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힌두교에도 삼위일체?
    [인도 100문-20] 창조와 보존, 파괴
        2017년 10월 17일 12: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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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에는 삼위일체의 개념이 있다. 《바이블》에 나오는 어휘는 아니지만, 그 안에 나오는 신의 이치를 풀어 적으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예수고 예수가 성령이고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기독교 신학적으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자세하게 부연을 못하겠지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른 봐서 서로 모순되지 않는 존재이니 그러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비하면 힌두교에 있는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세상을 창조한 브라흐마Brahma는 곧 세상을 보존하는 비슈누Vishnu이고 그는 다시 세상을 파괴하는 쉬바Shiva라는 것이다.

    창조라는 게 다름 아니라 세상을 운영하는 것이고, 운영을 하려 치면 당연히 이런 법도 만들고 저런 법도 만들고 상황에 따라 이 사람 저 사람 서로 다른 모양으로 화신을 보내어 세상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슈누는 여러 화신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화신을 산스끄리뜨어로 아와따르avatar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그 아바타다. 기독교의 예수는 하느님의 아바타 즉 화신인 것이다. 그리 되면서, 창조는 곧 보존이 된다.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보존이라는 게 다름 아니라 파괴라는 의미를 듣자 하면 누구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무릎을 탁 치곤 한다. 보존을 하려면 죽일 놈은 죽이고 살릴 놈은 살려야 한다. 살리는 데에 방점을 찍으면 비슈누가 되고, 죽일 놈에 방점을 찍으면 쉬바가 된다. 다시 말하면 보존하기 위해 파괴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 파괴란 새로운 창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쉬바는 우주를 파괴하는 주(主)다.

    삼위일체의 개념 안에서는 모든 것이 동일한 것이다 @이광수

    이러한 삼위일체의 개념에 따라 그 수도 없이 많은 신들이 그 세 신이 갖는 성격에 따라 비슷한 성격끼리 그 밑으로 따라 붙었다. 마치 군대 연병장에 흩어진 군인이 될 민간인들을 군인으로 입소시키기 위해 세 개의 대대로 분류하고 그 안에 배속시킨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일단 창조주 브라흐마는 별 인기가 없어서 많은 졸개를 영입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창조는 그 사역을 하면 별로 다른 일로 변해갈 확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비슈누는 주로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신들이 그 밑으로 모인다. 황금의 신이라든가, 춤과 노래의 신이라든가, 소를 보호하는 신이라든가, 깨달음의 신이라든가, 세상을 구원하는 신이라든가 하는 그런 신들이 모두 비슈누의 아바타로 편입이 된다. 그래서 그 아바타는 시기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르다. 만약에 몇 백 년이 흘러 간디가 신이 되면 비슈누의 한 아바타로 될 듯하다.

    반면에 쉬바는 부정적인 성격을 가진 신들이 모이는 곳이다. 응징하는 자, 깡패, 방랑자, 사기꾼, 섹스, 밤, 생산 주로 이런 성격들을 갖는 신들이 쉬바의 주변으로 모인다. 내가 만약 신이 된다면, 쉬바의 하수가 될 것 같다.

    세상을 잘 다스리는 이상 군주는 비슈누의 화신이고, 양성을 같이 가지고 있는 히즈라hijra들이 모시는 신은 쉬바다. 그러면서 이리 보면 이것이라 할 수 있고 저리 보면 저것이라 할 수 있는 신의 세계가 된다. 그 신의 세계란 곧 인간 세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힌두교는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이 이것이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하는 세계다.

    결국 힌두교의 삼위일체 설 안에서는 파괴 없이 창조란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죽이지 않고 새로운 자신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이치다. 그런데 그 파괴라는 것이 깨끗한 짓을 해도 파괴고, 더러운 짓을 해도 파괴다. 세상을 보존하고, 창조하려면 깨끗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더럽게 하는 사람도 있다. 굳이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어찌 내가 하는 것만 옳다 할 수 있는가? 그것만이 옳다고 하는 것조차도 좋다. 그것도 여러 방편 중의 하나니까. 다만 한 가지는 알아야 한다. 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외치면 세상은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선한 싸움이든지 아니든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니 따질 필요는 없다. 역으로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사는 세상은 나쁜 놈 전성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독교-이슬람 세계에서는 허구 헌 날 싸움질만 하고 힌두 세계에서는 나쁜 놈들만 군림해서 사는 것이다.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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