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워서 얼치기, 얼간이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 ‘얼’과 ‘-엽다’의 결합
        2017년 10월 25일 09: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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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같이 복잡한 세상을 사는 한국인은 보아서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것이 아니라서 조금만 생각을 해야 하면 당장 어렵다고 말한다. 한창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해야 할 어린이들조차 새로운 것을 보면 흥미를 느끼기보다는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고 다소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할 수 있는 일에도 ‘어렵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쓴다. 이는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렵다’의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말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고어에서 ‘말’은 오줌과 똥을 가리켰고, ‘갈’은 ‘갈다’ 혹은 ‘갉다’의 어근이다. 그러므로 ‘마렵다’는 오줌이나 똥이 나오기 직전의 상태로 배설욕을 ‘가렵다’는 갈거나 갉기 직전의 상태로 긁고 싶은 충동을 뜻한다. 비슷하게 생긴 ‘두렵다’는 ‘두리다’에서, ‘노엽다’는 ‘노하다’에서 온 말이므로 만든 구조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이제 ‘어렵다’를 풀기 위해 ‘얼’을 잘 정의해야 한다. ‘얼’은 복잡하게 뻗어나간 말인데 여기에서는 ‘어’나 ‘언’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정확하지 않게 대강’의 뜻이다.

    ‘얼핏’, ‘얼추’, ‘얼른’, ‘등어리’과 같이 간단한 말에도 쓰이지만 겨울에 땅을 대강 갈아엎는 것과 거기에 심어 먹는 채소를 모두 ‘얼갈이’라고 부른다. 또 소금으로 대충 간을 하여 절인 것은 ‘얼간이’라고 하는데 ‘얼버무린’ 음식은 정성이 별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변변치 못한 사람을 두고도 ‘얼간이’이나 ‘얼치기’라고 부른다. ‘어리벙벙’은 얼이 차올랐다는 뜻이고 순서를 바꾸면 ‘벙어리’가 된다. 뜻은 ‘어벙이’와 비슷하다. 또 명사형 ‘어림’은 ‘어림하다’와 같이 쓰는데 정확하지 않게 대강 헤아려 셈하는 것이다. 용비어천가에서 ‘어리다’는 ‘어리석다’의 뜻이었지만 오늘날은 어려서 현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나이가 적은 것의 뜻으로 변하였다.

    정확하지 않게 대강의 뜻을 가진 ‘얼’과 어떤 것에 대한 충동을 나타내는 ‘-엽다’를 결합한 ‘어렵다’는 ‘정확하지 않게 대강 쉽게 하고 싶다’는 뜻이다. 뜻을 풀어놓고 보니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말의 뜻을 잘 모르고 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어렵다’는 말을 대신하여 ‘대충 하고 싶다’로 바꾸면 아마 온갖 곳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이렇게 싸움이 일어나는 큰 이유는 상대가 ‘얼토당토않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이는 ‘얼치지도 당치도 않다’는 뜻이다.

    ‘얼’의 반대말은 ‘당’도 있겠지만 ‘꼼꼼’도 있다. 또 ‘어렵다’의 반대말은 ‘곰곰’이다. 그래서 행동은 ‘꼼꼼히’ 하고 생각은 ‘곰곰이’ 해야 한다. 생각은 거의 말로 하는데 말로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말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말의 논리적 관계에 눈을 떠서 밝은 것을 두고 문리(文理)가 트이거나 훤하다고 하고 동일하게 숫자 사이의 관계는 수리(數理)라고 한다. 동이 트면 훤해져서 세상을 잘 볼 수 있게 되듯 이치에 밝으면 ‘언뜻’이 아니라 ‘속뜻’을 차릴 수 있게 된다.

    필자소개
    우리는 아직도 뜻이 서로 맞지 않는 한문이나 그리스-로마의 말을 가져다 학문을 하기에 점차 말과 삶은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는 말의 뜻을 따지고 풀어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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