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의 압축성장은 어려워
[7·8·9투쟁 30년] 돌아보는 노동운동과 진보정치 ①
    2017년 09월 26일 11: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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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정의당 부설 미래정치센터 주최로 87년 7·8·9노동자 대투쟁 30주년 기획토론회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무엇을 할 것인가?>’가 개최된 바 있다. 이 토론회에서 발표를 했던 장석준 미래정치센터 부소장의 발표문 ‘노동자 대투쟁 30주년에 돌아보는 노동운동과 진보정치’ 내용을 보다 폭넓게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필자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분량이 길어서 2회로 나눈다. <편집자> —————————-

들어가며

1.1 이 글은 ‘시론’이다. 필자 자신도 확정적 명제라기보다는 잠정적 가설로 생각하는 내용이 꽤 많다. 이후 더 많은 성찰과 토론을 통해 다듬어야 할 내용들이다. 이 점을 감안하고 이 발제문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1.2 이 글은 1987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를 돌아보는 주된 방법으로, 한국 사례를 다른 나라들, 주로 서구 사례와 비교할 것이다. 서구 노동운동이 서구보다 늦게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교과서적 모델이거나 가장 성공한 사례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의 운동에는 분명 그만의 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만의 특성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다른 나라와의 비교다. 노동운동-진보정치의 역사가 몇 세대는 더 오래된 (서)유럽 및 일본 사례, 한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노동운동이 새로 시작됐으나 다른 길을 밟은 브라질 사례 등이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1.3 서구와의 비교에서 선명히 부각되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성은 역시 압축성장이다. 서구에서 최소한 100년 넘게, 길게는 200년 동안 전개된 발전이 남한에서는 거의 한 세대만에 전개됐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국 사회운동 전반의 근본 난제가 대두한다. 자본주의 구조는 압축성장할 수 있지만 이를 비판하고 교정하며 극복의 가능성을 함축하는 주체는 압축성장할 수 없다. 즉, 사회운동은 압축성숙하기 힘들다. 때문에 비판 대상인 자본주의 구조에 끊임없이 추월당한다. 필자는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과 세계> 2016년 하반기 호에 발표한 논문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적 궤적과 현재의 성찰: 서구 사회운동과 비교하며」에서 이러한 논지에 따라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운동 전반을 정리하려 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노동운동-진보정치에 초점을 맞추어 논지를 전개하겠다.

1.4 아래에서는 우선 서구 노동운동 성장기(19세기-20세기 초)의 경험에 견줘 1987년 이후 한국의 경험을 돌아보겠다. 다음에는 서구 노동운동 전성기(20세기 중-최근)와 현재 한국 상황을 대비하며 논의를 이어가겠다. 마지막에는 성숙의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제는 서구 노동운동과 같은 시간대(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과학기술 고도화의 시간 지평)에 놓인 한국 노동운동-진보정치의 과제를 짚어보겠다.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1842년 영국 차티스트 노동자들의 파업 모습

성숙의 시간을 빼앗겨 …

2.1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길게는 18-19세기 전환기(영국), 짧게는 19-20세기 전환기부터 노동운동이 시작됐고 이와 약간의 시차를 두며 진보정치가 태동했다. 이로부터 몇 세대에 걸쳐 노동운동-진보정치의 성장기가 지속됐다. 이 시기 동안 서구 노동 대중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며 나름의 특성을 축적했다.

2.1.1 자본주의 이전의 동업조합은 파괴됐다. 그러나 그 기억을 바탕으로 제1세대 노동조합이 등장했다. 그래서 1세대 노동조합의 기본 형식은 직업별 노동조합(‘trade’ union)이었다. 이미 영국 노동운동 1세대 안에서 직종 구획을 넘어서는 단일 노동조합을 건설하자는 이상이 대두했다(1830년대 영국의 오언주의 일반노동조합 결성 운동). 그러나 직업별 노동조합은 19세기 후반 들어서서야 반숙련-미숙련 노동자까지 조직하는 산업별 노동조합(‘industrial’ union)이 등장하며 극복되기 시작한다. 이후 산업별 노동조합(자세히 살펴보면, 산업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업종별 노동조합부터 산업 구획을 넘어서는 일반노동조합까지 다양하지만)이 서구 노동조합운동의 표준형이 됐다.

