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해된 또래들을 추모하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28] 2014년 세월호의 그날
        2017년 10월 30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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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20일째인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우리 가족은 서울광장 세월호 분향소에서 조문을 했다. 노란 리본에 추모의 글도 써서 달았다. 딸은 종이배를 접어 억울하게 희생된 또래 친구들에게 글을 남겼다.

    5월 5일, 가족은 서울시청 광장에 가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5월 10일 세월호 참사 발생 25일, 아내와 나는 딸을 앞세우고 안산행 4호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할매는 집안 계모임이 겹쳐 동행하지 못했다. 안산 화랑유원지 안 합동분향소에 도착했다. 첫 행사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분향소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서서 노란 띠를 이었다. 참가자들은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한 단어 한 구절 꾹꾹 씹으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잊지 않겠습니다. 친구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밤하늘의 별이 된 모든 친구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밝히겠습니다.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책임질 사람을 밝히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4월 16일을 기억하겠습니다. 국민을 저버린 정부를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밝히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줄지어 차례차례 분향소에 들어섰다. 사망자와 실종자 304명에 단원고만 무려 250명이었다. 맑디맑은 아이들의 얼굴이 영정 속에 들어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고 흐느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의 눈망울이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자신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죽어서 영정 속에 들어와 있어야만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이 땅의 운동이 세상을 제대로 바꾸지 못한 탓에 애꿎은 너희들이 죽었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참사 이후, 난 반쯤 미쳐 있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 사무실 안팎에서 닥치는 대로 씨발, 씨발, 욕을 해댔다. 동료들이 한씨발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밤마다 술에 절었다. 만취 상태로 귀가해선 아내에게 행패를 부렸다고 했다. 울며 애원하는 딸에게도 욕을 했다고 했다. 막무가내로 몹쓸 말을 내뱉다가 쓰러져 잠들었다고 했다.

    충격에 빠진 딸은 다음날 낮에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그것을 보고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다. 단원고 부모들이 KBS 사장의 망언에 격노해 여의도로 항의 방문을 올라왔던 날엔 노동 음악 작곡가인 한 선배에게 추태를 저질렀다. 깊이 신뢰하는 선배였다. 그때도 술에 절어 있었다. 난 세월호에 짓눌려 허우적댔다. 살해 당한 아이들과 딸애가 중첩되는 심리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기를 쓰면서 떼어내려 해도 어느새 중첩되곤 했다. 박근혜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앞에 있다면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사형제를 반대하는 소신까지 바꾸고 싶을 지경이었다.

    반미치광이가 된 데는 자괴감도 컸다. 딸아이 세대에게 노동이 당당한 세상은커녕, 비정규직 세상을 물려주는 것도 모자라서, 참사 세상까지 물려주게 되었다는 자책감이었다. 돈과 권력에 미쳐 그런 세상을 만든 재벌과 정부를 탓하면 그만일 텐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 부류에 맞서서 세상을 밝게 만드는 것이 사회운동이었다. 운동을 제대로 못한 탓이 크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추모객들은 분향소에서 문화광장까지 행진했다. 광장에서 저녁 6시부터 진행하기로 예정된 국민촛불행동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행사를 주최한 안산시민사회연대는 저녁을 먹으며 기다리라 했다. 우리는 신승철, 최국태와 함께 빵집에 들어갔다. 최국태는 서울시 교육감 재선거에서 친구가 된 사이였다. 팥빙수와 빵을 먹으며 기다렸다. 누리의 진로 얘기가 나왔다. 누리는 임상 심리를 배우고 싶다 했다. 승철은 야간대학에서 상담 심리를 공부하다가 나의 권유로 민주노총 위원장에 출마하느라 휴학한 사실을 얘기했다. 승철은 누리에게 임상 심리는 주로 정신과 의사 밑에서 서류 조사하는 일로 한정되니, 상담 심리를 하는 게 어떠냐고 권고했다. 공부를 계속하려면 심리학을 하라고도 했다. 누리는 독일 유학도 가고 싶다고 했다. 국태도 심리학 흐름을 알고 있었다. 세계의 심리학 흐름을 승철과 주거니 받거니 누리에게 설명했다. 누리는 관심 있게 들었다.

    촛불행동이 시작됐다. 대열 중간에 앉았다. 내 또래 중년 남성들이 가장 슬프게 흐느꼈다. 나처럼 제 자식과 중첩돼서 감정이입이 심한 듯했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의 오혜란과 김경례, 두 사람이 격문을 낭독했다. 왜 그랬습니까? 나를 향한 질타로 들렸다. 폐부에 비수가 박혔다.

    왜 그랬습니까

    정부에게 묻겠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대답하십시오. 왜 그랬습니까? 도대체 왜 이런 사고가 터진 겁니까? 아니, 질문을 정확하게 합시다. 왜 사고가 끔찍한 참극으로 변해버린 겁니까? 평형수를 4분의 1만 채우는 대신 화물은 최대 적재량의 세 배를 실었고 그 화물을 제대로 묶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수명이 다해서 폐기 처분해야 할 배를 무게 중심조차 못 잡을 정도로 개조한 그 배를 운항을 하도록 허가한 건 누구입니까. 도대체 왜 그랬습니까? 119에 전화를 걸어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해요, 아저씨 살려주세요. 그 아이들에게 위도와 경도를 불러주세요. 미쳤습니까? 당신들 제정신입니까? 왜 그랬습니까?

