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년 7·8·9 투쟁의
    현재적 의미 알고 싶다면
    [상선여수]「서른, 그 후」 읽으시라
        2017년 09월 11일 01:59 오후

    Print Friendly

    흔히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그러나 곧잘 과거는 잊히거나 묻혀 진다. 최근 오도엽이 쓴 <서른, 그 후>라는 책을 읽었다. 서울지하철노조의 30년 역사를 한 권의 소설로 썼다. 30년 세월에 담긴 눈물과 피와 땀방울들을 기록했다.

    사실 30년 동안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기다 배일도, 강진도, 정연수 등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고, 어떻게 기술되느냐에 따라 많은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술술 읽힐 정도로 쉽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때론 가슴을 치고, 울고 나눴던 기억들을 고스란히 불러내어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책을 발간한 서울지하철노조 30주년 기념사업회는 이 책을 “선배들에게 바치는 송가(頌歌)이자 서른 즈음의 젊은 동료들에게 보내는 연서(戀書)”라고 했다. 그 말이 꼭 맞다.

    군대병영 같았던 서울지하철공사

    나는 교육을 할 때마다 87년 7,8,9 투쟁으로 노조가 본격화되기 이전 노동자들의 처지가 어땠는지에 대해 말하곤 한다. 우리가 맞이하는 ‘지금’은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례는 현대자동차의 경우를 주로 들었다.

    87년 노조가 생기기 전엔 군화를 신은 경비들이 지각했다고 토끼뜀을 하게 하고, 조인트를 까고, 두발검사를 했다는 얘기를 울산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자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별 두 개짜리 장군 출신이 사장으로 있던 서울지하철은 그것을 넘어 아예 군대 병영이었다. 떠든다고 발령을 일주일간 연기하고, 교육생들을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행군을 시키고, 군대점호 식으로 부동자세를 취한 채 훈시를 하고, 정액권을 팔아오라고 시키기도 했다.

    “공사에서 노동조합의 노짜라도 들리면 닭모가지를 비틀 듯이 비틀어 멱을 따 버릴 거다. 내가 광주 폭도 새끼들을 진압한 혁명 주체세력이란 걸 명심하길 바란다.”라는 사장의 말은 거짓이나 과장이 아닐 터이다. 그 땐 그랬으니까.

    사실 지금 조합원이 되는 사람들은 과거 선배들이 어떻게 노조를 만들고 활동해 왔는지 잘 모른다. 간신히 30명을 모아 노동청에 신고를 하면, 노동청은 사용자에게 알려주고, 그러면 회사는 이들을 전원 해고시키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취업조차 못하게 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철통같은 보안이 필요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화 ‘파업전야’를 보시라.

    1987년 8월 12일 노조를 결성한 서울지하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11명이 모여 실패하고, 그 후 다시 57명의 발기인이 모여 만들 수 있었다. 후배들이 노동조합의 소중함을 몰라주면 선배들이 많이 서운해 하는 이유다. 그리고 노조 결성으로 일거에 군사문화를 와해시키고, 직장 민주화를 가져오는 과정은 책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오죽했으면 815 해방에 비유했을까?

    노동운동의 역사를 알려면 그들을 보라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관심이 없다. 수많은 전봇대가 있지만 누가 그것을 세우고, 어떻게 수많은 전선을 연결하는지 모른다. 인터넷 공사를 할 때 만나는 노동자들,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는 사람들,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생각하지 않는다. 수천만 시민의 출퇴근을 담당하는 지하철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공황장애로 자살하는 기관사에 대한 기사가 나면 잠시 눈을 돌릴 뿐이다. 그 기관사가 겪는 “승객들이 괴물처럼 이빨을 내밀고 승강장에서 뛰어들 것” 같은 공포는 아예 모른다.

    서울지하철 노조 30년! 거기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알게 되는 것은 곧 우리 노동운동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와 많은 부분 일치한다. 서울지하철노조는 1987년 8월 12일 노조 설립에 이어 1989년, 1994년, 1999년, 2004년 등 꼭 5년마다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책에는 첫 파업인 1989년 3.16 파업에 대한 얘기가 유독 많다. 투쟁은 인간을 발가벗긴다. 그가 가진 용기와 동시에 나약함도 남김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쌓여 동지애가 된다.

