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버스 준공영제,
    업체 배불리는 생색내기
    [현장과 사람] 공공운수노조 박상길 서울경기강원버스지부장
        2017년 10월 30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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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대부분은 서울 중심부에 있다. 창덕궁 옆에 사는 나는 늘 자전거로 거길 다닌다. 보건의료노조도 국회 옆이니 자전거로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대림동 공공운수노조 가려면 큰 맘 먹어야 한다. 여의도에서도 한참 더 가고 오르막길도 많다. 그래서 작년부터 꾀를 냈다. 공공운수 노조간부들 만날 땐 영등포역 1번 출구에서 본다. 그분들도 대림동에서 마을버스로 15분이면 오고, 나도 시청역 1호선 타면 20분이면 된다.

    공공운수노조 박상길 서울경기강원버스지부장

    27일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강원버스(서경강)지부 박상길(46) 지부장도 영등포역에서 만났다. 지난해 한남상운 정윤호 사무장 볼 때도 여기서 만났다. 해마다 반복되는 살인적 장시간 노동과 전근대적인 경영 때문에 버스기사들은 30년 전에도 겪지 않았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준공영제를 도입한 서울과 제주도 문제가 많다. 준공영제 도입 10년이 지난 서울지역 버스업계는 기업주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해마다 수천억원씩 세금을 쏟아 붓고도 서울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 처방책만 내놓고 있다.

    9월 4일 경기도청 앞에서 준공영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박상길 지부장 ⓒ공공운수노조

    박상길 지부장을 만나 출발부터 삐거덕거리는 경기도 버스 준공영제 도입 논의 과정을 들었다. 얼마 전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운영하는 광역버스 기사가 복격일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졸음운전으로 대형 추돌사고를 내 50대 부부가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경기도는 준공영제 도입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준공영제 폐해에 시달려온 공공운수노조는 생색만 내는 어설픈 준공영제는 버스업자들 배만 불려줄 뿐이라며, 좀 더 면밀히 준비해 곧바로 공영제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서울시 준공영제가 해마다 2천억 원씩 업자들에게 보조금을 주면서도 인력 부풀리기와 업체 임원들의 과도한 임금 나눠먹기로 변질돼 경영합리화는커녕 도덕적 해이만 낳고 있다고 말한다.

    업체 배만 불리는 준공영제

    실제 올 봄 비리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던 서울시 교통본부 팀장이 자살하는 극단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관련 본부장은 자기 SNS로 경찰 수사에 반발했다. 서울시는 퇴직 공무원들과 접촉을 피하라는 해결책을 내놓은 선에 그쳤다. 그러나 몇몇 버스업체는 공룡이 됐다. 얼마 전 기사 채용 때마다 금품을 받아 문제가 된 부산시의 경우 현직 부산시장이 버스업체 대표 출신이고, 지금 준공영제 도입을 놓고 시민사회와 충동하는 경기도지사의 친동생도 버스업체 대표다.

    박상길 지부장이 지난 5월 24일 세종로청사 앞에서 버스노동자 졸음운전을 막기 위해 근기법 59조 개정을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

    지난 1년 사이 강원도 평창과 춘천의 강원도청,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 덕수궁 돌담길 옆 서울시청 별관, 금천구 한남상운, 관악구 신림동 한남운수, 국회 토론회장 등 10여 곳에서 박상길 지부장을 봤지만 정작 그와 마주앉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1년 내내 거리에서 봤던 박 지부장은 그을린 얼굴 때문에 50대 중반의 노동자로 보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 단단해 뵈는 박 지부장은 놀랍게도 40대 중반이었다.

    박 지부장은 19살 이후 쉬지 않고 일했다. 충남 당진에서 나고 자라 10살 때 아버지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1989년 19살부터 노동시장에 들어왔다. 특성화고 3학년 때 전공을 살려 전기업체에 현장실습 갔다가 그곳에 취업했다. 회사는 열심히 일한 그를 제대 뒤에도 받아줬다. 좀 더 큰돈을 만지고 싶어 1994년 울산으로 내려가 현대중공업 전장(전기장치)쪽 사내하청에 들어가 5년을 일했다. 돈은 좀 모았는데 IMF 직격탄을 맞고 정리해고돼 서울로 돌아왔다.