2.1.2 위와 같은 노동조합 발전 과정이 노동 대중의 의식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곱씹어봐야 한다. 직업별 노동조합을 지배하는 의식은 동일한 기술을 바탕으로 노동력을 판매하는 이들의 정체성-연대감이다. 현재 어떤 고용주와 상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특정 기술-노동력을 구매하는 자본 전반과 대립-협상하는 동일한 기술-노동력 판매자라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해당 기술-노동력 습득 여부에 따라 연대의 경계가 정해지기 때문에 여전히 단결의 폭은 협소했다. 그러나 일단 기계화에 따라 특정 기술-노동력이 더 이상 노동 보호의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하면 기술-노동력 습득 여부에 따른 경계는 결국 허물어진다. 그러고 나면 노동력 판매자라는 정체성-연대감만이 실체로서 남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마다 반숙련-미숙련 노동자를 대규모로 조직하며 성장한 것이 바로 산업별 노동조합이다. 역사적으로 직업별 노동조합이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엄청난 노력과 투쟁이 필요했지만, 둘 사이에는 일정한 연속성도 있다. 직업별 노동조합 경험을 통해 처음부터 특정 기업 소속과 상관없는 노동력 판매자라는 정체성-연대감이 형성됐고 이게 기계화의 진전과 맞물리며 보다 확장된 노동력 판매자 의식-조직으로 진화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우리가 노동운동의 고전이라 여기는 서구 이론들이 ‘노동계급’이라 이름 붙인 집단의 실체는 이러한 (역사적으로 경계를 넓혀온) 노동력 판매자 의식-조직이다.

2.1.3 생산 현장만 바라보면 간과하기 쉬운 것은 서구 노동운동 역사에서 지역 생활 공간이 차지하는 중요성이다. 자본주의 등장과 함께 동업조합이 파괴된 것처럼 농촌 공동체도 파괴됐다. 그러나 농촌 공동체의 기억을 지닌 이들이 노동자 1세대로서 도시에 그들만의 생활 질서를 구축했다. 이 질서에서는 자본주의와 쉽게 화합될 수 없는 자질과 기풍, 윤리가 미덕이 됐다. 이 질서를 지탱할 다양한 자주적 결사들도 조직됐다. 소비 생활을 도울 협동조합이 결성됐고, 노동조합은 (실은 파업보다는) 공제기금 조성-관리 같은 자조 활동에 주력했다. 노동자 교육과 문화, 여가 활동을 책임지는 조직들도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독일에서는 사회주의탄압법을 피하려는 사회민주당의 위장-외곽 조직 형태로, 스웨덴이나 이탈리아에서는 민중의 집 형태로 이런 조직들이 발전했다. 이런 질서는 대도시 안의 노동계급 거주구역(게토)이나 지방 공업도시에서 몇 세대 동안 이어졌다. 대체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서구 노동자들은 이런 생활세계 안에서 삶을 영위했다. 서구 이론들이 ‘노동계급’이라 부른 실체는 또한 이런 생활세계들이기도 했다.

2.1.4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 이념을 자처한 사상-운동들이 대중들 사이에 깊이 뿌리 내렸다. 19세기 말에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되기 훨씬 전부터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그보다 앞선 세대의 사회주의들(오언주의나 프루동주의, 블랑키주의 등)이 널리 퍼져 있었다. 19세기-20세기 전환기에는 마르크스주의, 다양한 국민적 전통의 개혁적 사회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슴, 길드 사회주의 등이 노동자 생활세계에서 번창했다. 이들 이념은 단순히 지식인이나 노동조합 간부 수준을 넘어 노동 대중에게 깊이 스며들어서 노동자 생활세계의 접착제 역할을 했다. 가령 독일이나 스웨덴에서는 평범한 노동자가 중간계급 정도의 사회적 인정을 받는 가장 확실한 길은 사회민주주의 교양을 학습해 그 기능적 대표자(A. 그람시의 표현에 따른다면, ‘유기적 지식인’)가 되는 것이었다.

