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학생은 퀴즈대회,
    인도 학생은 무슨 대회?
    [인도 100문-15] 토론을 좋아한다는 것
        2017년 09월 12일 0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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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릴 때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 나가서 월 장원인가만 해도 집안에 경사가 나곤 했다. 지금도 약간의 포맷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한국의 학생들에게는 퀴즈 형식의 콘테스트가 인기가 좋다.

    요즘은 아예 대놓고 알아두면 꽤 쓸 만한 잡다한 지식 같은 걸 방송에서 이야기 하고 들어서 나중에 써먹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나가고 있고 인기가 치솟는 중이라고 한다. 이런 문화를 한국인의 특질로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단편 지식 욕구가 강하다.

    이에 반해 인도 학생들은 토론이 강하다. 그 큰 나라에서 각 지역의 지역의 지역에서 기업이 후원해서 개최하는 토론(debate) 시합이 아주 다양하게 벌어진다. 중고등학교 학생은 물론이고,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토론 대회가 숱하게 열린다.

    그들은 민주주의 꽃을 토론으로 보는 전통을 갖고 있다 @이광수

    인도 사람들을 폭넓게 접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 정말 말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정말 토커티브다. 대학 캠퍼스를 보면 온 종일 잔디밭에 앉아 짜이 한 잔에 비스킷 몇 개 놓고 무슨 말들을 그렇게들 하는지. 깔깔거리면서 몇 시간이라도 싸움 나지 않고 하는데, 정말 그 말의 향연이 예술이다.

    그러다 한국의 대학 캠퍼스를 보면 암울하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잔디는 쉽게 망가지니 또 그렇다고 치자. 여럿이 앉아서 토론하는 문화는 아예 존재한 적이 없다. 과거 80년대와 90년대 운동권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은 있었다. 심한 싸움으로 번지긴 해도 매우 건강한 토론 문화였다. 그 문화는 지금 사라지고 고작 있다는 게 PPT 발표 대회다. 섹시한 내용 잡아 멋지게 꾸며서 윗사람에게 효율적으로 보고하는 것, 그 따위 것을 대학생들이 시합씩이나 한다고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하기 그지없다.

    인도인들이 토론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갖는 특유의 상대주의적 세계관에서 나온다. 힌두 철학과 불교 철학을 웬만큼 접해 본 사람들은 그들의 사변적인 논리 전개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궤변적인지 잘 알 것이다. 달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달 자체가 흔들린다고 하는 사람도 맞고, 구름이 움직이니 달이 흔들리게 보인다는 사람도 맞고, 보는 당신이 움직이니 달이 흔들린다고 하는 것도 맞고, 보는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니 달이 흔들린다고 하는 사람도 맞고 아무 것도 흔들리지 않으니 달이 흔들리는 것이라는 것도 많다.

    이외에도 비(非)실체성에 대한 자신만의 논리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런 문화를 그들은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 문화 속에서는 이야기가 아주 다양하고 깊은 수준으로 발달되어 있다. 이야기꾼은 보는 것만 전해주는 자가 아니고 안 보아도 상상하면서 지어내는 것도 전해주는 사람이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있을 수 없으니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세계관 속에서 나오는 문화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최고의 신화와 연극을 발전시켰고 그 안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야기가 다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세상살이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에는 확인할 수 없는 아니 확인할 필요 없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규명할 수 없는 음모론이 난무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끝도 한도 없는 윤회의 시간 세계에서 나온 것으로 신과 인간, 인간과 동물 등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끝없이 펼치는 것으로 결국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그들은 낙관적이다. 그래서 노 프라블럼No problem이다. 이런 세계관에서 그들은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논리를 설파하는 걸 즐긴다. 그것이 그들의 토론 문화의 저변이다.

    토론을 좋아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내포한다. 우선, 토론이 진행된다는 것은 그것이 물리적 싸움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니 그들은 그런 싸움을 즐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그것은 그들이 상당히 관용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이 행동보다는 말을 앞세운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원칙이라는 게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창의적이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토론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고가 깊고 넓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찾는데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인도 사람들이 여러 점에서 뛰어난 그 바탕에는 그들의 토론 문화에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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