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텍에서 시작된
노동자 대투쟁의 서막
[한 장의 사진①]87년 7월 현대엔진
    2017년 09월 05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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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30주년을 맞아, 그 당시와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적 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소개하는 글을 시작한다. 어제의 그때, 그 역사와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하며, 오늘과 내일,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기대하고 기원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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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 5일 오후, 일요일을 맞아 울산의 랜드마크인 주리원백화점은 여느 때와 같이 쇼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평온한 일상이었던 이날, 오후 2시가 넘어서면서 젊은 청년들이 백화점 옆 골목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누군가에 쫒기는 듯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며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골목에서 마주친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가 분명했다. 반가운 표정으로 누구 형, 누구야를 서로 불렀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낮고 작았고 은밀하기까지 했다. 일요일 오후 한낮에 서로 아는 선후배가 하는 행동과는 거리가 먼 낯선 장면이었다.

오후 3시, 100명의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모인 장소는 디스코텍이었다. 놀랍게도 디스코텍 스테이지 정면에는 “현대엔진 노동조합 결성식”이라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스테이지에 설치된 작은 테이블에는 반 곱슬머리에 작은 얼굴을 덮을 것 같은 검은 뿔테안경을 쓴 앳된 얼굴의 29살의 청년 권용목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노동조합 결성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권용목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결성식 준비와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는 오종쇄와 사용운의 치밀한 사전준비가 한몫을 차지했다. 후일 사람들은 이들 세 명을 가리켜 ‘권오사’라고 호명했다.

결성식에는 100명의 결사대 외에 한 명의 인물이 참관했다. 참관인은 한국노총 금속연맹의 조직부장이었다. 조직부장은 현대엔진 노동조합의 결성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4개월 동안 400여개의 민주노조가 탄생하는 대투쟁의 서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노동조합 결성식을 마친 100명의 현대엔진 노동자들은 삼삼오오 바람처럼 흩어졌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시작되면서 식판을 손에 쥔 현대엔진 노동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술렁거렸다. 그날 아침, 노동조합 설립신고서가 제출되자 이 사실은 현대엔진에 전달되었고 곧바로 그룹본사에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당황한 현대엔진은 여기저기 현장을 수소문하고 다녔고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현대엔진 노동자들에 민주노조가 설립되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펴졌다.

식당에 나타난 권용목은 노동조합의 설립내용을 설명하자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만세’ 소리가 튀어나왔다. 식당에 나타난 회사임원이 강압적인 발언을 하며 제지하려고 했지만 한 노동자가 식판을 집어던지며 “죽여라”라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구호로 변했고, 겁에 질린 임원과 관리자들은 식당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사진 출처는 ‘노동자역사 한내’ 홈페이지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은 비참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3박4일인 여름휴가는 무급이었기 때문에 쉬는 날 하루 근처에 계곡이나 물놀이를 가는 게 고작이었다. 철야와 야근이 일상이었지만 회사는 밥 먹는 시간도 허용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전면에 내건 요구사항은 “여름휴가를 유급으로 할 것과 야근할 때 간식을 제공할 것”이었다. 노동3권은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화석화된 문구에 불과했다.

789 노동자대투쟁의 서막이었던 현대엔진 노동조합 결성은 직전에 있었던 6·29선언을 기회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권용목은 전태일 열사가 ‘바보회’라는 친목단체를 조직해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에 착안해 ‘고적답사회’를 조직했다. 휴일을 이용해 울산 인근의 고적지를 둘러보고 막걸리나 한잔 하는 모임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공장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토론하는 성격의 모임이었다. 1985년 10월 24일 조직된 고적답사회는 그날을 기념해 ‘2.4회’라는 별도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들은 6월 항쟁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민주노조를 건설하려는 결사체”였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은 그 투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수많은 사진을 남겼다. 하지만 정작 투쟁의 서막이었던 현대엔진 노동자들의 사진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현대엔진 노동자들의 노조건설은 목숨을 건 혁명의 서사와도 같았다. 이틀 후, 울산의 공장들에는 한 장짜리 유인물이 식당, 탈의실, 그리고 작업장에 흩뿌려졌다. 현대엔진 노동조합 만세!

권용목은 네 차례의 구속을 거쳐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권용목은 민주노조운동을 이탈해 2002년 정몽준의 대선캠프에 가담했고, 뉴라이트에 참여해 활동하다 2009년 세상을 떠났다. 오종쇄는 오랜 해고기간을 거쳐 현대엔진이 현대중공업으로 합병된 후 복직해 회사의 지원으로 노조위원장에 당선됐지만, 단체협상을 회사 측에 위임하는 등 민주노조운동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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