2.1.5 위와 같은 역사적 특성이 축적됐기에 진보정당의 역사적 형태였던 노동계급정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노동계급정당은 노동자 생활세계의 정치적 표현이기만 하면 됐다. 이에 더해 서구 대의민주주의 발전 과정이 노동계급정당의 성장 과정과 맞물렸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대다수 국가에서 여성이 참정권에서 배제됐을 뿐만 아니라 남성 참정권도 재산세 납부 여부에 따라 제한됐다. 즉, 상당수 남성 노동자와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다. 때문에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모든 진보정당의 당면 과제는 보통-평등선거제도 쟁취였다. 이탈리아, 벨기에, 스웨덴 등에서는 이를 위해 정치 총파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런 역사적 상황이 한국의 진보정당에 비해 거의 자동적이기까지 했던 19세기-20세기 전환기 서유럽 진보정당의 성장 과정을 많은 부분 설명해준다. 진보정당의 분투로 참정권 범위가 넓어질수록 새롭게 유권자에 유입된 인구는 자연스럽게 진보정당에 표를 던졌고 이들이 이후 진보정당 투표층으로 굳어졌다. 이들은 자유주의 정당이나 보수주의 정당, 가톨릭 정당에는 한 번도 투표해본 적 없이 대를 이어 진보정당을 지지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진보정당 득표율이 대략 35%선에 이르기까지 지속 상승했다. (진보정당이 성장하기 전에 남성 보통선거제도가 도입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예외였다. 프랑스가 독일에 비해, 영국이 대륙 국가들에 비해 진보정당의 성장이 더뎠던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 요인 탓이었다.)

2.2 한국의 노동운동-진보정치에는 이러한 성숙의 세월이 부재하다. 실은 고도성장 이전에도 자본주의 질서가 존재했고 따라서 이에 맞서는 노동운동도 존재했다. 그러나 분단-반공 체제를 거치면서 이 경험이 단절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에 존재한 직업별 노동조합이나 지하 운동가들이 만들려 한 산업별 노동조합의 기억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념의 경우는 개혁 노선(조봉암의 진보당 등)마저 발붙이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부터 압축성장이 본격 시작됐고, 1987년에 노동자 대투쟁이 폭발했다.

2.2.1 노동자 대투쟁으로 등장한 민주노동조합 세대는 전투적 기업별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이는 물론 노동법 탓이었지만, 순전히 노동법 탓만은 아니었다. 군부 정권이 노동자 단결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남성 노동자의 전투적 파업만큼 효과적인 저항 수단이 없었고 여기에 최적화된 조직 형태가 기업별 노동조합이었다(서구였다면, 산업별 노동조합의 사업장별 평의회가 이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후 기업별 노동조합의 이점보다는 한계가 부각되면서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 체제다. 선진자본주의 국가 중에는 오직 일본과 한국만이 이런 노동조합 체제를 보인다.

2.2.2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 체제의 한계는 이제까지 여러 측면에서 지적됐지만,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에 바탕을 둔 노동 대중의 자기 인식이 보이는 특성이다.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 체제라고 자본 대 노동이 주된 대립선이 아닌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에 전투적 전통이 남아 있는 한, 현재의 일본과는 좀 다른 노사관계가 지속될 수는 있다. 문제는 아무리 전투적이어도 이는 서구와 같은 노동력 판매자의 정체성-연대감에 바탕을 둔 전투성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보다는 기업이라는 작은 사회 안의 기층적-주변적-저항적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연대감이 지배한다. 기업 경계를 넘어선, 즉 고용주를 달리 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같은 노동력 판매자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아니, 같은 노동력 판매자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래 전부터 특정 조직 소속 여부가 중산층 진입의 기준 역할을 해온 역사적 전통이 있다. 가령 재벌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것, 시험을 통해 교사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그런 기준 노릇을 한다. 따라서 이런 문지방을 넘은 이들의 노동조합 활동은 중산층 내 상대적 하층의 계층 상승이나 지위 유지 노력, 조직 내 민주화 투쟁 등의 의미를 강하게 띤다. 문지방을 넘지 못한 이들과 함께 광범한 노동력 판매자의 일원으로서 벌이는 활동이라 보기는 힘들다. 만약 서구 이론들의 맥락에 따른다면, 한국 사회에 과연 노동‘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논란거리다. 자본주의 구조에 따른 계급 위치는 존재하지만, 서구에서 노동계급 형성과 동일시되는 노동력 판매자 정체성-연대감의 확산을 관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2.2.3 서구와의 또 다른 결정적 차이는 1987년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노동 대중의 독자적 생활세계가 구축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는 자본주의가 너무 앞서간 상태였다. 노동자 집단만 보면, 농촌 공동체의 기억을 지닌 노동자 1세대가 많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한국 사회는 이미 대량소비, 대중문화의 지배 아래 있었다. 대형 마트가 포위한데다 노동자 가계까지 은행과 보험회사의 고객인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자조 활동이나 협동조합은 끼어들 틈이 별로 없었다. 또한 영화관조차 드물었던 100년 전 서구와 달리 이제는 집안에서 TV만 켜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시대이기에 노동자 문화-여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물론 오래 전에 전 국민 보통교육이 자리 잡았기에 노동자 교육의 수요도 협소했다(허술한 보통교육의 틈을 파고들었던 노동자 야학은 역설적으로 민주화-노동자 대투쟁 이후 시효를 상실했다). 노동운동-진보정당은 뒤늦게 지역 생활 공간이 노동계급 형성의 또 다른 중요한 기반임을 깨닫고 서구 노동운동이 초기에 했던 시도들을 반복하려 했다(가령 민중의 집 모델의 적용). 이런 노력은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대량소비-대중문화 사회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모델이 뒤늦게 뿌리를 내리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 역시 분명히 확인됐다. 변혁 주체가 성숙하는(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의 유명한 표현에 따른다면, “사람들이 자라날”) 시간은 ‘압축’될 수도 없지만 단순히 ‘만회’될 수도 없는 것이다.

