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동조합운동의 전망과 제언
        2012년 08월 27일 10: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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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협동조합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사단법인 협동조합연구소의 김기태 소장이 다섯 차례의 연재 글을 보내주었다. 김기태 소장의 연재는 이번의 전망과 제언 글로 마무리를 한다. 이후에도 레디앙은 협동조합운동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계속 글을 게재할 예정이다. 김기태 소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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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축, 협동조합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이번 대선 국면에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상식적 공약’이 되었다. 하지만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만으로 경제민주화가 이뤄질 수 없다.

    재벌문제만 거론해서는 ‘착한 재벌’을 기대하는 형용모순의 희망을 기대하거나, 재벌의 출자구조를 변경해서 외국계 자본의 힘만 키워주는 사태 이외의 다른 선택사항이 없게 된다. 경제구조 자체의 독점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지배구조만 문제삼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는 ‘민주적인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적인 경제생태계란 독점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 한 두개의 산업이나 대기업의 성패가 국가 전체의 경제생태계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재벌의 독점적 이윤추구를 제어하는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2)재벌에 종속되지 않는 건실한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3)지역사회 공동체가 통제할 수 있는 경제 영역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1844년 영국 로치데일에서 문을 연 최초의 소비조합 상점. 현재는 소비조합 박물관

    좀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들의 여유자금이 영리은행과 펀드를 통해 재벌이나 금융자본의 돈놀이 수단으로 쓰이지 않고, 4)지역공동체를 책임지는 방식의 저축과 투자를 이끌어야 한다.

    제대로 된 협동조합은행이나 사회적투자 등이 활성화되도록 국민들의 의식을 전환하면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위에서 제시한 민주적인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4가지 과제 중 세번째와 네번째의 과제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이 제대로 활성화되면 경제민주화의 두 기둥이 튼튼하게 자리잡고, 협동조합의 운영에 광범위한 조합원이 참여하면서 일상적 민주주의의 학교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협동조합은 경제와 시민사회, 정치적 영역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달성에서 더 나아가 실질적 민주주의로 발전하여 87년 체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형식적인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우려?

    앞에서 제시한 기분좋은 시나리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한국사회에 자리잡을 수도 있다.

    한국사회는 ‘다이나믹 코리아’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경험 속에서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을 써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상당히 많이 퍼져 있다.

    그런데 이런 ‘까라면 까’라는 뒤틀린 사고방식이 ‘높은 성과를 만들어 낸 결과’에 의해 외려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경제적 압축 성장에 따른 ‘물질주의’가 가져다준 병폐라고 할 수 있다.

    후기자본부의 거대한 매스미디어와 결합된 국가주의적 홍보로 인해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의 각성도 부분적이고, 중산층의 건전한 시민의식도 폭넓게 형성되지 못한 허약한 구조에서, 지역감정을 기반으로 한 동네 상인이 동원되는 하위 정치활동이 어느 정당이나 할 것 없이 존재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시민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일상적 경제활동과 연결하여 시민의 민주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반대로 형식적인 협동조합을 만들어 오히려 기존의 음성적 수익을 합법적으로 만들려는 작업도 안벌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왜냐하면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 ‘다이나믹 코리아’이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연구소에 상담을 하는 사람들 중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업 모델을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협동조합이 ‘노동운동’과 함께 태어났다거나, 1인1표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있으므로 당연히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원론적인 주장은 구체적인 현실의 관계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강력한 국가권력이 권력에 반대하는 협동조합 지도자들을 몰아내고 자기 입맛에만 맞는 협동조합을 종속적 하위파트너로 활용하려 들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그런 협동조합을 경험해 본 사례가 두번이나 있다.

    현재로서 국가적 차원의 협동조합 관리는 불가능하겠지만, 하위 정치지향 인사들이 자신들의 힘을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협동조합을 조직하려고 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지는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실질적인 참여를 유도하지 못해 경쟁력이 낮을 수 밖에 없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제도화시키도록 압력을 가하거나, 정치적 후원세력의 지원을 받아 벌충할 수도 있다.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자 퇴직 고위공무원이 만드는 시민사회단체가 나타나는 현상이 사회적협동조합을 둘러싸고 재연될 수도 있고,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초기 풀뿌리 민주주의를 풀뿌리 보수주의가 압도했던 상황도 협동조합을 둘러싸고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현실은 중간의 어디쯤

    현실적인 전망은 좋은 시나리오와 나쁜 시나리오 중 어느 한가지로 귀결되기보다는 두가지 시나리오의 중간 어디쯤에서 나타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를 둘러싼 경쟁이나 정치를 둘러싼 경쟁과 같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일상적인 경제활동인 협동조합에서도 여러 주체 세력들의 경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양한 경쟁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에 따라 좋은 시나리오 가까이에서 균형이 이뤄질 수도 있고, 나쁜 시나리오 가까이에서 균형이 이뤄질 수도 있다.

