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2기 출범과
    중국 정치의 미래와 방향
    [중국과 중국인] 마오쩌둥과 동급?
        2017년 10월 26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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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동안 세계 언론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지도부 구성이 완료되었다. 시진핑(习近平)으로의 권력 집중과 유일 패권국인 미국과 대등한 또는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중국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그의 야심찬 계획이 동시에 공표되었다. 시진핑의 권력 강화와 그가 제시한 목표가 갖고 있는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시진핑의 권력 강화와 그것이 중국정치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 살펴보겠다. ‘마오쩌뚱(毛泽东)과 동급’이라는 표현이 대다수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다. 중국공산당의 강령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은 시진핑은 정말 마오쩌뚱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인가? ‘새로운 시대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新时代中国特色社会主义)라는 시진핑 사상은 과연 중국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시진핑의 권력이 초기의 시진핑-리커챵(李克强) 쌍두마차에서 확실히 시진핑으로 권력의 추가 기울어진 것은 사실이다. 중국공산당의 핵심 권력기구인 정치국에 과거 그와 함께 일했던 그의 동료들이 대거 진입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을 마오쩌뚱(사상)이나 떵샤오핑(邓小平, 이론)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진핑의 이름 뒤에 붙은 ‘사상’이라는 글자로 그가 떵샤오핑의 권위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면 중국인들도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마오쩌뚱과 떵샤오핑의 사상이나 이론은 중국공산당이 걸어 온 수십 년의 혁명투쟁과 개혁개방의 산물이다. 단지 몇 년 간의 권력 투쟁을 통해 권력을 강화한 결과로 붙여진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상 떵샤오핑 이후 중국공산당의 강령의 변화는 새로운 집권자의 정치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쟝쩌민(江泽民)의 삼개대표(三个代表)론은 중국공산당이 더 이상 노동자, 농민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중국인민을 대표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후진타오(胡锦涛)의 과학발전관(科学发展观)은 개혁개방 이후의 발전과 이로 파생된 빈부격차 해소에 노력하겠다는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떵샤오핑이 제시한 중국 특색의사회주의에 추가된 ‘새로운 시대’(新时代)라는 단어가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미래에 과연 어떤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떵샤오핑 이후 중국공산당의 강령의 변화를 살펴보면 해답이 나와 있다.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권력자의 반부패 운동은 거의 모두 당의 단결과 통합을 와해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자신과 입장이 다른 세력을 제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쟝쩌민과 후진타오 역시 그 지속성과 강도에서 차이가 있었을 뿐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시진핑 역시 당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샨(王岐山)과의 강고한 협력으로 강력하면서도 지속적인 반부패 운동을 전개해 전임자들의 정치적 기반을 와해하고 향후 5년 또는 그 이상을 집권할 수 있는 인적 토대를 구성했다. 새로 구성된 그의 측근과 동료가 거의 2/3를 차지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차 당대회 전 한때 무성하게 나돌았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직의 신설이나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폐지 등이 무산된 것은 이런 내용들의 사실 여부를 차지하고라도 시진핑의 권력이 마오쩌뚱이나 떵샤오핑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아직도 무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19차 당 대회의 인적구성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외교담당 국무위원인 양지에츠(杨洁篪)의 정치국 진입과 통전부장(中央统战部部长) 순춘란(孙春兰)의 유임이라 하겠다. 오래 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상 강화와 특히 시진핑이 제창한 강대국 외교를 진두지휘할 외교 분야의 최고 책임자가 중국공산당의 최고위 권력기구인 정치국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국제무대에서의 원활하고 재빠른 대응에 한계가 노출되었고 여러 차례 당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에 외교 분야의 최고 책임자가 정치국에 진입함으로써 이런 논란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중국 정치권력의 남성에 의한 독점인데, 개혁개방 이후 여성으로 실질적인 권력층에 진입했던 사람은 조우언라이(周恩来) 총리의 부인 떵잉차오(邓颖超, 정치국원, 전인대 부위원장, 전국정협주석 등 역임), 우의(吴仪, 정치국원, 부총리), 리우옌동(刘延东, 정치국원, 부총리)과 현 정치국원 순춘란뿐이다. 두 명의 여성 부총리가 더 있었지만 이들은 지금은 없어진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 13억 중국을 이끌어가는 25인의 정치국원 중 여성은 단 한 명뿐이다. 자칭 사회주의 국가에서 여성의 정치적 지위를 여실히 보여주는 초라한 현실이자 역설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시진핑의 권력 집중이 중국정치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 살펴보자, 떵샤오핑의 설계로 중국정치에서 원로들의 종신제가 폐지되고 쟝쩌민과 후진타오를 거치면서 최고 지도자의 10년 집권이 거의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과정에 이르렀고 인민해방군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한 쟝쩌민의 은퇴 후 영향력 행사도 후진타오가 당-정-군의 3권을 시진핑에게 동시에 이양하면서 거의 종식되었다.

    그러나 시진핑의 빠른 권력 장악 후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당 총서기직 폐지와 당 주석직의 신설’이나 19차 당 대회에서 후춘화(胡春华), 천민얼(陈敏尔) 등 차기 후보자들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 실패로 나도는 시진핑의 ‘집권연장’설은 중국정치의 제도화나 안정 보다는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쟝쩌민의 수렴청정의 수혜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했던 시진핑 자신의 지나친 권력 강화와 후계 구도의 불확실성은 차기 후보군의 맹목적인 충성과 과잉 경쟁으로 오히려 제도화(法治) 과정에 있던 중국 정치를 다시 과거의 인치(人治)시대로 되돌리고 노정객들의 정치개입을 정당화시켜주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쟝쩌민 개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샹하이방(上海帮) 세력의 소멸과 투완파(团派)의 급격한 약화로 이전 같은 치열한 권력의 분열 현상은 줄어들겠지만, 맹목적인 충성과 그에 의한 발탁은 오히려 유능한 새로운 인물들의 성장을 가로막아 중국 정치의 새로운 병폐가 될 수도 있다. 막강한 권력을 틀어쥐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이 어떻게 중국정치를 변화시킬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부분이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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