2.2.4 분단-반공 체제에 군부독재까지 겪으면서 좌파 이념이 토착화될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980년 광주 항쟁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거의 기적적으로 좌파 이념이 부활했지만 이는 노동자 대투쟁 폭발 시점까지도 소수 청년 지식인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 동유럽 현실사회주의권이 무너져 혁명적 사회주의의 권위가 붕괴했다. 게다가 이 경우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사회민주주의조차 신자유주의 지구화 공세 속에 사회자유주의(‘제3의 길’ 혹은 극단적 중도파extreme center)로 후퇴하는 바람에 전범典範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의 노동운동-진보정치는 서구에서 진보정당이 처음 등장해 활동을 펼쳤던 시기에 비하면 자본주의에 맞설 독자 이념을 대중적 수준에서 적극 확산시키지 못했다(활동가 수준에서는 좀 다르겠지만). 어쩌면 정돈된 이념 자체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2.2.5 한국에서 진보정치의 어려움은 위의 요인들만으로 많은 부분 설명된다. 1987년 이후 등장한 진보정당들 중 넓은 의미의 노동계급정당을 거부한 사례는 없다. ‘노동계급정당’이라는 도식이나 표현을 멀리 했을지라도 어느 정당이든 1차적 지지 기반을 조직 노동에서 찾은 점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이제껏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표준형이었던 노동계급정당을 의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생활세계라 할 만한 게 없고 노동‘계급’의 실체마저 모호하기에 노동계급정당이 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제도 정치 내에서 진보정당의 지분도 작고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서구와는 다른 대의민주주의 정착 과정도 한몫했다. 서구에서는 노동운동-진보정치가 주도해서 보통선거제도를 도입한 반면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진보정치가 발전하기 훨씬 전에 아예 첫 총선에서부터 보통선거가 실시됐다(배제된 것은 유권자가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이었다). 노동자들조차 수십 년 동안 리버럴정당이나 보수정당에게 표를 던져온 상황에서 뒤늦게 진보정당이 노동자의 정치적 충성 대상 및 투표 패턴 변화를 설득해야 했다. 더구나 대통령중심제-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맞물려 설득의 어려움은 배가됐다. 극히 제한적으로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도입된 뒤에야 정당투표에 한해 진보정당 투표층을 늘릴 수 있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대회의 모습

