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의 꼬투리 잡기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 '남는 부분'과 '실마리'
        2017년 09월 14일 04: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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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투리’는 콩을 싸고 있는 껍질로 16세기 문헌에는 ‘고토리’로 적고 있다. 콩을 포함한 곡식을 셀 때의 단위는 ‘톨’이므로 ‘도토리’처럼 ‘토리’는 ‘톨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 자명하다. ‘고’는 ‘상투머리에서 틀어 올린 부분’이나 ‘옷고름’처럼 풀리지 않게 감아서 매듭을 지은 것으로 고달이, 고사리, 고머리와 같은 말에도 쓰인다. ‘꼬투리’는 ‘모여 있는 콩알’이 떨어지지 않게 감싸고 있는 껍질이 되었다. 콩을 털어내고 남은 껍질은 ‘콩깍지’가 된다.

    콩을 수확할 때는 눌렀을 때 ‘꼬투리’가 갈라지게 될 선을 손가락으로 잡아 반으로 쪼개는 편이 쉽다. 그래서 ‘꼬투리’는 (1) 어떤 일의 실마리를 뜻한다. 동시에 작업을 마치고 나면 손가락이 아프기도 한 일이기 때문에 (2) 헐뜯을만한 거리를 뜻하게도 되었고 먹지 못하고 (3) 남는 부분을 가리키게도 되었다.

    특히 ‘말꼬투리를 잡다’라는 표현은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집요하게 힘을 쓴다는 뜻이다. 그러니 생각이 다른 쪽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렇게 ‘톨’에서 시작하였지만 사뭇 다른 뜻을 가진 ‘-투리’는 다른 말로 옮겨갔다. ‘자’ 재고 남는 부분을 ‘자투리’, ‘말’로 재고 남는 부분을 ‘마투리’라고 한다.

    ‘사투리’는 19세기가 되어서야 기록이 되었는데 ‘사토리’의 형태였다. ‘-투리’가 남는 것을 뜻한다면 ‘사’는 ‘사이’에서처럼 ‘서로’의 뜻으로 짐작된다. 둘 이상의 말씨를 비교하여 같은 것을 없애고 나면 소리나 뜻이 달라 ‘서로 남는 것’을 가려낼 수 있게 된다. 달리 ‘샅+올+이’의 결합으로 본다면 ‘샅’이 틈을 뜻하는 말이므로 ‘실이나 줄의 가닥 사이의 틈’ 정도로 볼 수도 있다. ‘사’와 ‘샅’은 같은 무리에 속해 있다.

    비록 이치나 원리를 따지거나 풀어내는 일을 할 때에 말의 꼬투리는 중요하지 않은 ‘남는 부분’이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낱말의 의미를 따져서 풀어낼 때에는 아무리 작은 말의 꼬투리라 할지라도 중요하지 않은 ‘실마리’가 아닌 것이 없다.

    콩과 식물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밭농사에서 빼놓을 수없는 작물이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콩 농사를 광범위하게 지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경험은 말 속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재배과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먹기만 하기 때문에 말에 담긴 경험이나 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외국어를 배울 때도 바탕이 부족하므로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말이 가진 본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말을 제대로 배워 쓰지 못하고 모든 의미와 용법을 억지로 외울 수밖에 없다. 시간과 노력이 몇 배로 더 투입된다.

    더 나아가 제대로 알지 못하여 개념이 정확하지 못한 말을 가지고 엄밀하게 학문을 한다는 것은 어렵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우고 나면 시원하지 않고 더 답답하게 되고 만다. 그 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말이 넘치거나 바꾸는 일이다. 그마저도 여의치가 못하면 최종적으로는 권위를 내세워 다른 사람을 짓누르게 된다.

    필자소개
    우리는 아직도 뜻이 서로 맞지 않는 한문이나 그리스-로마의 말을 가져다 학문을 하기에 점차 말과 삶은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는 말의 뜻을 따지고 풀어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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