    서울지하철 노조가 지금까지 건재한 이유는 어쩌면 반복적인 투쟁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말은 진실이다. “여전히 어두운 구렁텅이로 몰아넣어도, 잠시 숨을 죽이며 살지라도 결코 굴복하거나 죽지 않고 되살아나는 이 건강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라고 작가 오도엽은 묻는다. 그리고 그것이 투쟁에서 나온 것임을 아주 생생하게 담고 있다. 경찰, 사용자, 사수대, 투쟁을 회피했던 사람들, 투쟁하는 사람들의 가족, 그리고 홍순영 동지처럼 죽어간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30년을 관통하면서 살아오는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

    “마무리, 끝!”

    내가 직접 그들과 결합한 것은 1999년 당시 구 공공연맹, 공익노련, 그리고 서울지하철노조가 속한 민철노련(전국민주철도지하철노동조합연맹)이 하나된 조직인 공공연맹으로 통합된 직후부터였다. 서울지하철노조는 민철노련 소속이었다. 물론 그 직전인 95~96년 노동법개악 저지 투쟁 때도 명동에서 잠깐 그들을 보긴 했지만 기간이 짧았다. 99년 4월 19일 파업 당시 공공연맹의 조직팀장을 맡았던 나는 8일 동안 그들과 함께 천막생활을 하면서 아주 가까이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명동성당이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연대 대오와 거점에 들어가지 않은 조합원들은 대학로에서부터 승무지부와 지도부가 있는 명동성당까지 집회와 행진을 하곤 했다. 당연히 명동성당 앞에선 해산집회를 하곤 했다. 마무리 집회라지만 연사에 따라선 길어지기도 했다.

    “꼭 마무리 집회를 해야 하냐? 조합원들이 힘들어 하잖아”

    “그래도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인사는 해야지요”

    “알았어”

    마지못해 단상에 올라간 석치순 위원장은 “마무리. 끝!”하고 딱 4글자만 말하고 내려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이 책에는 이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장면이 여럿 있다.

    독사 김연환 위원장, 석치순 위원장, 임성규 사무국장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고민을 오롯이 담고 있다. 이미 그들은 정년퇴직했다. 그들과 현재를 잇는 것은 김대훈 역무지부장이다. 5년 주기의 파업투쟁에 대한 많은 뒷얘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과거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온다면 현재와의 대화가 가능하다. 거기서 미래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한 30년, 미래로 30년!

    오늘 우리에게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무슨 의미인가? 흘러간 유행가처럼 과거 타령이나 하자는 것인가? 쏜살같이 지나간 30년을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30년을 가늠하기 위함일 것이다.

    1989년 3.16일 파업으로 2,345명이 문자 그대로 개 끌려가듯 경찰에 잡혀갔으나 함께 해서 행복했던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1999년 4.19 파업으로 구속되고, 해고 되었다가 10년도 훨씬 넘어서야 복직이 되고, 복직이 되자마자 정년퇴직을 했으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있다. 그 선배들이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미래’ 때문이다. 서울지하철노조는 30주년 조합원 대동한마당 행사를 하면서 “함께 한 30년, 미래로 30년”이라 한 이유일 것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그 대화를 나누면서 미래를 함께 꿈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서른, 그 후>를 읽어 보시라!

    필자소개
    이근원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전두환을 만나 인생이 바뀜. 원래는 학교 선생이 소망이었음. 학생운동 이후 용접공으로 안산 반월공단, 서울, 부천, 울산 등에서 노동운동을 함. 당운동으로는 민중당 및 한국사회주의노동당을 경험함. 울산을 마지막으로 운동을 정리할 뻔 하다가 다행히 노동조합운동과 접목. 현재의 공공운수노조(준)의 전신 중의 하나인 전문노련 활동을 통해 공식적인 노동운동에 결합히게 됨. 민주노총 준비위 및 1999년 단병호 위원장 시절 조직실장, 국민승리 21 및 2002년 대통령 선거시 민주노동당 조직위원장 등을 거침. 드물게 노동운동과 당운동을 경험하는 행운을 가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