    박상길 지부장이 지난 6월 21일 금천구청 앞 한남상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공공운수노조

    시위대 욕하던 기사가 노민추 활동가로

    시내버스 기사들이 안정적이란 말을 듣고, 대형버스 면허를 따고 1999년 시내버스회사 ‘서울버스’에 입사했다. 지금은 500만원이 입사청탁 협정가격처럼 됐지만, 당시만 해도 대형자격증만 있으면 입사했다. 서울버스는 간선버스 301번(송파구 장지동~대학로), 401번(장지동~명동), 인천공항을 오가는 공항리무진버스를 운행한다. 그는 집회로 도로가 막히면 창문 열고 시위대에 화를 푸는 지극히 평범한 버스기사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민주버스노조의 상징이 됐다.

    계기는 사소했다. 2004년 서울버스 노조 지부장 선거에 나선 친한 선배의 부탁으로 선거운동에 나섰다. 340명 노조원 가운데 157명의 추천을 받아 후보 등록하러 갔더니, 선관위는 잠시 “나가 있어라” 하고 노조 사무실 문을 잠갔다. 선관위는 30분 뒤 서류미비로 후보 등록이 안 된다고 했다. 추천인 중 몇 명의 인적사항이 미흡했다. 그새 선관위는 추천인에게 일일이 전화로 확인한 모양이었다. 허탈했지만 인정하고 단독 출마한 어용후보 부결 투쟁에 나섰더니 회사가 회유하려 들었다. 이렇게 그는 얼떨결에 노민추 활동가가 됐다.

    119명의 지지자는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딱 3명 남았다. 탄압에도 계속 노민추 활동을 이어가자 회사는 3명에게 정직을 내렸다. 정직 첫날 셋은 고향 옆 대천해수욕장에 바람 쐬러 갔다. 거기서 ‘서울버스 현장동지회’를 결성했다. 정직이 끝나 다시 301번 버스를 몰던 그는 회차지인 대학로에 있는 방송통신대를 발견했다. 그길로 방통대 법학과에 등록했다. “그때까지 우리가 법 지식이 부족해서 이런 꼴을 당하는 걸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법 지식이 민주노조를 안겨주진 않았다.

    딸 태어난 날에 해고 통보

    “그날도 301번 운전석에 앉아 신호대기 하는데 누군가가 유인물을 줬어요.” 그 사람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버스기사들에게만 줬다. 느낌이 이상해 냉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종점에 와서 화장실로 가 유인물을 폈더니 민주버스노조가 뿌린 <전국버스노동자 소식>이었다. 그는 유인물을 들고 영등포에 있던 민주버스노조에 찾아갔다. 그는 내놓고 노민추 활동을 했다. 민주버스 투쟁조끼를 입고 출근하는가 하면 근무시간과 임금 관련해서도 어용노조와 달리 회사에 계속 문제제기했다.

    2002년 결혼한 그는 2005년 3월말 딸아이를 얻었다. 딸아이 태어난 날, 회사는 그에게 해고예고를 통보했다. 아내와 아이까지 생겼는데 회사는 한 달 뒤 그를 해고했다. 자그마치 17개의 사유를 달았다. 불법단체(민주버스노조) 가입과 선전선동 등이었다. 사회주의권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었던 아내는 노민추 활동 초기에 “혁명한다”며 응원해줬다. 해고된 그는 전해투 활동을 하다가 2006년 신길운수 투쟁 때 구속돼 3개월을 살았다. 1년째 집에 돈을 들여놓지 못한 남편이 덜컥 구속까지 되자 아내는 “이번 딱 한 번만 용서한다”고 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몇 달 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 손을 들어줬다. 이른바 ‘9.11 야합’. 복수노조를 3년 유예해줘 비정규중소영세 노동자들 노동3권을 틀어막고 재벌의 무노조전략과 어용노조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전해투 회원 8명은 9월 19일 낮 12시30분께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7층 부위원장실을 점거한 채 건물 난간에 매달려 항의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한국노총이 노동자의 단결권과 생존권을 송두리째 팔아먹었다”며 규탄했다. 서울남부지법은 그해 연말 8명 모두에게 실형을 내렸다. 8명 중 박상길, 이기웅 2명은 서울버스 해고자였다. 어용노총에 항의하러 가 7시간 남짓 농성한 대가치고는 혹독했다.