2.2.6 정치세력화 측면에서 한국은 역사적 경로가 비교적 비슷한 브라질과도 달랐다. 브라질에서는 군부독재를 압박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바로 그 시점에 새 세대 민주노동조합에 바탕을 둔 진보정당, 즉 노동자당PT이 등장했다. 그래서 수십 년만의 첫 대통령 직선을 포함한 일련의 정초 선거에서 노동자당이 곧바로 상당한 제도 정치 지분을 확보했다. 노동자 대투쟁과 대통령 직선 재개 이후 13년 만에 민주노동당이 등장한 한국과는 크게 달랐다. 한데 냉정히 돌아보면 이는 단순히 1980년대 말의 한 시점에 노동운동 주체들이 적절한 선택을 하지 못한 탓만은 아니다. 실은 이런 선택을 하려면 노동운동 주체들에게 상당한 이념 토대가 축적돼 있어야 했다. 군부독재 아래서도 어떻게든 좌파 이념 전통이 살아 있던 브라질과 분단-반공 체제인 남한은 이 점이 달랐던 것이다. 성숙의 시간의 부재는 이렇게 이후 역사 전개에 끊임없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2.2.7 민주노동당은 이런 역사적 조건 속에서도 진보정당을 초기에 효과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모델을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조합원 대중과는 달리 노동자 대투쟁 이후 좌파 이념을 상당히 수용한 활동가 수준에서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긴밀한 연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활동가층이 큰 영향을 끼치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정파연합(현장파 내 다수만 빠진 자주파, 국민파, 중앙파의 연합)이 구축돼 민주노동당 지지(이른바 ‘배타적 지지’)가 결정됐다. 이후 주로 민주노총 소속 기업별 노동조합의 활동가층이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조합원 다수가 입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적을 지닌 활동가층을 통해 각 기업별 노동조합이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토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런 모델은 사실 역사적 전례가 있다. 바로 일본 사회당-총평 관계다. 일본 사회당도 총평 조합원 다수를 당원으로 조직하지는 못했지만 총평 활동가층을 통해 소속 노동조합들을 당의 토대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당과 노동조합의 상층에만 연결고리가 집중된 상당히 취약한 연계 모델임이 총평 해산에 따른 일본 사회당의 와해에서 드러났다. 한국에서도 민주노동당이 외형적으로 성장할수록 이 점이 부각됐다. 더구나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늘고 있었고 민주노총이 이들을 포괄하지 못해 정규직만의 성채로 인식되면서 이 모델이 더욱더 한계를 노정했다. 민주노동당은 정작 민주노총의 정규직 노동자 다수를 촘촘히 조직하고 있지 못하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정규직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이러한 민주노동당-민주노총 연계 모델은 와해됐다. 와해되고 나자 오히려 이 모델이 다시 향수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정을 통한 통합진보정당 건설 시도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한계와 문제점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2.3 한국 노동운동-진보정치는 성숙의 시간을 빼앗겼기에 그 시간 동안 축적했어야 할 많은 과제가 미래의 숙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과제들은 서구 노동운동-진보정치가 한 세기도 더 전에 펼친 노력을 뒤늦게 반복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 단순한 만회는 통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독일이나 스웨덴식 산업별 노동조합을 이 땅에 실현하겠다는 것은 자칫 시지포스의 노동이 될지 모른다. 고전적인 노동계급정당을 교과서 삼아 그에 근접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기에는 한국 자본주의가 계속 간격을 벌리며 노동운동-진보정치를 추월하고 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볼셰비키는 물론이고 독일 사회민주당도,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도, 영국 노동당도, 이탈리아 공산당도, 심지어는 브라질 노동자당도 이 땅에 비슷한 형태로 다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는 있고 또 그래야 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서구 노동운동-진보정치의 경로로부터 너무 멀어져 버렸다.

… 사회국가로 나아가는 길에서 헤매는

3.1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세기 말까지를 서구 노동운동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서구 노동운동-진보정치는 드디어 사회국가(복지국가)를 건설했다. 사회국가는 자본주의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사회권을 일정하게 보장하는(일부 비자본주의적 방식을 통해) 복지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와 사회권 확대-보장의 호응 관계가 일단 정치의 주축으로 자리 잡게 되면 이 호응 관계를 통해 불평등한 권력 관계의 돌이킬 수 없는 역전을 꾀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정치가 작동할 수도 있다(참고: 졸저, 신자유주의의 탄생: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책세상, 2011). 1970년대 이후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지구화 공세가 이런 역사적 성취를 해체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2008년 경제 대폭락 이후 유럽 정치의 격동이 보여주듯이 사회국가 경험을 지닌 나라에서 이를 완전히 해체하기란 쉽지 않으며 그 부활을 추구하는 대중적 정치 흐름이 끊임없이 대두한다. 이 점에서 대의민주주의가 정착된 뒤에는 사회국가 건설이 진보 세력의 필수 과제라 정리할 수 있다. 서구 노동운동-진보정치는 전후 사회국가 건설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였다.

