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대투쟁 30년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는?
    민주노총 87년 7·8·9 대투쟁 토론회
        2017년 09월 12일 10:59 오전

    Print Friendly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올해로 꼭 30년이다. 7월 5일 현대엔진에서 시작된 민주노조 건설투쟁은 3개월 동안 4000여개의 민주노조가 탄생했고, 170만여 명의 조합원들이 새롭게 가입했다. 3천여 건 이상의 노동자투쟁이 발생했고, 연인원 200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공장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동3권을 보장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것이 전부였다. 30년이 지났지만 정규직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사형선고에 시달리고, 비정규노동자들은 몇 년씩 광장과 거리를 떠돌고 있다. KTX 승무원 노동자들은 10년째 복직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9월 6일 정동프란체스코회관에서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토론회”를 개최했다. 8월 22일부터 30일까지 경복궁역 메트로 전시관에서 노동전시회를 시작으로 이날 “노동세계의 변화와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1부는 ‘한국사회 노동세계 변화’라는 주제로, 2부는 ‘민주노조운동 30년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각각 나뉘어서 진행됐다. 토론회의 주요내용을 요약정리했다.

    (제1부) 한국사회 노동세계 변화

    발제 : 김공회 교수(경상대), 장귀연(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영선(노동시간센터)
    토론 : 이희우(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 이호동(발전노조전해투), 김기범(사무금융연맹), 강웅표(금속노조 경남지부)

    (제2부) 민주노조운동 30년 현재와 미래

    발제 : 김승호(전태일 노동대학),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김혁(민주노총), 천연옥(부산본부)
    토론 : 백석근(건설산업연맹), 이상무(공공운수노조), 김상구(금속노조), 임순광(비정규교수노조), 이선규(서비스연맹), 김태영(경북본부), 권택흥(대구본부), 김창곤(인천본부)

    토론회 모습(사진=필자)

    “경제의 주체이자 관리자로서 국가”
    “어떻게 경제사회를 진보적으로 재편할 것인가”

    1부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공회 교수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경제의 변화와 노동운동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지난 30년간 국가의 역할이 변화했으며, 한층 복잡해진 자본에 따라 노조운동이 전통적인 임금인상투쟁을 넘어서는 원칙과 입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위기가 2001년 이후로 안정화되면서 실업률은 그 이전으로 회복되었지만 “ 청년실업률은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동안 실업률이 높아질 경우 문제해결을 위해 싸우는 타깃은 대기업과 자본이었지만 그 대상이 자본에서 국가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청년실업을 경제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 즉,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문제나 가계부채 역시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조선시대에 ‘신문고’를 울리듯이 국가의 권능에 의존”하는 방식에 비유했다.

    30년 전과 비교해 국가의 경제적 의의와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 현재, 노동운동은 ‘제도화’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김교수는 지적했다. 김교수에 의하면 (한국이라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어떠한 ‘사회화’를 위한 조치도 없이 국민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의 35%를 통제하고 자유롭게 집행할 수 있다. 따라서 더 거대해지고 있는 국가기구에 노동계급이 분배와 의사결정에 개입할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의 바깥 문제라고 치부되어 왔던 ‘조세와 최저임금’이 노동운동의 중요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런 투쟁들에서 노동자는 ‘노동자’라는 존재가 아니라 주권자인 ‘시민’으로서 자신들을 드러내는 것은 흥미로운 동시에 노동운동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에 대해 언급하면서 “갈라진 것을 다시 서로 붙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재구성하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려받은 유산과 전략적 한계를 극복해야”
    “새로운 노동의 등장, 메신저 감옥”

    장귀연 불안정철폐연대 정책위원이 “노동운동에서 1987년의 유산과 새로운 도전들 : 계급구성과 계급형성”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진행했다. 장 위원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이 주춤거리자 91년 전후로 노동운동 위기론이 급격히 확산되었지만 오히려 “노동운동은 계급형성의 능력을 보여주며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민주노조의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과 구속으로 일관했지만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노동3권 등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했다는 것이다. 그 예로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무력화되고 노동법이 날치기 통과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통해 민주노총을 법적으로 쟁취한 것을 들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유산으로 민주노총이 건설되었지만 조직기반은 대기업 정규직으로 고착되었고, 중소기업과 비정규노동자들을 결집시키는 계급형성은 사실상 실패했다. 장위원은 노동조건이 변화되면서 노동자들의 관심사도 다양화되었고, 대기업 정규직은 자격을 갖추고 있거나 핵심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차별’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노동운동진영에서 주장하는 직무급 역시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한 이후 고용안정이 우선과제로 떠오르면서 단기주의와 보신주의 즉, 노조이기주의가 만연해진 것이 계급형성의 실패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체모를 4차 산업혁명이 대세다. 기업은 물론 정치인들도 경제성장의 유일한 동력은 4차 산업혁명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누구도 급변하는 기술에 따른 ‘인간의 노동’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원의 “새로운 노동의 등장 : 플랫폼 노동 등 노동형태의 변화를 중심으로”라는 발제는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SNS 노동’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주목을 끌었다.