    협동조합의 사상적 흐름은 합리적 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좋은 시나리오에 가깝게 미래의 전망이 나타난다면, 정치적 영역에서는 협동조합을 둘러싸고 선의의 경쟁이 나타날 것이다. 나쁜 시나리오가 전면화된다면 진보정치는 더 힘든 상황을 맞이 할 수 밖에 없다.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자. 협동조합의 마당은 이미 펼쳐졌다. 여기가 로두스섬이다. 여기서 뛰어야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의 한계를 이야기하며 회피해 봐야 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미 시작된 마당에 선수들이 입장하고 경기할 때 밖에서 아무리 경기규칙의 문제를 비판해도 메달을 딸 수 없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운동을 할 때 진보진영의 사람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면 여력이 없다거나 협동조합이 과연 그렇게 의미가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실제 진보정치진영의 도움은 이정희 의원이 협동조합기본법제정연대회의의 법안 청원을 소개한 것에서 머물렀다. 필자는 진보정치진영의 여력이 없었다기보다는 협동조합에 대한 진보진영의 입장이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 더 핵심적인 이유일 것으로 짐작한다.

    협동조합 지도자 양성부터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조합원들과 역량있고 헌신적인 협동조합 지도자이다. 둘 다 모두 인적자원이다. 협동조합은 ‘자본은 단지 사업에 필요한 수단’일 뿐인 ‘사람이 중심’인 사업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이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려면 협동조합운동에 헌신할 수 있는 협동조합 지도자를 육성하고,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아무래도 물적인 자원보다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많이 있는 진보진영의 강점이 협동조합 지도자가 될만한 인적 자원 측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다.

    물론 협동조합은 단순히 ‘인간관계’의 조직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조직이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사업’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사업마인드가 약할 수 있다.

    사람을 조직하는 역량은 뛰어나더라도, ‘회계나 경영, 기술’ 등 사업에 필요한 실무적 역량은 일반인보다 더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협동조합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사업’과 ‘운동’의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협동조합 지도자를 얼마나 빠르게 많이 양성하는가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

    우선 업종별노조나 산별노조, 진보정치를 책임지는 조직 등 적정한 규모 이상에서 ‘협동사회경제’ 담당자를 두고, 학습모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

    유리한 공간부터 활용해야

    맹자의 왕도론과 협동조합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 인적자원, 즉 좋은 지도자와 조합원이라는 점은 ‘천시(天時)’나 ‘지리(地利)’보다 ‘인화(人和)’가 중요하다는 말과 맞닿아 있다.

    2009년 부산노동자생협 창립대회 모습

    하지만 기왕에 협동조합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지리’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리’라 하면 진보진영의 영향력이 잘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협동조합을 먼저 구상할 수 있다. 산별노조나 업종별 노조의 경우에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노동운동의 단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영리기업도 “사회적책임경영”을 화두로 들고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의 “사회적책임운동”도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협동조합은 좋은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역운동이 활성화된 지역에서 먼저 협동조합 운동을 모색하고 설계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퀘벡은 지역 노동조합의 주도로 협동조합육성기금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 필요하다. 좋은 사업 아이템은 노동자들이나 지역민들이 제공할 수 있는 자원과 필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서 나온다.

    그동안 진보진영은 경제적 활동을 추석이나 설같은 명절의 선물을 활용하거나 파업지원금 전달이나 후원의 밤 정도의 이벤트 행사에 멈추고 있었다. 대규모 기업별 노조나 업종별, 산별 노조의 일상적인 경제활동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

    부산에서는 노동자생활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생협과 달리 노동자들의 소득수준을 고려하여 유기농산물을 고집하지 않고, 일반농산물도 취급하고 있다. 경남지역 농민회와 협력하여 농산물을 조달한다.

    노원구는 공무원노조가 시청에서 설립한 공동육아시설의 운영을 위탁받아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영유아를 가진 공무원들에게는 실익을 줄 수 있다. 대학생협이 된다면 시군청생협이 안될 이유가 없다. 대기업노조도 이런 방식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혁신과 연대

    협동조합은 사업적 조직이므로, 외부의 사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단히 스스로를 혁신해 나가지 않으면 머지않아 퇴조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소매유통환경은 슈퍼마켓이 본격화되기 전에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이 주로 담당했다. 이 때에는 한국노총 계열의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매장형 소비조합이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운영되었다.

    하지만 노동조합 주도의 소비조합매장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을 때, 슈퍼마켓이 대거 등장하여 더 낮은 가격과 더 많은 물품으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을 끌어들였다.

    혁신을 하지 못하고, 조합원의 참여를 보장하지 못한 노동조합이 운영했던 소비조합은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문을 닫게 되었다.

    경제구조의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조사연구, 지속적인 혁신, 협동조합의 원칙과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또한 세계적으로 움직이며 자본을 동원하는 대규모 자본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간의 협동이 필요하다. 작은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큰 비전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적 경제활동인 협동조합의 특성상 매출액 하락, 수익성 감소 등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부정적 피드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혁신과 연대라는 두가지 중요한 진보진영의 가치가 얼마나 실천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데 있어 협동조합은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으로 협동조합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질 때 가장 중요해질 영역이다.

    협동조합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합의

    앞에서 제시한 세가지 과제들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진보진영 내에서 ‘협동조합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협동조합, 혹은 더 넓게 보면 협동사회경제가 진보진영운동에서 갖는 독자적인 포지셔닝과 다른 운동영역과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 지를 정리하고 전체적인 전략 속에서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까지 다섯 개의 연재를 통해 필자는 협동조합운동이 진보진영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여러 각도에서 설명하려 노력했다. 이 글들이 진보진영이 협동조합운동의 중요성을 합의해 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현재 사단법인 한국협동조합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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