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기 사망 2년만의 수사 결과
    강신명 무혐의, 경찰관 4명 기소
    민변 “공권력 남용의 최종 책임자 불기소 유감”
        2017년 10월 17일 06: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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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과 관련해 경찰 지휘부와 살수차를 조작한 경찰관 4명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겐 무혐의 처분을 내려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살수차에서 물대포를 발사해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과 신윤균 전 서울경찰청 제4기동단장, 살수요원인 한모 경장과 최모 경장 등 전·현직 경찰관 4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다만 검찰은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비 관련 대책 문건’에 따르면 살수 승인 및 허가 권한의 최종 책임자가 구 전 서울경찰청장으로 돼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검찰 조사 결과 살수차 충남9호에 탑승한 한·최 경장은 직사 살수를 할 경우 가슴 이하를 겨냥하도록 하는 살수차 운용지침을 어기고 백 농민의 머리에 30초간 직사 살수했다. 또 단계별 운용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사건 당일 살수차의 발사 압력도 적정 수준에서 통제되지 않았다. 특히 백 농민에게 사용한 살수차는 수압 제어장치가 고장난 상태로 시위 진압에 투입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진료기록 감정 및 법의학 자문 결과 백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로 인정했다. 서울대병원도 지난 6월 백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최종 수정한 바 있다.

    이번 검찰 수사 결과는 백 농민의 유가족들이 지난 2015년 11월 18일 강 전 청장 등 7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한 후 거의 2년 만에 나왔다. 늑장 수사라는 비판과 함께 민중총궐기 집회 당일 과잉진압의 총 책임자인 강 전 청장의 무혐의 처분까지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검찰 늑장 수사를 비롯해 경찰의 책임회피, 서울대병원의 사인 조작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던 국가폭력 사건의 중심엔 ‘정권의 눈치보기’가 있었다. 각 기관들이 소신대로 행동했다면 2년을 끌고 올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검찰은 유가족이 고발한 지 무려 11개월만인 지난해 10월 구은수 당시 서울청장 등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고, 강 전 청장은 서면조사에 그쳤다. 당시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여론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던 시점이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 이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지난달 백 농민 사망 1주기에 “심심한 애도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경찰의 첫 공식사과였다. 앞서 이 청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백 농민 사태에 대한 야당의 사과 표명 요구에 부정적이었다.

    정권교체 후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쪽은 서울대병원이었다. 백 농민의 사인을 ‘병사’로 기록한 사망진단서 논란 내내 서울대병원 측은 사망진단서는 주치의의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했으나, 정권이 바뀐 후인 6월 ‘외인사’로 수정했다.

    한편 백 농민의 유가족들은 강신명 전 청장이 무혐의 처분된 것과 관련해 반발하며 재고발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 농민 큰딸 백도라지 씨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둘 다 현장에 없었던 지도부라면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며 “구은수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집회 관리 총책임자로서 과실이 인정돼 기소됐는데, 그렇다면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도 기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 전 청장 등 기소에서 빠진 다른 관련자들도 재고발을 검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백남기투쟁본부는 당초 유가족들이 고발한 살인혐의가 아닌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적용된 것도 문제 삼았다. 살수차 고장, 살수차운영지침 위반 등을 검찰이 인정한 점을 들며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혐의를 적용할 수 있음에도 검찰은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했다. 혐의 적용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변도 성명을 내고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 대한 불기소 처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검찰이 이 사건의 성격을 국가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공권력 남용을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경찰청장을 기소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민변 또한 투쟁본부와 마찬가지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와 관련해 “살수의 시작과 종료가 모두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피고인들이 고인의 피격 당시 상황도 인지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며 “충분히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음에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한 검찰의 이번 처분은 사건의 본질을 간과한 부적절한 조치”이라고 했다.

    정치권도 강 전 청장 무혐의 처분을 비판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경찰의 시위대 강경진압의 최고 책임자였던 강 전 청장에게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과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강 전 청장은 당시 최고 단계 비상령인 갑호비상령을 내린 정책적 결정 당사자”라며 “총책임자를 기소조차 하지 않는 것은 허울뿐인 책임이며, 정부가 인정한 책임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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