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식민 시기에
독립국이 있었다는데?
[인도 100문-16]독립 토후국의 존재
    2017년 09월 18일 04: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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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제 식민 지배만 배운 학생들은 서구 제국의 식민 지배와 아시아 각 나라 식민지 역사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한국과 가장 다른 예를 보여주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인도다.

한국은 1910년 강제로 국권을 빼앗기는 조약을 맺어 한 시점부터 한꺼번에 영토 전부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인도아대륙에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침략을 시작한 시점은 1757년 벵갈부터다. 벵갈과의 싸움에서 이긴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벵갈에서부터 남으로, 남으로 그리고 다시 인도의 서로, 북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약 100년 정도가 걸린 1856년에 당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명맥은 유지하고 있던 무갈제국의 수도 델리 인근 지역인 아와드Awadh 혹은 오우드Oudh를 무력으로 병합을 마친 동인도회사는 더 이상의 무력을 통한 영토 확장 정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 말은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무력 병합을 해야 할 땅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달리 말하면 그들에게 복속되지 않은 나라가 여전히 많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나라들을 영어로 princely state 즉 군주국 혹은 native state 즉 토착민 국가라고 부르는데 이 둘의 뜻을 같이 섞어 일반적으로 한국어로 토후국이라 부른다. 토후국은 영국이 식민 지배권을 포기하고 인도와 파키스탄에 독립 주권을 이양한 1947년 8월 15일 전체 562개가 있었다.

대부분이 영토 크기로 볼 때 그리 큰 지역이 아닌 작은 나라이면서 외교권은 영국에게 넘겨진 위성국 상태였다. 마이소르Mysore, 하이드라바드Hyderabad, 베나레스Benares, 카시미르Kashmir, 시킴Sikkim, 보빨Bhopal, 그왈리오르Gwalior, 꼬친Kochin, 뜨라방꼬르Travancore, 자이뿌르Jaipur, 조드뿌르Jodhpur, 메와르Mewar, 바로다Baroda, 주나가르Junagadh 등이 대표적인 토후국이다. 그리고 네팔, 부탄, 스리랑카 등은 독립 상태를 유지한 국가였다.

1947년 독립을 쟁취한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대부분의 인구와 영토는 토후국이 아닌 영국의 식민지에 살고 있다가 독립을 쟁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독립 과정을 이끌어 온 인도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의 지도자 네루를 위시로 한 정치 지도자들이 모든 토후국을 포함하여 인도를 하나의 연방 국가로 건설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토후국 군주와 국민들은 큰 이의 없이 인도 연방에 소속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몇몇 나라들은 인도 연방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는 영국이 식민 지배권을 포기하면서 식민지뿐만 아니라 토후국에게도 인도에 속할 것인지 파키스탄에 속할 것인지 아니면 독립국으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주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토후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큰 나라는 대부분이 인도 연방에 속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지금은 까르나따까 주와 뗄랑가나 주에 있었던 마이소르 왕국이다. 하지만 마이소르와 인접한 또 다른 주요 토후국인 하이드라바드는 인도 연방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였다. 하이드라바드 외에 인도 연방에 소속되는 것을 거부한 주요 나라로는 주나가르, 뜨라반꼬르, 카시미르, 시킴 등이 있다. 대부분의 이 나라들은 버티다가 이듬해인 1948년 네루 정부가 탱크를 몰고가 강제로 합병을 시켜버려 문제의 싹을 잘라버렸다. 그 후로는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시킴과 카시미르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킴은 1975년에 국민투표에 의해 인도에 병합되어 하나의 주가 되었다. 인도가 티벳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중국을 공격할 때마다 중국이 맞불 카드로 꺼낸 곳이 시킴이다. 그런데 엄밀하게는 티벳과는 근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시킴은 대표적인 토후국이었다가 1975년 연방에 병합된다 @이광수

토후국은 현재 라자스탄 주에 가장 많았다. 라자스탄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인지라 그곳에서 자기들은 영국 식민 지배를 당한 적이 없었다면서 위풍당당하게 말하는 주민들을 많이 만나는 게 이 지역에 토후국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은 사실 부끄러운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것은 맞지만, 식민 종주국의 위성(혹은 괴뢰) 국가였다는 말도 맞다. 그들은 영국 지배에 저항한 소위 말하는 세포이 항쟁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반영 민족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 경우가 한국이라면 아마 고개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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