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유별나지 않다”
유엔 공식자료 통해 본, 몰랐던 북한
[책소개] 『장마당과 선군정치』(헤이즐 스미스/ 창비)
    2017년 09월 23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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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발표한 데 대한 반발의 표시로 분석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세계식량계획 등 유엔 산하기구를 통해 북한에 8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지금 한국·미국·중국·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안보문제에 집중하며 대북 무역제재 조치를 가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왜 끊임없이 핵·미사일에 열을 올리며 고립을 자초하는가? 북한의 핵무장에 깔린 심리는 무엇이며, 그런 정권의 움직임을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북한이라는 ‘미지의 나라’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 북한을 둘러싼 판에 박힌 인식을 걷어내고 사실에 기초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장마당과 선군정치: ‘미지의 나라 북한’이라는 신화에 도전한다』의 저자 헤이즐 스미스(Hazel Smith)는 온갖 신화와 오해로 덧씌워진 북한 사회를 25년간 철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 현지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복원하려 했다. ‘북한 정권은 주민을 샅샅이 통제한다’ ‘북한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사고한다’ ‘북한 사회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 등 북한 사회에 대한 외부의 선입견에 맞서, 북한 역시 여느 나라처럼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방식으로 분석 가능한 나라임을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1990년대 100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대기근(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에서 중요한 정치·경제·사회적 발전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으며, 이런 변화는 정권에서 행하는 ‘위로부터의 군사통치’와 대비되는 민간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시장화’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2000년대 이후 현재 북한 사회를 이끄는 실질적인 동력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다는 분석이다. 2015년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North Korea: Markets and Military Rule을 김재오 영남대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가십에 매료된 사이, 북한은 핵을 키웠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구체화된 핵개발의 역사는 햇수로 20년이 넘는다. 극도의 식량난과 경제난, 국제적 고립과 경제 제재를 겪으면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계속됐다. 과연 그동안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미국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라크전쟁·아프가니스탄전쟁·세계금융위기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대북 협상은 전략적 ‘마비’ 상태가 됐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이 책 14장 참조). 여기에는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조차 북한을 너무 모른다는 속사정 ―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균형을 이룬 상원과 연방의회에서 다수가 북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혹은 아예 없는 상황”(353면) ― 이 깔려 있었다.

오랫동안 ‘북한 체제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 사태로 북한 주민 1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황에서 부모가 자녀를 인신매매하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인육을 먹는다는 등의 괴담이 힘을 얻었다. 최고지도부의 도덕적 일탈,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하는 부도덕한 정책, 수용자를 대상으로 생화학 실험을 하는 정치범 수용소 같은 소문이 북한이탈주민의 입으로부터 나왔다. 세계 언론매체에서도 선정적인 가십을 보도하며 북한의 기괴한 이미지를 고착해갔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보기관에서는 북한 정권이 주도해 미국 달러를 위조하고 마약 거래에 참여하는 등 국제 범죄에 참여한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을 ‘범죄국가’라고 주장하는 이런 가십들은 불확실한 기록과 추정에서 나왔고,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할 근거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북한에서는 식량 원조를 받아 빈곤층으로부터 이를 빼돌려 엘리트층에게 흘려보낸다는 일설이 있다. 그러나 국제기구의 조사와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북한은 최악의 기근 동안에도 전체 식량 수요량의 80퍼센트를 계속 생산했으며, 군대는 1990년 2300만 인구 중 100만을 차지했는데 국내에서 생산된 식량으로 군에 음식을 공급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으로 공표되었기 때문에 ‘빼돌린’ 국제 원조 물품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된다(이 책의 1장 참조).

“북한은 유별나지 않다”
유엔 공식자료를 통해 본, 몰랐던 북한

“북한은 결코 유별나지 않다.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도 아니다.”(21~22면)

헤이즐 스미스의 『장마당과 선군정치』는 북한에 대한 ‘비상식적 상식’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저자는 현 상황을 “전세계는 이른바 북한의 괴상함이라는 것에 여전히 매료되어 있다”라는 말로 일축한다(39면).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한의 기이함이라는 신화를 영속화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곳은 다름 아닌 북한 정권”이다(40면). 붕괴할 것으로 예측됐던 북한 정권은 대기근 속에서도 체제 유지를 위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며 탈냉전 이후 동북아 역내 안보를 위협했다. 주변국이 가십에 매료되어 있는 사이, 안보 위협은 높아졌고 북한 주민은 기근을 반복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헤이즐 스미스는 북한의 특수성이나 보편성 어느 한쪽을 강조하며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대신, 여느 나라를 분석하는 방식과 똑같이 북한을 사회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고 본다. 현대 북한에 관한, 아직 연구자들이 잘 활용하지 않은 ‘자료’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헤이즐 스미스는 북한이탈주민을 출처로 하는 파편화된 정보나 각국 정보기관에서 발표한 추측성 정보를 최대한 배제하고, 북한에서 실제 활동한 국제기구들이 생산한 자료에 집중했다.

