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혹한
    공영방송 살해의 공범들
    [영화이야기]최승호PD의 '공범자들'
        2017년 09월 11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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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범, 공동정범共同正犯의 줄임말인 이 말은 범죄 행위를 공동으로 실행한 사람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왜 감독이 <공범자들>을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으로 삼았는지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범죄 행위에 마지못해 부역한 사람들이거나 지시에 따라 범죄에 도움을 준 종범이 아닌 범죄행위 그 자체를 공동으로 실행한 주범들이라는 뜻이겠죠.

    그렇다면 이 공범자들이 저지른 범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중요할 듯합니다. ‘공범자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국면에서 국민이 모두 목도한 타살된 공영방송의 참혹한 시신입니다. 이를테면 ‘공범자들’은 언론과 방송의 죽음이라는 익숙한 메타포를 공영방송이 권력에 의해 장악당하는 과정으로 해석하여 만들어낸 범죄 르포입니다.

    범죄의 동기를 다루는 부분인 이명박 정권 초기의 언론 환경과 공영방송의 보도로 인해 이명박 정부 초기 인사들이 낙마하던 과정을 시작으로 공영방송이 살해돼 간 과정을 낙하산 인사의 행보를 가운데 두고 그리고 있는 것이죠.

    공범자들에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첫 번째 낙하산 인사인 MBC 김재철 사장을 시작으로 안광한 김장겸으로 이어지는 MBC 사장들, 그리고 백종문, 박상후 등의 간부들과 KBS의 길환영, 고대영과 방문진의 수많은 부역자가 등장합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공영방송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음습한 골방에서의 그네들끼리 나눈 범죄 모의가 흘러나오기도 하죠.

    이 과정은 범죄를 재구성한다는 영화적 의미에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주 몰랐던 일들은 아니죠. 정권에 비판적인, 또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시사프로그램들이 하나둘 문을 닫을 때 우리는 그것이 경영상의 판단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프로그램들의 빈자리를 채웠던 건 수많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대중들이 즐기던 예능프로들이었을 테니까요. 또는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 PD들이 스케이트장 관리 업무로 인사이동이 됐을 때도 우리는 그 정권의 비상식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예시 정도로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엔 그보다 더 처절하고 더 극악한 노조탄압 행위들이 즐비했으니까요.

    그렇게 공영방송이 방문진 이사들과 낙하산 사장에 의해 교살당하는 과정, 그리고 권력에 비판적인 기자, PD, 언론노조가 탄압받고 해고되고 인사조처 된 결과로 발생한 과다출혈로 심정지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 중심에 있던 언론인의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한편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너무 무겁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최승호 감독의 발랄한 편집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의 악역, 악당이 너무나도 가볍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거창한 철학이나 신념에 의해 그런 일들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적인 욕망의 결과로 공범을 자처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의 그들의 겸연쩍은 표정과 후배 기자들의 비난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공범자들의 모습은 그들의 행위로 연유된 파괴된 공영방송이라는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고소를 머금게 합니다.

    특히 영화 내용상의 주범인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 장면 등이 삽입돼 나올 때는 극장 대부분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요즘 말로 현웃이 터졌다고 표현하는) 유머러스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우스운 상황은 결국 더 큰 비극성을 담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죠.

    공범자들은 공영방송이 살해당하던 과정보다 그 범죄를 저지하기 위해, 또는 그 결과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싸웠던 언론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를 조금 더 진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포함해 김경래, 김보슬, 이용마, 김연국, 김민식 같은 KBS와 MBS의 기자, PD들의 투쟁과정이 등장합니다.

    언론노동자 전체의 투쟁으로 그려진 것이라기보다는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스타 언론노동자들을 중심에 놓고 그려지긴 하지만 공영방송 소속 언론노동자라는 틀 안에서 공영방송이 죽어가던 상황에서 이들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영방송을 지키려고, 살리려고 했었다는 것을 직접 증언합니다.

    아쉬운 것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야기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나도 직접적이거나 인터뷰이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하는 방식이어서 이 영화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가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몇몇 인터뷰는 물론 뭉클하긴 하지만 즉자적인 분노를 일으키도록 설계된 기능적인 장면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예술을 하자고 만든 것이 아니라 정치하자고 만든, 또는 투쟁하자고 만든 영화라는 것을 감독도 관객도 모두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필연적으로 이 영화는 아주 뜨거운 다큐멘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 스스로가 공영방송이 죽어가던 과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해고당한 저 유명한 광우병 PD수첩의 PD이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권력에 의해 목이 졸리던 순간을 현장감 있게 담아내기에 가정 적합한 감독일지도 모릅니다.

    프로파간다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선 작품이기도 하지만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오만함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공감하고 분노하고, 때로는 웃고 울면서 스크린을 끝까지 응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스크린에 걸려있을 때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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