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수성은 건전합니까?
[서평]『여성의 권리 옹호』(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책세상)
    2012년 08월 25일 1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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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공부하려는 생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들이 다들 페미니즘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라고 하면 지나치게 솔직한 이유가 되겠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 주장’과 동의어가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 좋겠다. 나는 페미니즘을,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남녀 불평등과 성(性)소수자에 대한 다수의 폭력 모두를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한다.

감수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의 내부로만 파고들어, 자신의 감정에만 민감한 사람은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고집쟁이 어린아이다. 우리는 좀더 성장하고서야 비로소 바깥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혹은 바깥의 감정에 공감하려는 노력을 계속함으로써 아이가 성장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은 어린아이이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같은 정도의 감수성을 타고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린아이가 한 사람 몫의 어른이 될 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게 해야 한다. 그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눈 돌리는 곳마다 어린아이 싸움이 한창인 세상이다. 내게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일은, 내가 미처 배우지 못해 부족한 그러나 필수적인 종류의 감수성을 가지고자 하는 노력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이 책도 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 18세기, 계몽주의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던 당시의 서구 사회, 그러나 여성은 온전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그 때에 그녀는 여성을 남성과 똑같이 교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여성에게는 남성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교태, 굳어진 예의범절, 집안일 또는 허영을 위한 손재주를 익히는 것만이 허용되었던 시대, 질투와 교활함, 학문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가 여성의 본질로 간주되던 시대에 말이다. 빛나는 이성을 발휘하는 남성에게, 아름답게 가꿔진 여성은 잠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온실에서 기른 화초와 같았다.

지금은 많은 부분 당연하게 여겨지는 내용이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교육받은 여성이었던 울스턴크래프트의 급진적이기 짝이 없는 주장이었다는 진부한 이야기. 울스턴크래프트는 두 번 결혼하고, 사생아를 낳고,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가정 생활을 한 탓에 당시 많은 비난을 받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방금 전과는 반대로 진부한 이야기 : 지금도, 두 번 결혼했지만 지금은 남편이랑 안 살면서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21세기에, <여성의 권리 옹호>에 대한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러므로 그 주장의 면면을 이곳에 옮기기보다 나는 본질적인 공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귀 기울여지지 않는, 주목받지 않는, 다수에 의해 배척당하는 욕망과 감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의 감수성을 건전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감수성은 괜찮은가요?

물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며, 그것을 가장 인간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겪지 않고는 감히 나는 너와 같은 것을 느꼈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백발백중 틀릴 것이다. 나는 아마 영원히 자신이 가진 여성의 몸이 지독하게 불편한 사람의 고통, 그리고 그가 생리를 할 때에 느끼는 불쾌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사랑하는 여성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여성의 마음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행동이 상처나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본래의 모습대로 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고통받고 상처받지 않을 것은 나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리이기도 함을 안다.

어쩌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가까이 들여다보는 수고를 들이면 많은 일은 저절로 해결된다. 인간은 원래 그런 동물이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사랑에 있어서는 그렇게 크게 다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 우리는 어깨를 맞댈 수 있다. 감수성이 행동으로 이어지느냐는, 일단 느낀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니, 모두들 힘을 내자.

그리고 뱀발 붙이기. 울스턴크래프트의 문장에는 수사와 비유가 많다. 반어법도 많이 쓰였고 문장의 길이 자체도 긴 편이다. 전반적으로 여성의 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다방면에 걸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만 주제는 같은데, 역자는 옮긴이의 글에 그녀가 자신의 주장을 ‘수다스럽게’ 반복한다는 표현을 썼다. 문체는 개인마다 다른 것이지만, 그녀는 굳이 간결하고 논리가 분명히 드러나는 방식ㅡ흔히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방식, 혹은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이 남성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러한 ‘주류’의 방식ㅡ으로 글을 쓰려고 애쓴 것 같지 않다.

나는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여성이 쓴 글과 남성이 쓴 글에서 대부분 분명한 차이를 느낀다. 울스턴크래프트의 글은 문학 작품이 아니지만, 나를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글이 ‘여성’이 쓴 글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의 권리 옹호>가 여성이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글쓴이가 여성임을 느끼는 일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여성적’이라고 느낀다면? 나아가 ‘여성적’인 여성의 피상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전혀 올바르지 않은 어떤 모습이라면? 아아. 공부를 해야겠다. 좀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귀를 귀울여야겠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학교 노수석 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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