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전 시기,
    미국 과학기술이 남긴 것
    [책소개] 『냉전의 과학』 (오드라 J. 울프/ 궁리)
        2017년 11월 04일 12: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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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를 통틀어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의 잔재를 배경으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냉전, 그리고 냉전 과학기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현재 점점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북한의 대치 상황이 냉전 과학기술이 낳은 대표적 군사 무기인 핵폭탄(수소폭탄)과 장거리 미사일(ICBM)을 둘러싸고 진행 중인 것만 보아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전시기의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린 그날,
    미국은 과학기술에서 무엇을 보았나?

    냉전의 개막을 알린 원자폭탄 개발과 핵 군비경쟁에서 정부의 엄청난 (국방) 연구개발비가 낳은 현상인 군산복합체와 거대과학, 냉전시기의 제3세계를 풍미했던 개발 이데올로기, 그리고 냉전 과학기술의 군사화에 반발해 나타난 군사연구 반대운동과 그것이 이후에 미친 영향에 이르기까지, 이 책 『냉전의 과학』은 냉전시기 과학기술의 이야기를 미국을 중심으로 풀어놓는다. 미국의 과학사가인 저자는 방대한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여러 에피소드, 일화, 인물을 동원하여 국가권력을 유지하고 투사하는 데 과학기술이 하는 역할을 다루고 있다.

    냉전은 막을 내렸지만 그것이 남긴 유산이 여전히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지금, 냉전시기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지난 70여 년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어난 중요한 제도적ㆍ조직적ㆍ이데올로기적 변화가 어떤 것이었으며, 그것이 오늘날의 과학기술과 정치경제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소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후 초강대국을 자처하던 미국은 9.11 테러가 일어난 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중국이 새로운 산업대국으로 떠오르면서 ‘G2’라 불리는 양강 체제가 고개를 들었다. 사드 배치와 북한 핵실험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는 지금, 과학기술과 과학자, 국가(권력)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을 안내서 삼아 우리의 논의를 좀 더 깊이 있게 전개해보자.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과학기술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미국과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후반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식으로 경쟁했다. 직접적인 군사충돌은 피해갔으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이념의 대립은 ‘냉전’이라는 새로운 갈등 상태를 낳았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과학 분야에서도 첨예하게 이루어졌다. 미국의 과학사가이자 저술가인 오드라 J. 울프가 쓴 『냉전의 과학』은 원자 무기부터 달 탐험 경쟁,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냉전 시기에 국가권력을 유지하는 데 특별한 역할을 한 과학기술에 대해 다룬 책이다.

    핵물리학의 첨단기계 장치나 우주 개발 경쟁은 이 이야기의 중심 테마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오드라 J. 울프는 도시 계획, 제3세계 개발, 생물학, 그리고 경제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진 과학적 성취가 두 패권국의 갈등이 부딪친 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과학적 성취는 이데올로기적 패권을 둘러싼 이러한 [미, 소 간의] 전투가 전개되는 중심적인 장이 되었다”(3장)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Competing with the Soviets이다. 두 개의 초강대국이 패권 경쟁을 벌였던 시기, 미국이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이를 이용했는지, 다양한 측면과 변화를 시대순으로, 주제별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의 방대한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냉전시기 과학기술의 여러 측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조망점을 제시할 것이다.

    존스홉킨스대학 출판부에서 기획한 과학사 입문 시리즈 중 한 권으로 2013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리 많지 않은 분량 속에 지난 30년 동안 축적된 냉전 과학기술사의 핵심적인 발견과 통찰들을 솜씨 좋게 담아내어 미국 과학계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은 과학기술사 연구자인 김명진, 이종민이 맡았다. 국내에 냉전 과학기술사를 다룬 저서가 드문 상황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이 촉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이 책은 과학기술사는 물론 20세기 미국사와 전후 세계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각과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원자 시대, 군산복합체, 거대과학의 기원을 말하다
    냉전시기, 미국의 과학기술이 남긴 것들……

    : 이 책의 주요 내용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당시,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한다는 증거가 쌓이자,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2년 6월 원자무기를 만들기 위한 비밀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훗날 맨해튼 프로젝트로 알려진 이 계획에서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 두 번째 원자폭탄 팻 맨이 완성되었고, 1945년 8월 6일과 9일 폭탄 두 발이 각각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한순간에 수십 만의 일본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일본은 항복했다. 이로써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으나 원자 시대는 시작되었다.(1장)

    그 후 한동안 “미국은 어떤 나라도 미국 과학기술의 경이(공포)와 경쟁할 수 없으리라고 믿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최초의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은 막을 올렸다. 뒤이어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이루어졌다.