    9시 30분 해경이 처음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그 시각에 객실은 물에 잠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객실에 들어가야지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야지요. 그게 아니라면 탈출하라고 어서 갑판으로 나오라고 소리쳤어야지요. 그런데 해경은 그 작은 구명보트만 떨어트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당신들을 발견한 아이들이 객실 유리창을 마구 두드리는데 사진으로도 그 아이들이 다 보이는데, 왜! 왜 눈뜨고 구경만 한 겁니까. 세 시간이 넘는 그 시간 동안 도대체 왜 그랬습니까!

    500명의 잠수사를 투입했다, 헬기는 121대를 투입했다, 69척의 배를 투입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현장에는 헬기 2대, 군함 2척, 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 이게 전부였습니다. 왜 거짓말을 했습니까. 모든 것을 다 동원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공중파를 통해 광고를 하고 있었지만,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가 판을 쳤지만, 정작 배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왜 그랬습니까? 다 가라앉고 나서도 30분씩 3번 물속으로 내려갔다더군요. 그날 날씨가 나쁘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습니까? 그리고 사고 난 지 나흘이 되어서야 그제야 물에 들어갔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생각이 있었으면 그러진 않았을 겁니다. 크레인선은 왜 승인을 안 해줬고 미군의 구조 헬기는 왜 거절을 했고 구조용으로 만들었다는 천육백억짜리 통영함은 왜 투입하지 않은 겁니까? 300명의 목숨 값쯤이야 너무 하찮았던 겁니까? 왜 그랬습니까? 왜 초기에 구하지 않았습니까?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처럼 정말 돈 때문에 그랬습니까? 그걸 믿을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불가항력인 일이었다면 이렇게 억울하고 원통하진 않을 겁니다. 무슨 거대한 음모라도 있는 거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정말 돈 때문입니까? 정말 돈 때문에 그런 겁니까?

    왜 그랬습니까? 이 사건, 이 사고는 무슨 의혹이 이렇게 많습니까?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없습니까? 최초 사고 시각은 도대체 몇 시입니까. 교신 기록의 일부는 왜 삭제했습니까? 항로 기록은 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습니까?

    배가 침몰하는데 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까? 가만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렇게 꼼짝 못하게 해놓았으면서 선장과 승무원들은 자기들만 아는 통로로 빠져나간 건 무엇 때문입니까? 왜 해경은 선장과 승무원들을 먼저 구조해서 달아나듯 떠났고 왜 하필 해경 수사관의 아파트에 데리고 간 겁니까. 왜 하필 그 아파트 CCTV 기록 두 시간이 사라졌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왜!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경이 수사를 받아야 하는데 검경 합동수사본부라니요.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피의자가 되어야 할 해경이 왜 수사의 주체가 되어 있습니까? 압수 수색을 한다고 미리 귀띔해 주는 건 또 뭡니까. 이렇게 해서 진실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왜!

    대답하십시오. 세월호 사고의 진실이 뭡니까? 청진해운, 해운조합, 해경, 국방부, 안전행정부, 그리고 청와대 누구든 좋습니다. 진실을 밝히란 말입니다. 당신들 중에 양심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까? 당신들 중에 용기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까?

    벌써 25일이 흘렀는데 미치고 답답해서 죽을 지경인데 이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유가족들이 생떼를 쓴다, 촛불에 종북 좌파들이 끼어 있다, 일당 6만 원 받고 알바 하는 거다, 세월호 때문에 경기가 침체된다, 한해 교통사고 사망자에 비하면 세월호 희생자 300명쯤이야 별거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런 소릴 합니까?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런 악마 같은 소릴 합니까?

    대답하십시오. 이 모든 것을 누가 책임질 겁니까?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모른다, 그건 내 권한이 아니다,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라 모른다, 서로 책임 떠밀고 오리발 내밀고 조작하고 은폐하고 막말하고 끝까지 그렇게 나오겠다면 우리 국민들이 직접 책임지겠습니다. 무능한 정부는 필요 없습니다. 거짓말 하는 정부는 필요 없습니다.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정부는 아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이 나라를 바꾸겠습니다. 자 이제 대답하십시오!

    국가가 죽였다

    사회자 박진은 촛불 행동에 2만 명이 모였다 했다. 인권운동가 박래군은 5월 17일 서울 청계광장으로 모이자고 호소했다. 참가 대오는 중앙역까지 행진했다. 늦은 밤 모든 추모 행사가 끝나고서, 딸아이는 안산에 오기를 잘했다고 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진상규명 행사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모레부터 예정되어 있던 딸아이의 수학여행은 일찌감치 취소된 상태였다.

    단원고 아이들 대부분과 딸아이는 1997년생 소띠였다. 태어난 그해, 국가부도 사태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부모들은 정리해고 광풍에 떨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9년, 신종 플루가 창궐해 생애 첫 수학여행이 취소됐다. 고등학교 2학년인 2014년 올해, 앞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친구들은 참사로 살해당했고, 전국의 동갑내기들은 생의 마지막 수학여행을 취소당했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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