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논란
    제빵기사들의 노동권·인권 논의 실종
    정의당 등 토론회 열고 재계와 보수언론 주장 비판
        2017년 09월 27일 06: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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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 본사에 제빵기사의 직접고용을 명령한 것을 놓고 정치권 안팎으로 논란이 번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재계와 보수야당은 ‘파견법을 넘어선 결정’, ‘파리바게뜨의 몰락’, ‘시장경제 위협’이라고 주장하고, 보수언론은 이를 받아쓰며 노동부 결정을 힐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제빵기사들이 빼앗겼던 노동권과 인권을 어떻게 되찾아올지에 대한 논의는 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 정의당 노동이당당한나라 본부,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는 27일 오후 국회에서 ‘파리바게트 제빵기사 직접고용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긴급토론회 모습(사진=유하라)

    앞서 경총 등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 등에선 ‘고용노동부가 제조업에 적용되는 원하청 간 불법파견 법리를 전혀 다른 프랜차이즈 산업에 무리하게 확대 적용했다’, ‘상법과 가맹사업법으로 인정되는 프랜차이즈 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면 연간 50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하여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 ‘노동부의 시정명령대로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더라도 여전히 불법파견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등의 반대 논리를 내세웠다.

    이날 토론의 발제를 맡은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신인수 변호사는 “논란의 홍수 속에서 정작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제빵기사들의 말은 듣기 어렵다. 제빵기사들의 노동권과 법치주의는 실종됐고,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사라지거나 은폐되고 있다”며 “지난 10년간 물신주의, 돈, 기업 중심주의에 빠져버린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 변호사는 “이익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노동법의 대원칙”이라며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문제는 본사가 제빵기사들이 내는 이익을 취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은 회피하는 사용자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파리바게뜨 본사는 제빵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다?

    경총은 지난 24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계약당사자도 아닌 제3자에 불과한 파리파게뜨가 불법파견을 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고용 책임을 지라는 것은 파견법을 넘어선 결정이며, 굳이 불법파견을 따지자면 가맹점주가 사용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 변호사는 파리바게뜨 정보공개서 중 용역부담내역에 관한 자료를 제시하며 “협력업체가 가맹점에 제빵기사 보낼 때 (본사가) 용역비를 책정하고 도급계약을 체결한다. 그 비용을 계약당사자인 가맹점주와 협력업체가 결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제빵기사 임금을 본사가 정한다는 것이다.

    근로계약과 관련해서도 “(재계는 본사가) 근로계약 당사자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계약서대로면 그렇지만 본사의 지주회사인 SPC회장은 어느 매장에 직접 가서 ‘케이크 없다’고 지적하고 제빵기사는 ‘일찍 출근해서 만들어놓겠다’고 답한다. 얼마 후에 제빵기사들의 ‘단톡방’을 통해 ‘최근 회장님 순회 점포 중 케이크 부족으로 전국 점포 생크림 케이크 생산시간 조기 시행 지시가 있었다’는 본사의 지시가 떨어진다. 사용자가 아니라면 SPC회장은 무슨 권한으로 제빵기사들에게 이런 지시를 하나”라고 반문했다.

    신 변호사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제빵기사의 업무를 지휘·감독한 사실은 이미 확인됐고, 노동법에선 이런 사람들을 사용자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제3자이기 때문에 불법파견 아니다?

    경총은 “파리바게트가 가맹본부이고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고용의 책임을 지라는 것은 파견법을 넘어선 결정”이라며 “굳이 불법파견을 따지자면 가맹점주가 사용자에 해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 변호사는 “형식상 계약당사자가 아님에도 실질적으로 지휘·명령하는 것이 바로 불법파견”이라며 “때문에 불법파견은 원래 계약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고 반박, 경총이 파견법 규정을 왜곡하고 지적했다.