여기에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유엔아동기금(UNICEF),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연합(EU),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스위스개발협력청(SDC), 국제 까리따스(Caritas Internationalis)에서 제공한 통계자료를 비롯해, 헤이즐 스미스 자신이 1998년에서 2001년 사이 세계식량계획과 유엔아동기금 업무를 맡아 2년간 북한에 체류하며 얻은 현장자료가 포함된다. 1200여개의 주석과 580여건의 참고문헌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런던 SOAS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헤이즐 스미스는 북한과 동아시아 안보 및 식량원조를 비롯해 국제 인도주의에 관해 폭넓게 연구해왔으며, 북한에서 세계 식량계획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식량 원조 사업을 감독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북한 연구에서 중요하게 여겨진 자료는 <로동신문> <근로자> 같은 정기간행물, <김일성 전집> <김정일 전집> 같은 북한이 공식적으로 발간한 문헌이었다. 사회주의적 수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북한 문헌에서 직접 행간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헤이즐 스미스가 취합하고 엄선해 제공하는 실증 자료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한층 더 밝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제재 조치가 북핵 문제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데 반해, 유엔의 인도적 지원 업무 경험이 있는 외교부장관을 등용한 새 정부에서 어떤 외교 정책을 펼칠지 관심이 높다.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공식·비공식 자료를 낱낱이 조사·연구해온 헤이즐 스미스의 이 책이 오늘날 남북 외교와 정책에 큰 빛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 사회에 깊게 침투한 자본주의, 장마당과 핵무장

이 책은 ‘시장화’라는 개념으로 북한의 변화를 해석한다. 옛 소련을 비롯해 사회주의권을 이루던 국가 대부분에는, 자원을 배분하는 정부의 공식 경로 이외에 자생적으로 암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분을 이런 암시장이 보완했기에 정권은 암시장을 묵인하곤 했다. 북한에도 비공식 시장이 존재해왔지만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시장은 단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공간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 공간이 되었다. 헤이즐 스미스의 분석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북한의 시장화는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군사와 복지, 심지어 북한의 핵무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북한은 옛 소련의 핵우산으로부터 더이상 보호받을 수 없었고, 경제적 지원도 끊겼다. 북한은 식량난의 단계로 넘어갔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자생적 시장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시장화는 정권안보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북한 정권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핵무장이었다. 핵무장 카드를 들고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 외부 위협을 완화하는 한편, 핵무장 포기 카드를 들고 주변국으로부터 정권 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획득해 북한 사회가 시장화되는 데 제동을 걸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국내정치 및 이해관계의 충돌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외부로부터의 안전 보장은 물론 내부의 시장화를 막을 자원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핵무장 정책은 여전히 중요한 카드다. 결국 핵무장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북한 사회의 시장화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끄는 주역, 북한 주민들

오늘날 북한 사회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시장화’로 읽어낼 때, 시장화는 경제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북한 사회 전체의 변화로 확장된다. 헤이즐 스미스는 북한의 시장화를 이끄는 주역을 권력 엘리트가 아닌 북한 주민들로 보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출범 이래 사회주의적 집단주의를 강조하고 광범위한 대중동원 정책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북한 사회를 ‘단일한 통합’의 이미지로 포장했다. 김일성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카드섹션이라든지, 김일성과 김정일의 장례 기간 중 절규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헤이즐 스미스는 이런 이미지 선전이 북한 정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님을 지적한다. 국가 지도자의 죽음 앞에서 대중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유사하며, 이런 이미지만으로 그 사회의 균질함을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 사회가 남한을 비롯한 다른 사회보다 상대적으로 더 경직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겠으나, 2500만명의 주민이 모두 똑같은 사고를 하고 체제의 움직임에 모두 동의하기란 불가능하다. 만약 그랬다면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려는 자생적 시장화는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며, 북한은 지금 이 순간도 ‘아래로부터’ 움직이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가로지르는 한권의 바이블

핵과 미사일, 한반도의 전쟁 위협과 동북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 전체의 안보 불안, 이로써 벌어지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갈등은 모두 북한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갈등 상황 한가운데 있으며 갈등에 따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을 수 있는 한국은,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어느 나라보다 북한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헤이즐 스미스가 북한 연구의 기본으로 삼은 접근방식, 즉 이미 축적된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고, 선입견 없이 사실에 입각해 분석하고, 주장에는 항상 근거를 붙인다는 기본 원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연구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가 그룹에게 헤이즐 스미스의 작업이 전하는 무게는 묵직하다.

더불어 이 책은 비전문가 독자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김일성의 만주 항일무장투쟁에서 시작되는 북한의 체제 성립 과정에 대한 서술은, 한숨에 읽는 북한 현대사 텍스트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은 어떤 나라인가’를 알고자 하는 초심자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북한의 과거와 현재, 북한 문제의 원인과 현황을 한권의 책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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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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