    냉전시기 미 연방정부는 국방 연구개발비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고, 군대, 산업체, 대학 간의 유대가 탄탄해면서 ‘군산복합체’라 불리는 협력관계가 만들어졌다. 방위 중심의 정부 투자금이 엄청난 수의 연구소와 연구 프로그램에 쏟아져 들어갔고, 소위 학문 연구를 목적으로 한 산업연구소에서 국가 안보를 걱정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받는 상황도 생기게 되었다. 입자가속기, 원자로 같은 자본집약적 장치를 갖추어 이루어지는 과학 연구는 “더 많은 자금, 더 많은 과학자, 더 많은 조정”이 필요한 영역이 되었다. 냉전은 미국 과학을 ‘거대과학’으로 탈바꿈해 놓았다.(2장, 3장)

    한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으로 대립각을 세웠던 냉전시기에 미국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미국적 삶의 우월성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과학기술은 미국적 삶의 방식의 우월성을 알리는 도구로 큰 역할을 했다. 댐 개발, 말라리아 퇴치, 과학 전문가 양성과 같이 탄자니아, 인도, 멕시코 등지에서 진행한 미국의 개발 프로그램은 성공과 실패를 오가며 과학기술에 대한 다양한 성찰거리를 제공했다.(4장)

    과학기술은 세상에 무엇을 가져다주었나?
    과학, 과학자, 국가의 적절한 관계에 대해 다시 질문할 때!

    1950년대 미국은 국외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기술이 공헌할 것이라 믿었다. 1960년대 린든 존던 대통령은 군사적 기법을 적용해 빈곤 퇴치 프로그램인 “위대한 사회”를 실행했으나 그 효과성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됐다.(5장)

    우주 경쟁은 냉전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1969년 달에 인간을 보낸 아폴로 프로그램은 미국의 우위를 보여주기 위해 설계되었다.” 기밀로 취급된 이 연구는 미사일과 스파이 위성을 만드는 것에 집중되었다.(6장) 그러나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미국 사회는 과학기술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미국의 과학자, 일반대중은 과학, 기술, 군대 간의 협력관계가 만든 섬뜩한 결과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1970년을 전후하여 대학가와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군사연구에 반발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7장)

    냉전시기는 군산복합체와 거대과학 같은 현대과학의 중대한 변화가 등장한 시기이다. 동시에 이러한 체제가 1960년대 이후 부분적으로 깨어지면서 오늘날의 상업화를 예비한 현상도 생겨났다. 1980년대가 되면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위시한 생명공학 분야에 연방정부의 지원이 들어가고, 대학과 (다국적 제약회사) 기업들이 협력관계를 맺는 상업화가 진행된다.(8장)

    한때는 과학기술이 세상에 선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강력했다. 그것은 과학기술이 국력을, 국가안보를, 국제적 우호관계를, 경제성장을, 대중의 복지를, 공공선을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제 우리는 과학이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만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저자, 오드라 J. 울프는 과학이 객관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과학에 덧씌운 환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과학자들도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호흡하며 자신의 이념, 정치적 권한, 시대의 관습에 영향을 받아 선택하고 기회를 누리는 존재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의 과학이 정치로부터 벗어난 자유구역(free zone)에서 작동했다는 생각 자체가 이념으로 가득찼던 냉전의 유산”이다.

    과학자들도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 문화에 참여한다는 가정에 비추어, 이 책은 군사적 영향으로 냉전 시기의 과학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논쟁하는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과학만으로 우리가 처한 위기와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가 책의 마무리에 던지는 메시지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웅변으로 들린다.

    “미국 과학의 성취에 대한 기록은 실망의 기록과 섞여 있다. 미국이 세계화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그들은 안보, 번영, 국가 정체성에서 과학기술이 맡는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능력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된 시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만약 과학자들과 시민들이 과학기술은 어떻게 사회를, 더 나아가 지구를 도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적절하고 진지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결과가 분명 뒤따를 것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우리는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 처해 있다. 냉전 과학의 산물은 오늘날 계속해서 갈등을 추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한반도이다. 세계는 이전에 있었던 벼랑 끝 핵 정책으로부터 살아남았다. … 앞으로도 그처럼 운이 좋기를, 더 나아가 핵무기를 철폐함으로써 우리의 운을 키우려는 정치적 의지를 찾아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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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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