3.1.1 하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본주의 중심부에 사회국가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전 세계적인 사회 세력 관계의 일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멀게는 러시아 10월 혁명부터 대공황, 미국의 뉴딜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소련의 승리 및 파시즘의 패배에 이르는 역사 전개 때문에 서유럽, 일본의 자본은 노동 세력에게 상당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파시즘 전쟁/투쟁을 거치며 더욱 강력해진 진보정당-산업별 노동조합이 이 정세를 전례 없는 개혁의 기회로 삼았다. 북유럽에서는 말 그대로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주도로 복지국가가 건설됐고, 영국이 그 뒤를 따랐으며, 서독과 프랑스에서는 각각 기독교민주주의와 드골주의를 표방하는 우파가 좌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전후 체제를 구축했다. 즉, 서구에서는 역사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노동운동-진보정치가 사회국가 건설의 주축이 됐다.

20세기 초반 스웨덴 노동자 집회의 모습

3.1.2 사회국가 건설은 곧 이를 지지하는 사회 세력들의 연합을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느 나라든 노동계급의 범위를 넘어서는 민중 집단이 일부라도 사회국가 건설에 동조했기에 사회 개혁이 단행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는 노동계급과 비노동계급 민중의 연대 구축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노동계급 내부의 연대 구축 과정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등장 이후 노동계급 안에는 언제나 상대적 고소득, 고숙련의 상층 집단과 상대적 저소득, 저숙련의 하층 집단이 존재했다. 사실 이들 상이한 계층 사이의 연대는 노동계급과 비노동계급 민중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였다. 그럼에도 이 어려움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노동운동-진보정치조차 노동계급 상층에 주로, 먼저 뿌리를 내리면서(역으로 노동운동-진보정치가 일찍 뿌리 내린 집단이 노동계급 내 상층으로 상향 이동하기도 했다) 하층 집단은 비가시적 영역이 되곤 했다는 점이다. 중부와 북부의 잘 조직되고 비교적 안정된 공업 노동자들이 사회당과 노동조합의 주된 기반이 되고 남부 출신의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나 빈농은 운동에서 소외됐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이탈리아(A. 그람시의 사상을 낳은 기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19세기 말부터 이런 노동계급 내 분단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신노동조합주의=산업별 노동조합의 등장으로 이 분단은 많이 완화됐고,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의 경쟁도 노동계급 하층의 가시화에 기여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대공황의 실업대란과 반파시즘 총력전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전개된 전후 사회 개혁이 노동계급 내 연대를 유례없이 강화했다. 가장 앞선 사례는 인플레이션 억제, 생산성 상승 등의 거시 경제 운영 목표와 노동계급 내 연대 강화를 결합한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도였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추진된 해법은 근로소득세 등의 증세(자연히 노동계급 상층과 중산층의 부담 증가)를 바탕으로 사회서비스 영역(교육, 보육, 의료 등)에서 공공부문을 확대해 기존 민간부문 바깥(주로 여성, 청년 등)에 끊임없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북유럽에서는 공공부문이 전체 일자리의 30% 안팎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아래 표1 참고). 이런 공공부문이 존재하기에 지금까지도 이들 나라에서 민간 제조업의 고용 변동이 곧바로 민간 서비스업 불안정고용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2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도 사회국가 건설이다. 그러나 전후 서구와 달리 현재 한국 사회에는 사회국가 건설의 주역이 될 만한 의지와 능력, 전략을 지닌 사회 세력이 없다. 한 마디로 노동운동-진보정치가 저발전돼 있다. 단순히 저발전돼 있는 것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노동계급 내 분단이 유례없이 심화돼 지금까지도 균열과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전후 서구와 달리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국가 건설을 결코 낙관할 수 없다.

3.2.1 사회국가 지향을 둘러싼 세계 정세는 호전되는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신자유주의 전성기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자본주의 중심부(미국, 일본 등)에서 임금-소득 주도 성장론이라는 이름으로 케인스주의적 처방이 부활했고, 반동적 긴축 기조가 지배하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에서는 이에 맞서는 반란이 거듭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 정세를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앞장서야 할 노동운동-진보정치가 지적, 도덕적 권위와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2.2 그나마 2016년-2017년 촛불 항쟁 덕분에 세계 정세와 반대 방향으로 치닫던 한국 정치를 보수반동화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있었다. 아니, 단지 10여 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은 아니다. 조기 대선으로 등장한 리버럴 정권은 10년 전과는 달리 사회운동의 요구들을 상당히 받아들여 개혁에 나서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지속된 투쟁과 촛불 항쟁이 만들어놓은 사회 세력 관계가 정권을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성과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만들어놓은 형세임에도 사회운동이 주도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제 같은 일부 쟁점에서만 그런 주도성이 나타나고 탈핵, 반전평화, 교육 및 주거 개혁 등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의 정규화라는 노동운동의 오랜 숙원을 둘러싸고 노동운동(더 정확히는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들)이 지적, 도덕적 권위를 보여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대중적 차원에서는 촛불혁명 이후 사회국가 건설의 주역이 (사회운동이나 진보 진영이 아니라) 리버럴 정권이라고 인식된다.