    전해투 8명이 2006년 9월 19일 노사정 야합에 항의차 한국노총 7층 난간에서 농성중이다. 오른쪽 두 번째가 박상길 지부장이다. ⓒ구속노동자후원회

    ‘9.11 야합’ 규탄하다 구속

    다시 1년을 살고 나온 박 지회장에게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딸을 데리고 나갔다. 9년째 소식이 끊겼다. 박 지회장은 웃는 딸아이 돌 사진을 아직도 품고 산다.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됐지만, 그의 핸드폰 속 딸아이는 여전히 갓난쟁이다. 사진을 펴놓고 사내 둘이 마주앉아 잠시 먹먹했다. “상근비도 제대로 없는데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텼습니까?” “2011년 지부 출범 때도 무급이었는데, 지금은 120만원쯤 나옵니다.”

    경기도 교통정책에 개입

    경기도 준공영제 도입 관련 쟁점을 물었다. 경기도는 전체 1만 3,000대 가운데 서울을 오가는 2,400대만 준공영제 대상으로 잡았다. 이마저도 예산 때문에 절반인 1,200대만 내년 1월부터 먼저 실시하려 한다. 경기도 전체 버스의 10%도 안 되는 ‘무늬만 준공영제’라 할만하다. 예산은 경기도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부담하는 안을 마련했는데, 시군의 반대도 만만찮다.

    경기도의회는 도의 일방적으로 추진에 반대하며 의회 내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자동차노련은 경기도 버스 모두 준공영제를 실시하라고 한다. 박 지부장은 “준공영제가 업체 배만 물리고 완전공영제 실시에 걸림돌이 되기에 경기도가 당장은 버스기사 노동조건부터 개선하고 면밀히 준비를 거쳐 경기교통공사를 설립해 공영제로 가야 한다”고 했다.

    서경강지부는 제정당,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과로사 없는 안전한 버스, 교통복지 확대, 완전공영제 시행을 위한 경기공동행동’(공동행동)을 출범시키고, 우선 버스노동자 근로환경부터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이 있는 성남시도 “준공영제는 버스노선의 민간소유화를 가중시켜 업체 배불리기와 노동자간 임금격차 확대시키는데다 향후 공영제로 전환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공영제를 지향해야 한다”며 서경강지부와 비슷한 입장이다.

    공공운수노조 소속 버스노동자는 전북 600여 명, 서경강 350여 명 등 3,000여 명 남짓이다. 서경강지부 대부분은 소수노조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정부가 수십년을 미뤄온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해 무늬만 복수노조를 만든 후유증은 이렇게 가혹하다. 버스노동자 대부분은 노조가 없거나 한국노총 자노련 소속이다. 자노련은 약간의 정책 역량도 있지만, 사업장으로 내려가면 20년 이상 한 사람이 지부장을 독식해 노조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도 많다. 경기도에만 서경강지부 소속 사업장이 안양, 평택, 수원, 용인, 부천, 포천, 양평, 가평 등 10여 곳에 있지만 노조원을 모두 합쳐 1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박 지회장은 간절하다.

    지난해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친동생이 운영하는 경남여객 540명의 기사 중 270명이 서경강지부에 가입했다가 지금은 13명만 남았다. 버스노조는 노조원에게 상조회처럼 달마다 돈을 거둬 퇴직 때 전별금을 준다. 이 돈이 상당히 크다. 그런데 서경강지부로 넘어 온 노동자에겐 전별금을 못주겠다고 나와 소송까지 붙었지만 졌다. 어용노조에 환멸을 느끼고 가입했던 조합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박 지회장이 올해부터 경기도 교통정책 대응투쟁에 나선 것도 이런 아픔 때문이다. 박 지회장은 지자체 대응투쟁의 성과로 조직 확대의 물꼬를 트고 싶다. 언젠가 다시 만날 딸을 위해서라도.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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