일 사회에서 특히 사민당 지지자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이는 사민당 지지자들의 이탈로 이어졌으며(여기까지는 이미 선거 지표로 검증됐다) 그 후과는 이후에도 계속될 꺼라고 했다. 도저히 회복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고민을 주었다. 한국 정치에 주는 의미도 크게 느껴졌다.

    독일노총과의 만남

    아젠다 2010 – ‘하르츠 개혁’과 사민당.
    그리고 한국 정치의 두 번째 기회, 그 성패는 어디에? 

    세상이라는 게, 정치라는 게 무조건 단순화할 수만은 없다. 물론 외국 사례가 그대로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번쯤은 비교해보고 영감을 얻을 만하다. 그래도 멀리 독일까지 다녀왔으니 거기서 얻은 영감을 한국 정치에 적용해 봐야하지 않겠나.

    이번 독일 총선 기행을 통해 한국 정치에 관한 몇 가지 영감을 얻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민당의 몰락은 사민당 집권 시기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진보-개혁 세력(민주세력)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유연함은 어디까지인가?’ ‘절대로 선택하지 말아야 마지노선은 어디인가?’ 하는 고민이 당연히 들었다.

    한국에서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말이 부적절할 수도 있지만 대략 이명박근혜 정부에 저항했던 민주세력? 정도로 통칭해 보자

    독일은 아젠다 2010-하르츠개혁을 통해 2000년대 후반부터 경제에 있어 수치적 개선을 이루었다. 한때 몰락 직전이었던 독일 경제는 지금 다시 유럽을 이끄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여기에 이 개혁이 주효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내겐 다른 면이 보였다.

    ‘그나마 믿었던’ 사민당 정부가 실시했던 ‘복지축소-노동유연화’가 노동조합, 진보적 유권자 등 전통적 사민당 지지층에게 끼친 충격이 컸고 <실망감 – 탈정치화 – 분절적 급진정치화(심지어는 사민당 지지에서 극우파로)>로 이어졌다. 이는 다시 독일 사회·정치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사민당의 경향적 몰락 – 보수정당의 장기우위 – 극우파의 성장(비슷하게 극좌파도 성장할 수도 있다)으로까지 이어졌다.

    독일 노총 조합원들의 역대 투표 성향 분석(구 동독과 서독 지역의 차이가 뚜렷하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만난 김상국 박사님은 ‘사민당의 존폐 위기’까지 언급했다. 이제 다시 다가올 경제위기에 ‘그나마 믿을수 있는’ 정당이 존재할까? 사민당이 빠진 자리를 채울 좌파정당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이번 총선결과 범우파(전통적 보수+극우+친기업 시장경제 = 기민당(CDU), 독일을 위한 대안(AFD), 자유민주당(FDP)) 득표율 합계는 60%에 가까웠고 사민당-좌파당-녹색당 득표율 합계는 40%도 미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소위 ‘그나마 믿었던 민주 정부’에서 세계경제의 위기 시기에 경제의 수치적 개선을 위해 ‘복지축소-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기반을 스스로 해체했던 때가 있었다. 그중 한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나서 자신의 그러한 ‘실책’을 공개적으로 후회하기도 했다.(특히 비정규직 등 노동유연화와 관련해서) 그 이후 장기적인 보수의 집권이 이어졌다.

    보수정당의 집권 시기 민주당, 진보정당들은 활로를 뚫지 못했다. 흩어진 지지기반은 다시 모이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이라는 사건이 우연히 드러나기 전까지 우리는 ‘새누리당 50년 집권플랜’ 이런 이야기기까지 들어야만 했었다. 기억나지 않는가?

    여기까지는 어찌보면 <독일 사민당 집권 – 아젠다2010 – 집권당의 몰락과 상대 정치세력의 팽창>이라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대한민국은 다시 기회를 잡았다. 최순실로부터.

    뭐 역사가 원래 그런 건지도, 우연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지만 1년 전 ‘새누리당에게 또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충분히 가능했고 그 가능성이 꽤 컸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말 그대로 ‘기사회생’, ‘다시 기회를 잡은’ 것이다. 반 보수(?^^) 민주세력이 말이다.

    사민당의 유세 장면

    좌파당의 개표 파티 모습

    2017 독일 총선과 한국 정치, ‘복지와 노동’

    독일 총선을 현장에서 보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세력이 다시금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영감을 얻는다. 15년 전 사민당 슈뢰더 정부의 ‘아젠다 2010 – 하르츠 개혁’에서부터 2017년 독일 총선을 훑어보고 비슷한 부분을 연결해 보면 지금 문재인 정부 성패의 핵심고리, 핵심전장(戰場)은 ‘어렵게 다시 모여든 자신들지지 기반의 공통영역’, ‘그들의 삶과 직결되는 정책영역’ 즉 ‘복지-노동’의 영역이 아닐까? 적폐청산의 성공도 이로부터, 실패도 이로부터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복지-노동’을 지키고 확대하는 본격적인 싸움은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기업’으로부터의 강한 압박으로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겪은 것처럼 경제의 수치적 압박과 기업과 보수언론이 걸어오는 사활적 싸움은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아무리 집권당이라도 쉽게 이겨내기 어렵다. 때로는 지지율의 하락과 지지기반의 일시적 이탈에 직면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독일 정치와 한국 정치가 공통으로 가졌던 경험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정치’가 가져왔던 후폭풍, ‘복지와 노동이 후퇴하는’ 선택이 노동자 기반의 민주세력에게 가져온 결과를 분명히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율이 매우 높다. 이 힘을 바탕으로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적폐청산의 카드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오고 있다. 아직 이렇다 할 저항도 없다. 좋은 일이고 잘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어렵고, 본격적이고, 정권의 사활적인 문제는 아직 건드리지 않았다. 아직 문재인 정부는 복지와 노동에 대한 핵심적인 카드를 꺼내지 않았고 압박다운 압박도 받지 않았다. ‘복지와 노동’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싸움은 피해갈 수 없다. 그 전장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세력과 진보정당의 역할에 따라 한국 정치의 두 번째 기회의 성패가 정해지지 않을까? 그 성패에 따라 많은 정치세력의 운명이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필자소개
    김희서
    정의당 구로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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