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를 재발견하는 시대를 위해
    [메모리딩의 힘8] 어린이는 가르치는 대상이 아니다
        2012년 08월 25일 11: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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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를 다스리는 넋과 정신을 다스리는 넋을 몸에 실어 하나로 하되 서로 헤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 숨을 오로지 하여 부드러워지되 젖먹이처럼 할 수 있겠느냐?
    – 노자, <도덕경> 10장

     어린이의 재발견

    “부모형제들에게 총뿌리를 대지 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경찰의 무차별 발포에 항의하는 서울 수송국민학교 학생들. 4.19 당시에 대대적인 어린이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진출처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누나의 당시 나이는 17세였고, 4.19혁명에서 대활약한 것은 중학생이었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섰다는 역사 기록도 많이 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4월 19일 시위 중 숨진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양)
    –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어린이가 그야말로 ‘애 취급’을 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어린이였던 시절이 없었다는 듯이 어린이를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그야말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하는’ 것처럼. 뇌과학의 관점에서 어린이를 보면 그야말로 한 사람의 존재가 만들어지는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이다.

    두뇌의 발달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실질적으로 외적 자극을 통해서 생성된 신경 전달 물질와 함께 신경접합부의 증가가 주된 요인이다. 새로운 접합부는 매번 새로운 행위를 습득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저장할 때 생겨난다. 새로운 행위를 하지 못했을 때는 생겨나지 않거나 죽어버린다는 뜻이다.

    어린이에게 ‘새로운 일’이란 ‘재미있는 일’을 뜻한다.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질 때를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이렇듯 신경세포가 새로 연결되면 뇌는 크기와 무게 면에서 말 그대로 성장을 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이 신경접합부는 아이가 자랄수록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서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에는 절반 정도가 없어진다. 접합하지 못한 뉴런은 그냥 죽어버리고, 이제까지 경험했던 정보들이 주축이 된 남아 있는 연결 부위는 습관적으로 굳어져버린다.

    이는 만약 아이가 다른 아이를 무시하는 행위 같은 부정적인 행동을 발달시키면, 초기에 수정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교정을 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역사와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어린이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 현대사에서 어린이가 했던 역할도 중요하지만 세기의 지성들이 어린이를 비유한 것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앞서 소개한 노자뿐만 아니라 맹자도 “대인이란 그 어릴 적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루하 8-12)라고 하여 어린이의 마음을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어린이를 강조했다. “만약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처럼 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하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천재란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어린 시절”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는 우주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것을 알맹이에 비유한다면, 알맹이를 담을 그릇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이성이다. 즉, 우주적 감수성을 우주적 이성에 담을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 선택은 새로운 인간형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게 되는 인간형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시한부로 설정하고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 때는 어린이가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된다.

    다른 선택은 어른의 복제물로 만드는 것이다. 어른들이 배웠던 가치들을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전수해주는 방식은 한마디로 우주적 감수성을 이성이라는 냉장고에 담는 것처럼 무리한 일이다. 이 때는 어른이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된다.

    이제까지 우리가 선택한 방식은 후자였다. 이 방식은 싸움이 많아지고, 슬픈 일과 억울한 일이 많아진다. 한 가지 상황만 생각해보면 된다. 세상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그 고통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을 때, 이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어린이의 심성을 가졌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든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도 자본의 그림자가 밀려들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것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마치 육교에서 동냥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싸늘한 눈빛을 보낸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

    문명을 통해 수의 역사를 살핀 <숫자의 탄생>을 쓴 조르주 이프라라는 수학자는 아이들이 물어보는 수에 관한 천진난만한 생각들을 무시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면 수학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어린이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만 하지 않으면 된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대상으로 보던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어린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과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는 깔려 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미래를 앞두고 있다. 기술이나 문화, 지식 등 모든 방면의 차이는 줄어들고 있으며, 이와 함께 어른들이 금과옥조처럼 생각했던 가치와 상식들이 재빠르게 폐기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아이에게 어떤 가치나 원칙들을 강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지금 당신이 소중하게 지키는 가치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지 물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철학자들이 하는 농담 중에서 “샤르트르가 만일 아이를 낳았다면 세계 철학사가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실존주의라는 철학에 생명과 아이의 눈을 접목시켰다면 철학의 색깔이 어떻게 펼쳐졌을까 하는 물음이다.

    첫째 민준이를 낳을 즈음 노자를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읽었다. 이전에도 노자를 몇 번 읽었지만 아이와 함께 깊이 읽고 싶었다.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든 이치는 어린아이를 닮아 있다는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속에서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어머니들을 만나서 아이에 대한 독서지도 교육을 시작한 지 만2년째 되는데, 이 역시 민준이를 낳고 나서 달라진 인생의 일 부분이다. 단지 관념적인 사유와 아이의 탄생이라는 사건 때문에 생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초․중․고등학교 아이들과 만나며 논술지도를 했던 경험과 수년 동안의 시민단체 활동과 기업가로서의 활동, 그 동안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영향 등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자 실천이다.

    故이오덕 선생은 “그 천진난만함과 완전한 것에 이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것으로 되어 버릴까?”라고 말했다.

    우리가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하는 까닭은 어른의 시선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른의 시선이란 편가르기, 한계 정하기, 관습에 복종하기 따위다.

    만약 우리가 어린이를 관찰하고 어린이의 말에 귀기울이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생생히 목격하고 있는 “무지의 윤회”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메모리딩 독서놀이 프로그램에 부여한 문제의식이다.

    필자소개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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