    실제로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2015.2.26.) 판례도 존재한다. 노동자 파견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있어 계약서라는 형식이 아닌 실질적 관계로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 변호사는 또한 “원청(파리바게뜨)과 하청(협력업체) 간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어도 얼마든지 불법파견이 성립할 수 있다”며 “실제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2차 협력업체들과 현대자동차 사이에 직접 도급계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현대자동차가 이들로부터 근로자를 제공받아 실질적으로 사용했다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파견법에 관한 논쟁의 여지 있지만 파리바게뜨만큼 불법파견이 확실한 곳은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다수설”이라며 “적법, 불법을 따지면 불법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일하지만 불법파견이라는 증거가 이렇게나 많은 사건은 극히 드물다”고 강조했다.

    프랜차이즈 산업에 파견법 적용 안 된다?

    경총은 또한 “제조업에 적용되는 원하청 간 불법파견 법리를 전혀 다른 프랜차이즈 산업에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도 밝혔다.

    이에 대해서도 신 변호사는 “일부 경총이나 언론 주장처럼 파견법은 제조업과 프랜차이즈 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파견법은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선언할 뿐, 업종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산업이든지 ‘파견대상 업무와 기간은 제한’되고, ‘허가받은 업체만 파견을 할 수 있다’”며 “이번에 문제된 것은 제빵업무가 파견대상 업무가 아니고, 협력업체들이 근로자파견 허가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형식적 도급계약과 달리 실제로는 제3자인 파리바게뜨 본사가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하고, 제빵기사를 지휘·감독했기 때문에 파견법이 문제된 것”이라며 “프랜차이즈 산업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산업도 당연히 파견법을 준수해야 하고 준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접고용하면 경영상 위기 온다?

    보수야당에선 5천여 명의 제빵기사 등을 직고용하면 인건비 추가 부담으로 경영상 위기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가맹점 제빵기사가 본사 직영기사에 비해 연간 급여가 약 1,000만 원 가량 낮으므로 본사가 직접 고용하게 되면 연간 약 500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22일 “파리바게뜨가 제빵사를 직접 고용하면 그 부담은 온전히 대리점주들의 비용으로 전가된다”면서 “현재의 정규직 인원보다 더 많은 인원을 직접고용 하라는 것은 전국의 제과점에 사실상 문 닫으라고 협박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이 논리는 수학이 아니라 간단한 산수만으로도 허점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다”며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면 파리바게뜨 본사가 상당한 추가적 인건비를 부담한다거나,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현재 업무지원금으로 협력업체에 제빵기사 1인당 약 150만 원을 지원하고, 가맹점주는 협력업체에게 도급비로 매월 300만 원을 지급한다.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의 초임(복리후생비 포함)은 연간 약 2,700만 원, 월 225만 원 내외다. 협력업체는 본사에 받는 업무지원비와 가맹점주에게 받는 도급비를 제빵기사의 퇴직금 적립금, 4대 보험료, 대체인력 인건비(50~60만 원 내외), 사무실 운영비에 사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변호사는 “퇴직금 적립, 4대 보험료 사용자 부담분, 대체인력 인건비 등을 공제하더라도 협력업체는 (제빵기사 1인당) 135만 원이 남는다”면서 “일반적인 파견업체 경우에 비추어 보더라도 높은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해 제빵기사 1인당 연간 1,000만 원, 매월 83만 원을 추가로 부담하더라도 현재 상태에서 퇴직금 적립, 4대 보험료, 대체인력 인건비를 제하고도 오히려 52만 원(=135만 원–83만 원)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 변호사는 “실제로 업무를 지시하고, 지휘·감독한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 파견법과 판례의 입장이고, 이것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이번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사건의 핵심”이라며 “이제 사용사업주, 진짜 사장인 파리바게뜨 본사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그 동안 사용자가 아니라면서 극구 제빵기사 노동조합을 외면하던 기존 관행을 벗어나 성실히 교섭에 응하고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헌법에서 정한 노동3권과 근로의 권리, 파견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령, 그리고 ‘타인을 사용하여 이익을 얻는 자는 그로 인한 책임과 위험도 부담한다’는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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