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그릇 더 달라는 게
    부담스러웠던 그 된장국
    [밥하는 노동의 기록] 김밥·된장국
        2017년 09월 06일 11:5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둘째 아이가 조사는 빠졌지만 그럭저럭 두 개의 단어를 의미 있게 연결하여 의사 표현을 할 때쯤 나는 조는 것이 일이었다. 젖도 떼고 기저귀도 떼서 그제야 나도 밤잠이란 것을 잘 수 있게 되자 3년 넘게 못 잔 잠이 밀린 빚을 갚듯 하루 종일 몰려와 어떤 날은 고무장갑을 낀 채로 개수대 앞에 쓰러져 잠이 들기도 했다.

    잠이 든다고 계속 자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계속 엄마를 불렀고 나는 그 때마다 허청대며 일어나 일을 처리해주고 다시 그 자리에 누워서 또 잤다. 운 좋게 30분쯤 길게 자고 일어나면 아이들은 사고를 쳐놨다. 하긴 아이들이 왜 나를 30분이나 내버려 뒀겠나.

    바닥에 뿌린 밀가루 1Kg을 도로 담거나 역시 바닥에 흘린 포도씨유 700ml을 닦거나 샴푸 300ml로 낸 거품을 치우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다 보통 내가 그것을 치우는 동안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또 조용히 사고를 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날은 그냥 김에 밥을 싸서 반찬도 없이 먹였다.

    그러다 첫째가‘김이랑 밥 말고 딴 거’를 요구했던 날, 시장에 있는 김밥 집에 갔다.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간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머릿속에서 고르고 고른 식당이 김밥 집이었던 이유는 애들이 먹을 만한 것을 파는데다 여차하면 싸 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김밥 한 줄과 치즈김밥 한 줄을 주문하니 단무지와 된장국을 먼저 내주셨는데 김밥이 나오기 전에 둘째가 처음 맛 본 단무지 맛에 빠져 다 먹었고 한 개밖에 못 먹은 첫째가 칭얼댔다. 사장님이 단무지를 더 주셨는데 그것도 금방 동이 났다.

    다시 싸움이 나려는 순간 다행히 김밥이 나왔다. 아이들이 먹기엔 김밥이 컸고 숟가락으로 자르니 김이 제대로 잘리지 않아 가위를 주십사 말씀드렸다. 뭘 달라고 할 땐 한꺼번에 해야 하는 법이라 단무지도 또 주십사 했다. 가위가 있어 김밥은 잘 잘렸지만, 애초에 잘라 먹는 음식이 아닌 탓에 해체된 김밥을 먹이는 일은 수월치 않았다. 아이들은 자꾸 흘렸고 나는 그 잔해를 치우기 위해 얇은 종이 냅킨을 아주 여러 장 썼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기 몫의 된장국을 다 먹었다. 나는 내 된장국에 물을 타 반씩 나눠 주었다. 그것도 금새 다 먹었다. 나는 ‘김밥 두 줄 먹고 단무지 두 번 리필에 냅킨은 서른 장 이상 썼고 가위까지 달라고 했는데 된장국을 더 달라고 하면 싫어하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아이들에게 싸움의 전조를 읽어내고는 마음을 고쳐먹어 한 그릇을 더 얻었다. 두 그릇 달라고 할 자신은 없었다.

    해체되어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지만 남은 김밥의 양을 어림하니 반 줄 정도 되었을 때 도저히 여기에 앉아있는 것은 서로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갈 땐 좀 더 비싼 음식을 시키리라 다짐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조금씩이나마 자랐고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식당에 가는 일 또한 조금씩 수월해졌다. 그러나 나는 꽤 오래도록 3명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2명분의 음식을 시키면서 4명 분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면이 식당 주인 입장에 반갑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 키즈 존이 등장했을 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10여 년 전에도 이미 아이 먹일 음식을 공짜로 요구하거나 식당에서 뛰는 아이를 제지하자 ‘애 기 죽이지 말라’며 종업원을 야단쳤다는 엄마 이야기는 공공연했고 그것 때문에 나는 항상 혼자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면 전전긍긍했다. 모두가 나와 내 아이들이 언제쯤 사고를 치나 감시하는 것 같아 애 먹이는 것도 정신없는 와중에 주위의 눈치 보느라 말 그대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도 몰랐다.

    가끔 그런 별스러운 손님이 유의미한 숫자인가 궁금하기는 했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저출산이라 호들갑을 떨면서도 차별하고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 그것도 콕 짚어 엄마가 지목된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

    이미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충만한데 거기에 아이들까지 얹었다. 노 키즈 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자마자 스무 살은 먹은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이 무엇이든 어린 것들은 손이 많이 간다. 하다못해 씨앗 하나를 심어도 처음엔 공들여 돌봐야 하니 지구상 가장 압도적인 유년기를 가진 인간은 키우는 과정의 번거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린 인간은 누구나 더럽고 소란스럽고 손이 많이 가는 존재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기를 겪으며 자랐다.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 그럴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혼자 크지 않는다. 태어난 인간의 대부분은 자라서 무슨 일이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낼 세금과 국민보험료, 건강보험료는 어린 인간을 자신의 영역 밖으로 내몰고 그들의 보호자를 맘충이라는 멸칭으로 불렀던 이들에게도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다.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는 시민은 하늘에게 떨어지는 것도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다. 비이성적이고 시끄럽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어린이들을 집 안에만 묶어두고 나중에야 ‘요즘 것들은 배려라는 것을 몰라’라든가 ‘사회생활을 못해’ 혹은 ‘가정교육이 엉망이네’라 책망할 수는 없다. 가르치지 않고 바라는 것만 많으면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린 시민들과 그들의 보호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일으키는 작은 소란에 적절하게 무관심한 아줌마가 될 테다.

    한 솥 가득 끓여서 맘껏 먹어도 되는 된장국과 김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