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닮은 헬조선과 헬미국
    진보가 리버럴에 포획 당하는 구조
        2017년 11월 01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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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오슬로대학교에서 <한국전쟁의 기원> 저자인 저명한 한국사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 선생을 모시고 특강을 진행한 바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아주 재밌는 특강 자리이었지만, 한 가지 부분은 저로서 특히 기억됐습니다.

    본인이 김대중 선생을 지원하면서 가까이 지켜본 1980년대 시대에 비해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진 한국을 생각하면서 커밍스 선생님은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회”라고 진단하셨습니다. 일례로 든 것은 미국에서 그 전례를 찾기가 어려운 한겨레신문 같은 “좌파 언론”의 메이저 일간지로서의 위치나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 등이었습니다. 언론계도 의회도 각양각색의 보수나 리버럴, 내지 리버럴한 보수와 보수적 리버럴에게 장악된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일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은 커밍스 선생님의 진단이었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칭찬 듣기가 기분 좋았는데, 근거 없는 과찬도 아니었습니다. 미국도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베트남전 반대 운동 등으로 요동쳤지만 한국은 1987년에 아예 미완의 혁명을 경험한 나라인 만큼 그 여열은 분명 지금도 좀 남아 있죠. 한겨레신문의 뿌리나 정의당 등 의회 진보정당의 뿌리도 결국 “그 시절”에 있다고 봐야죠. 많이 “온건화”됐지만 지금이라 해도 한겨레신문은 예컨대 뉴욕타임즈지에 비해 조금 더 “왼쪽”에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유산이 존재하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과 폭정에 반대하는 여러 세력들이 촛불항쟁으로 공동전선을 펴서 결국 성공할 수도 있었던 것이죠. 트럼프의 패악질을 매일매일 지켜봐야 하는 미국 사람으로서는 좀 부러울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거기까진 그렇지만, 아무리 전투적 노동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유산이라는 근대적 ‘전통’이 있어 지금도 사회에서 대항헤게모니의 잠재적 주체들이 나름의 역량을 가지긴 하지만, 많은 면에서는 미국과 한국은 생각보다 비슷하고 가깝기도 하죠.

    미국의 의회에서는 현재로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등 “극우”와 “리버럴” 이외의 그 어떤 정당도 없지만, 한국 의회에서는 300명 중의 6명은 진보정당 소속이라 해도 나머지는 극우 각파 아니면 거대 리버럴 정당에 소속돼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민주의 성향의 버니 샌더스가 정치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민주당에 몸을 담아야 했지만, 한국의 사정은 별반 다른가요? 제 동갑이기도 한 박주민 의원은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중도 사민주의 지향의 정치인이지만, 그의 당적은 더불어민주당이죠. 그렇지 않았으면 과연 의회에 입성할 수 있었을까요? ‘사노맹’ 출신의 은수미씨도 정치노선으로 보면 중도 내지 좌파 사민주의 정도 되겠지만, 역시 결국 민주당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보가 거대 리버럴 정당에 포섭되어지는 패턴이야말로 가장 미국적 패턴이죠. 유럽 같으면 꼭 그렇게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진보의 정당조직들은 강력합니다. 한데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진보정당”은 아직도 희망사항일 뿐이죠…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진보가 리버럴들에게 포획 당하는 구조적인 이유는, 진보정당을 뒷받침할 만한 조직노동의 취약함이죠. 실은 놀랍게도 노동자 조직률은 미국(10,6%)과 한국(9%)에서는 거의 같죠. 미국이나 한국보다 노조 가입률이 더 낮은 산업국가를 찾으려면 터키(6%) 쯤으로 가야 할 겁니다. 유럽에서 스웨덴의 노조 가입률은 여전히 67%고 노르웨이는 50%보다 약간 웃돕니다.

    노조와 진보가 약한 만큼 상당 부분의 사회지수에서 미국과 한국은 좀 안 좋게 나옵니다. 빈부격차 같으면 미국은 (중남미와 터키, 러시아 등 다음으로) 산업화된 나라 중에서는 최악에 가깝고, 한국은 가면 갈수록 미국과 닮아가고 유럽은 아직도 재분배를 통해 격차의 폭을 좀 줄입니다. 지니계수 같은 경우에는 미국은 0,378, 한국은 0,315지만, 노르웨이는 아무리 최근에 나빠져도 아직은 0,250 정도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부문에서는 성장주의적 배경을 가지고 최근 2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일관성 있게 집행해온 한국은 미국보다 더 안 좋게 나오죠. 예를 들어 국민총생산에서 국가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몫은 한국에서는 불과 10%지만 미국만 해도 19%나 됩니다. 둘 다 프랑스(31%) 등과 다르지만, 한국은 “복지 후진국” 미국도 영영 따라잡기가 힘들 것으로 보이죠…

    경쟁사회, 돈이 지배하는 교육, 과로와 고용불안, 그리고 피곤한 노동자들의 마지막 안식처로서의 근본주의적 교회 집단…”헬미국”과 “헬조선”은 생각보다 닮은 게 만만치 않죠. 단, 한국 국내 자본이 미국 자본보다 잉여가 적고 한국의 내부 구매력이 약하고 기술력 등이 떨어지고 국가 재분배 시스템이 잘 돌아가지 않는 만큼 “헬조선”은 늘 “헬미국”보다 지옥불이 더 세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또 그만큼은 “헬조선” 피해자들의 투쟁도 더 치열하지 않을 수 없죠. 결국 이 투쟁만은 “헬” 탈출의 희망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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