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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가족의 아픔을 공유
    [인도 100문-14] 분할, 분단의 아픔
        2017년 09월 05일 04: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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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와 제대로 된 관계를 – 그것이 유학이든, 비즈니스든, 외교든 간에 – 갖고자 하는 한국 사람들이 인도를 관심 갖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이 지금 처한 정치적 이슈가 지금 우리가 처한 그 이슈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은데 그것들의 여러 원천 가운데 하나가 ‘분단’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두 사건은 분명히 다른 점도 많지만, 현재 두 나라의 여러 심각한 정치 문제를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데다가 그 파괴력이 너무나 커 블랙홀 같이 다 빨아들일 수 잇다는 점에서 그 사건은 매우 중요하다.

    인류사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인구 교환이었던 인도-파키스탄 ‘분단’은, 1947년 8월을 전후로 한 몇 개월 사이에 1,2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을 새로 만들어진 국민국가 인도와 동과 서로 구성된 파키스탄으로 이동시켰다.

    난민들 대부분인 약 1,000만 명이 서쪽 국경을 넘었는데, 그들은 유일하게 분단되었던 주인 뻔잡(Punjab) 주를 넘어, 무슬림은 서쪽의 파키스탄으로, 힌두와 시크는 동쪽의 인도로 왔다. 그리고 인도아대륙의 동쪽 웨스트벵갈 주에서도 규모는 서쪽 경우보다 적지만 마찬가지의 인위적 이주가 일어났다. 이 사건을 학문적 용어로 ‘파티션’(Partition)이라 부른다.

    ‘Partition’의 가장 제대로 된 번역어는 ‘분할’이다. 1938년 2차 세계대전 중 유엔이 주도하여 팔레스타인 영토를 쪼개는 계획안을 ‘Partition Plan’이라고 부르는 그 파티션, 즉 분할이다.

    이 분할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한국 경우의 ‘분단’이 있는데, 그 ‘분단’을 의미하는 영어 용어는 ‘Division’이다. 그런데 인도의 경우에는 그 사건의 현상으로 볼 때는 ‘분할’이라고 하는 게 적합하겠지만 비슷한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고 아직도 겪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분할’이라는 의미보다는 ‘분단’이라는 용어가 더 잘 와 닿는다. 엄밀하게 볼 때 그 사건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민족/국민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니 ‘분단’은 아니다. 그렇다고 잠정적인 의미가 농후하게 들어가 있는 ‘분할’도 아니다. 한국어로는 ‘분할’보다는 ‘분리(독립)’의 의미가 더 잘 와 닿는다.

    번역을 하는 경우 문자가 갖는 가장 적절한 의미를 뽑아서 사용하는 게 좋은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그 의미가 역사에서의 어떤 사건과 같이 매우 복합적이고 중층적일 때는 문자가 외연의 의미보다는 내포의 의미를 더 중시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인도와 한국의 두 경우를 간단히 비교해 보면 내 뜻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도 ‘Partition’의 경우는 그 뜻 안에 ‘양자의 동의’가, 한반도 ‘Division’의 경우는 그 안에 ‘타자에 의한 강제’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인도아대륙의 경우 두 개의 민족이 만들어지고 향후 통합의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 반면, 한반도의 경우는 새로운 민족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향후 통합의 의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다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식민주의의 결과로서 발생하였고, 그 사건 이후 현재까지 두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삶의 측면이 그 사건에 종속되어 있으며, 나뉘는 과정에서 인류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질과 양의 인위적 이주와 분쟁의 비극이 초래되었고 그 여파로 이산가족이 아직도 양쪽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보면 그 두 사건은 거의 의미하는 바가 동일하다. 나는 이 두 역사적 사건에서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에 집중하는 게 더 옳다고 보는 차원에서 둘을 동일한 ‘분단’으로 친다.

    델리의 번화가는 분단 이주민들이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광수

    인도 사람 특히 북부 인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지금의 파키스탄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죽었거나 그 언저리에 있을 것이다. 그곳에 돌아가신 부모를 두고 온 사람들, 자식을 놓고 온 사람들, 딸이 그 무슬림들에게 납치돼 강간당한 사람들, 그 무슬림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우물에 빠져 자살한 형수와 제수를 둔 사람들이 숱하게 많이 있다. 그 상처는 자식에게 물려진다. 그 자식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회한의 깊이는 다르겠지만, 부모의 것이라 감정이 닿는 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인도에 처음 유학 간 1983년에 KBS에서 잃어버린 30년,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TV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도 사람들이 숱하게 울었고, 실제로 그 말을 하면서 또 내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친구 어머니가 계셨다. 1947년 분단은 현대 인도를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면서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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