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맞선 두 ‘김지영’
    사내하청 두 경리 노동자의 이야기
        2017년 10월 01일 04: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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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총무 이야기

    “2013년 갑상선 앞 판정 받고 수술 전날도 밤 12시까지 일하고 다음 날 새벽 입원해 수술 받았다.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수술 뒤 실밥도 풀지 못하고 출근해 커피를 탔다. 아무리 바빠도 커피는 탔다. 내가 타주던 커피 잘도 마시던 분들이 내 하소연은 뒷등으로도 안 들어준다. 왜 우리만 전환 배제란 말인가”

    SNS에 올라온 ‘허 총무 이야기’를 읽을 때만 해도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사진설명) 하청업체 경리였다가 잘린 허진남, 김미려 씨는 현대차 울산공장 앞 선전전 때마다 ‘경리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라는 글자를 새긴 셔츠를 맞춰 입고 나선다. ⓒ 이정호

    새해 해돋이 관광객이 몰리는 울산 간절곶이 고향인 허진남(37) 씨는 1981년 횟집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바람(다음엔 진짜 남자 아이)대로 곧이어 남동생이 태어났다. IMF 직격탄을 맞은 아버지가 횟집을 접었을 때 허씨는 고3이었다. 부산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1학기만 다니고 그만 뒀다. 기울어진 가세는 두 딸의 대학 등록금을 대기에 버거웠다. 20살 허씨의 우울한 21세기는 고향 면사무소에서 공공근로로 시작됐다. 인감과 호적을 떼는 석 달 짜리 공공근로를 2번 하다가 상용직까지 해서 3년쯤 일했다.

    2003년 현대차 외주하청에 경리로 들어가 2년간 야간대 사회복지학과를 다시 다녔다. 복지쪽 일을 하고 싶어 졸업과 동시에 장애인복지관에서 1년을 일했다. 그러나 복지관은 박봉에다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순수하지도 않았다.

    다시 2007년 현대차 사내하청 동남하이텍에 경리로 들어갔다. 여기서 만 10년을 다녔다. 같은 사무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컴퓨터를 두들기는데도 회사 이름은 지난 7월 창진에프티로 바뀌었다.

    사라진 80명의 경리

    직원들 출입증과 격려금 성과급 줄 때마다 결재판을 들고 원청 부서장에게 가서 사인을 받아야 했다. 결재를 받으러 갔을 때 봤던 원청 부장이 지난해 7월 업체 사장으로 옷만 갈아입고 왔다. 불법파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사내하청 업체를 폐업하고 외주로 돌릴 거라고 했다. 지금 다니는 하청직원들은 정규직으로 신규 입사하거나 다른 하청으로 전환배치하겠다고 했다. 새 사장은 허씨에게 현장으로 보내 줄 테니 폐업할 때까지만 새 경리에게 업무를 가르치라고 했다.

    그렇게 반년이 흐르고 지난 5월 업체는 한 달 뒤 폐업을 공고했다. 그제야 사장은 현장으로 갈 수 없다고 통보했다. 외주로 나가는 업체를 따라 나가라고 했다. 그 순간 10년차 경력은 사라지고 6개월짜리 계약직 신세가 될 게 뻔했다. 더구나 새 경리도 뽑았는데 따라가서 할 일도 없었다.

    (사진설명) 폐업 뒤 출입증을 반납하라는 회사의 통보에 두 사람은 출입증과 티셔츠를 싸서 ‘우리의 20년을 보냅니다’라는 글을 써 서울 양재도 현대차 본사로 보냈다. ⓒ 이정호

    120여 개 사내하청 업체 중 80여 개가 1년 사이 사라졌다. 업체마다 1명씩 일하던 경리도 모두 잘렸다. 허씨는 지난 5월 10일 현대차 협력지원팀을 찾아가 업체담당 이사를 만나 항의했더니 “억울하면 소송 걸어라”는 말만 들었다. SNS를 떠도는 ‘허 총무 이야기’는 허씨가 그 때의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은 거다.

    오롯이 청춘을 바친 현대차

    김미려(34) 씨도 지난 6월 현대차 사내하청 연보테크가 폐업하면서 허씨처럼 일자리를 잃은 업체 경리다. 김씨도 울산에 태를 묻었다. 아버지는 울산의 효성 하청업체 반장을 지냈지만 일찍 밀려났다. 가난했던 아버지는 세 딸을 건사하려고 한시도 쉬지 않고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했다.

    김씨는 울산여상 3학년 때 현장실습생으로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에 입사해 현대 가족이 됐다. 울산 사람들이 ‘울여상’이라고 부르는 이 학교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세웠다.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들이 당장 취업을 위해 택했던 학교다. 울산의 기업체마다 울여상 졸업생들을 서로 데려 가려고 했다.

    김씨는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에서 10개월쯤 일하다가 사장이 현장에서 사고로 숨지는 끔찍한 일을 보고는 다른 길을 택했다. 1년 반쯤 동물병원 간호사로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2008년 현대차 외주하청사에서 일하던 언니의 소개로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에 경리로 들어갔다. 김씨는 같은 자리에 앉아 회사 이름만 동일전기, 성주기업, 연보테크로 바뀌는 걸 목격했다.

    김씨 역시 원청의 부장이나 이사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회사 사장으로 오는 걸 봤다. 지난 6월초 김씨가 일자리를 잃자 한동안 전업주부로 있던 친정어머니가 나이 육십에 다시 청소노동자로 나서는 걸 보고 현대차와 싸우기로 결심했다.

    (사진설명) 허진남씨는 지난 6월 5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 이정호

    두 사람은 경리는 배치전환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정규직노조도 찾아가고, 원청도 찾아가고, 청와대 신문고,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도 넣었지만 소용없었다. 노동부는 “폐업이라서 해결방안이 없다”고만 했다. 두 사람은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 문을 두드렸다. 생산직만 받았던 현대차비지회는 논의 끝에 지난 6월 두 사람을 조합원으로 받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경리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라는 글자를 새긴 셔츠를 맞춰 입고 1인 시위에 나섰다.

    현대차에 맞선 두 ‘김지영’

    김씨는 19살 때 현대하이스코 현장실습을 시작으로 현대위아, 현대차까지 10년 넘게 ‘현대’의 사내하청으로 살아왔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놀았던 적이 딱 한 달이었다는 김씨는 직장맘으로 살아온 세월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9살 아이를 키우는 김씨는 요즘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있다. 그 자신도 4.5kg짜리 우량아를 낳고 독박 육아의 경험이 있어 너무도 살갑게 와 닿는다고 했다. 30대 여성들의 인생보고서인 이 책은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김씨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116쪽)

    두 사람의 ‘김지영’은 지금 초재벌 현대기아차그룹을 상대로 오늘도 원하청 노동자가 근무교대하는 오후 3시반이면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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