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이모님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셨을까
[밥하는 노동의 기록]뚝배기 불고기
    2017년 09월 22일 01: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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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식당이 있었는데 음식은 사흘 도리로 그것이 그것인데다 맛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어서 그 밥을 계속 먹다가는 자존감이 무너지겠다는 우려까지 들었다.

그래서 선배들을 따라 학교 근처의 식당들을 하나씩 섭렵해나가기 시작했다. 학교 밖이라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이런 찌개, 내일은 저런 덮밥, 모레는 그런 볶음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던 중, 후문 바로 앞에 새로운 식당이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지나갈만한 너비에 고만고만한 작은 식당이 여섯 개 마주보고 있는 스무 걸음 남짓의 짧은 골목에서 그 식당은 ‘소풍 가는 날’이라는 이름부터가 남달랐다. 해가 들어도 어둑한 골목에 흰 광목 포렴을 쳤으니 생김새도 눈에 띄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하얀 벽에 손으로 쓴 메뉴가 띄엄띄엄 붙어 있었다. 할머니가 주인이셨으니 솜씨 좋은 손주가 있나 짐작했다. 가짓수가 많지 않은 것부터가 마음에 들어 찬찬히 보다 그 중 처음 보는 음식인 뚝배기 불고기를 주문했다.

사장님은 씩 웃으며 가스 불을 켜셨고 나는 수저를 꺼냈다. 무릇 식당의 숫가락이란 천만 번 넘게 치아와 마찰하며 테두리가 이지러진 타원과 수 혹은 복이 새겨진 직선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모양새인데 이 집의 숫가락은 입에 들어가는 곳이 충분히 깊고, 부드럽게 이어진 손에 잡히는 부분은 적당히 두꺼워 그것마저 기분이 좋았다.

잠시 후 불에서 방금 내린 뚝배기에 자작한 국물이 보글거리고 당면과 고기가 그 바람에 움찔거리는 음식이 나왔다. 고명으로 당근과 파가 올랐는데 특히 당근이 예뻤다. 생 당근과 별다르지 않은 색깔인데도 달고 짭짤한 양념이 잘 배서 도대체 이것은 무슨 조화일까 싶었다.

‘소풍 가는 날’의 뚝배기 불고기를 이백 번쯤 먹었을 것이다. 간간히 닭죽이나 라면, 볶음밥을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뚝불’을 먹었다. 질리지도 않고 먹었다. 차분한 인상의 할머니 사장님은 말수가 많은 분이 아니어서 그 분과의 대화는 인사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 세 마디는 충분히 정중하고 따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은 저녁이 되도록 문을 안 여셨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식당은 닫혀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어디가 편찮으신가 했으나 어디 딱히 물어볼 곳도 없었고 그렇게 보름쯤 지나자 가게의 외양은 급격히 쇠락해졌다. 나는 단골 식당의 폐업을 받아들이고 다시 이런 찌개 저런 덮밥 그런 볶음이 반복되는 삶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도 폐업의 이유를 모른다. 다만 간판도 떼지 않은 채 문을 닫으신 것으로 보아 급한 사정이 있었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무엇이든 좋으니 쫓겨난 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안면을 튼 가게 중에 장사가 한참 잘 될 때쯤 권리금도 못 챙긴 채 뒷골목으로 쫓겨나 새로 시작하느라 고생하는 곳을 몇 알고 있었다. 그 과정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험해서 그 분은 그런 일을 겪지 않으셨으면 했다.

내 살림을 살게 되면서 참 여러 번 뚝배기 불고기를 망쳐먹었다. 해도 해도 그 맛이 안 났는데, 특히 색깔이 선명하면서도 간이 잘 밴 당근은 매번 실패의 요소였다. 미리 졸여도 보고 불을 바짝 올려 짧은 시간 안에 볶아도 보고 하여튼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해봤지만, 그 맛도 그 색도 나지 않으니 내가 좀 더 살갑게 굴어서 이 비법을 알아올 걸 때늦은 후회를 했다.

비단 뚝배기 불고기만이겠는가. 이때까지 살며 나는 몇 분의 이모님들과 그 분들의 솜씨와 ‘이모, 이모’하며 가끔 어리광 떨던 날을 떠나보냈다. 단골 식당이 사라진다는 것은 서운함을 넘어서는 일이 될 때가 잦다. 돈을 주고 사먹었다지만, 한 끼 밥과 몇 잔의 술을 신세 졌던 분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지는 것, 닫힌 문 앞에 오래 서서 이별의 이유를 혼자 생각하는 일은 서글프다. 그것이 임대료 때문이라면 서글프기만 하고 말 일이 아니어서 많은 이들이 싸우고 스러지기를 반복했다.

아현포차의 이모님들께서 오랜 싸움에서 승리하셨다. 요리책도 내셨다. 그 책을 한 권 구해야겠다.

결국 오늘도 실패한 뚝배기 불고기, 콩나물, 미나리무침, 얼갈이배추무침, 현미를 섞은 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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