3.2.3 노동운동이 사회 개혁에서 지적, 도덕적 권위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개혁 추진의 핵심 요소인 연대 구축에 무능하기 때문이다. 비노동계급 민중(가령 영세 자영업자)과의 연대는 고사하고 노동계급 내부의 연대도 막혀 있다. 노동운동-진보정치가 노동계급 내 연대를 강화하는 실력을 보여줘야 사회국가 건설을 주도할 수 있을 텐데,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정반대로 노동계급 내 분단이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화돼왔다. 이제는 더 이상 활동가층에게 훈계를 늘어놓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노동운동의 역사적 선택들이 누적돼서 이제는 한국형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리는 단단한 구조가 돼버렸다. 가령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 체제에서 노동력 판매자의 정체성-연대감보다는 기업사회 구성원 의식이 발전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리버럴 정권이 추진하겠다고 나선(그 방안이 얼마나 진지하고 실효성 있는 것인지는 일단 논외로 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노동조합 수준에서 막히곤 하는 상황을 보자.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같은 노동력 판매자 중에서 부당한 처우(고용, 임금 등에서)를 받는 이들로 인식한다면, 정규직화가 어려울 리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안정된 기업사회(특정 직종일 수도 있다)에 어렵사리 진입한 한국의 정규직은 정규직화를 원하는 비정규직을 비정상적 방식으로 계층 사다리를 오르려는 (나쁜) 경쟁자로 바라본다. 세계 노동운동의 보편적 이상인 ‘평등’보다는 ‘공정’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교 사회 특유의 능력주의적(아니 차라리 고시주의적) 계층 상승 전통에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노동 유연화 공세가 더해지고 한국 노동운동의 특성들이 접착제 구실을 해서 단단히 굳어버린 거대한 장애물과 마주한다.

3.2.4 한국 노동운동-진보정치가 처한 궁지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로는 공공부문 확대를 둘러싼 시선을 들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사회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확대는 20세기 사회민주주의의 표준적 해법 중 하나다. 문재인-민주당 정부도 이 점을 참고해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공약을 내세웠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공약을 실행하겠다고 하자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물론 공공부문 확대가 민간 자본 투자를 구축驅逐한다는 오래된 반대 논리를 선전하는 보수 언론 탓도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더 익숙한 또 다른 반대 논리도 있다. 그것은 민간부분 노동자에 비해 고용, 연금 등에서 ‘특권’을 누리는 공공부문 노동자를 과도하게 늘리는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이른바 이 ‘특권’은 군부독재 이후의 오랜 유산이다. 정권도, 사회운동도 이 유산을 어떻게 하지 못한 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노동 유연화로 노동계급 내 양극화가 심해지자 공공부문 노동자의 ‘특권’이 여론의 공격 대상이 됐다. 이것이 과연 ‘특권’인지, ‘특권’이라면 어떻게 해체해야 할지는 지금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이런 현실 때문에 20세기 서구 사회국가의 중요한 정책 수단이었던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실현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노동운동 역시 이런 구조 안에 끼어 있기 때문에 이 궁지에 대해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리버럴 정권 이상의 지적, 도덕적 권위를 구축하기 힘들다.

3.3 성숙의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한국 노동운동-진보정치는 그 득실을 채 따져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서구 노동 세력이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 실현한 사회국가 건설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이 전투는 현재 진행형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비관적일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가 사회국가 단계로 성공적으로 진입한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이는 앞선 나라들이 밟은 경로와는 무척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도 산업별 노동조합이 성장하고 그 힘에 바탕을 둔 진보정당이 집권해서 사회국가를 건설하거나 완성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국가 건설의 한국적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의 방향은 ‘과거’와 ‘현재’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채 당혹스럽게 맞이하고 있는 ‘미래’ 속에서 찾아야만 할 것 같다.

<계속>

필자소개
미래정치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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