    “2015년 직장인의 공감을 산 신조어 1위는 ‘메신저 감옥’, ‘카톡 감옥’이었다. ‘전자발찌’라고 불리기도 했다. 메신저 감옥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업무 연락이 가능해지면서 사무실을 벗어나도 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감옥 같은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혹자가 공장을 ‘완화된 감옥’이라고 불렀던 것에 비춰보면, 디지털 모바일 기술을 매개로 일상 자체가 ‘투명한 감옥’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영선 연구원에 의하면 2015년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조사에서 ‘직장인의 69%’가 업무시간 외에도 메신저로 업무 연락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락을 받은 직장인들의 88%가 즉시 업무를 처리했고, 심지어 69%는 회사로 복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문제점은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가전제품의 발달은 가사노동의 처리 시간을 줄어들기는 하지만, 새로운 업무가 늘어나고 “가사노동의 처리 속도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아져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신저 감옥은 정치권으로도 옮겨졌다. 최근 국회에서는 업무시간 외에 메신저 등을 통한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메신저를 통한 업무지시 탓에 한밤중에도 업무를 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어 “사생활까지 침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법안발의 취지에 담겨있을 정도다. 퇴근 후 뿐만이 아니라 휴일에도 메시지가 날아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신기술을 매개로 한 자본의 유연화”는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지워버리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으며, ‘길이’에 초점을 둔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전통적인 구호”로서 유의미할 수는 있으나 점차 낡은 것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김 연구원은 지적했다. 그 예로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인 다임러(Daimler AG)가 “휴가 기간 중 업무 관련 메일이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한 장치”를 설치한 것이 이 개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으로 대항담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극동(Far East)’이란 표현이 유럽 중심주의의 산물이듯, ‘스마트’, ‘자율주행’, ‘4차 산업혁명’, ‘빅 데이터’, ‘인공지능’, ‘딥 러닝’이 기술신자유주의 언어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김승호 전태일노동대학 대표

    “전태일의 인간해방사상을 복원해야”
    “현장조합원을 주인으로 세워내야”

    김승호 전태일대학 대표가 “민주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본 민주노총의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로 2부 첫 번째 발제를 진행했다. 김 대표는 민주노조라는 말 자체가 한국적인 표현이며 다른 나라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조 대신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박정희 정권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한국노총을 통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별과 단위기업을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개별자본가에 대한 어용노조가 아니라 국가 파쇼에 대한 어용 즉, 관제어용노조에서 벗어나야 자주적인 노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개별기업은 조합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했기 때문에 국가를 민주화하는 것과 기업 내의 민주주의가 동시에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에 자주적인 노조 대신에 민주노조, 민주노조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민주노조운동의 미래전략을 고민한다면 “87년 이후 30년간의 역사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시발점을 제공한 전태일 열사의 사상에 입각해 민주노총의 미래를 가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전태일의 항거를 단순히 근로조건 개선과 불의에 맞서는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류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전태일의 인간해방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태일의 사상은 ‘인간해방사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전태일의 인간해방사상의 다른 표현이었던 노동해방이라는 구호가 어느 순간 노동운동에서 실종됐으며, 정치는 의회주의 정당에 위임한 채 노조활동은 탈정치화되고 사회주의 이념은 (화석화된) 강령에나 적혀 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시했다. 민주노총 시대에는 전노협의 노동해방이 사회진보로, 사회변혁이 사회개혁으로 순화된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의 그동안의 활동은 “전노협의 정신을 계승하기 보다는 청산”했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당면한 과제로는 민주노총의 정체성을 크게 바꾸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계급적 노조운동과 산별노조운동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의회주의 정치가 아니라 광장의 정치운동, 변혁지향 노조운동, 노동해방과 인간해방 사상을 복원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비판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민주노총에게 힘내라는 따뜻한 말도 덧붙였다.

    왼쪽 두번째가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가 “87 노동자대투쟁과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양 대표는 노동자대투쟁의 가장 큰 성과는 “노동자 의식이 성장하고 계급으로서의 노동자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꼽았다. 또한, 노조조직의 확대에 따른 노동운동의 전체적인 구도 변화와 민주노조운동의 발전 역시 노동운동의 지형변화를 가져온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87년 투쟁은 개별사업장과 공장을 넘어 지역별 투쟁으로 발전했으며 지역연대를 통해 전국적으로 노동자투쟁이 전개되었다. 지역과 전국을 연결하는 공식적인 연결망이 없었음에도 노동자투쟁이 확산된 것은 노동자 스스로가 계급성을 깨닫는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양 대표는 중앙조직은 고사하고 산별도 지역조직도 없는 87년 당시에도 일어났던 감동적인 연대투쟁이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운동은 명목상의 노조가 아니라 조합원 대중 속에 살아있는 조직으로서의 노조를 건설해왔다는 것을 지적하며 ‘민주성’에 충실하는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성의 의미는 단순한 선거절차나 형식이 아니라 현장이나 일터에서 조합원이 토론에 참여하고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통해 조합원을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세워내는 것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당면과제라고 진단했다.

    천연옥 부산본부 비정규위원장은 “민주노총의 비정규운동에 대한 평가”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민주노총의 비정규사업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천 위원장은 비정규노조가 투쟁을 협의하기 위해 정규직노조를 찾아가면 “근로조건이나 몇 가지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이 많았다고 경험담을 소개했다. 현장에는 이런 대리주의. 시혜주의를 연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정규노조의 자주적인 투쟁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별노조의 성과주의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정규노동자들을 상대로 서로 자기조직을 키우려고 하는 일들이 현장 곳곳에서 충돌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천 위원장은 산별들 간의 소통과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미조직・비정규로 되어 있는 조직체계로 되어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천 위원장은 미조직 문제와 조직된 비정규 문제는 현장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집행부와 임원이 바뀌면 담당자가 바뀌는 것도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했다. 기존의 사업이 단절되고 새로 시작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비정규노조를 정규직화 하는 과정에서 자회사 형태로 전환되는 것에 동의하는 전략조직화사업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천 위원장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에 대해서도 “자본과 노동이 대립을 노동과 노동의 대립”을 변질시키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의 전투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비정규운동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끝으로 자신이 아니면 이야기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면서 (민주노총) 일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에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일침을 덧붙였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