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떨어진 말과 생각들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 잇는 '동'
        2017년 09월 04일 01: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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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은 ‘잇는 것’이다. 뜻이 분명하지 않으면 반복하면 쉽다. 한국 사람은 춥거나 안타까울 때면 발을 ‘동동’ 구른다. 또 북을 ‘동동’ 연속해서 두드리기도 한다. 한편 물 위를 ‘동동’ 떠다니는 것은 불안정하게 계속해서 흔들리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의성어나 의태어가 아닌 분명한 뜻을 가진 말이다.

    심지어는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나 수평선도 ‘동’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해가 뜨기 직전에는 동이 튼다. 여기에서 ‘트다’는 (1) 벌어지다와 (2) 통하게 하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봄이면 싹, 움, 순이 트고, 겨울이면 손이나 입술이 튼다. 또 물건이나 일이 트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 사이에서는 길, 거래, 말, 방귀 따위를 트기도 한다. 반대로 해가 지면 ‘동’은 다시 서로 맞물리는데 이를 두고 저문다고 한다. 유사하게 ‘동의 안’에 있는 것은 시간적인 사이를 나타내는데 이것이 바로 ‘동안’이다.

    명사에 ‘-다’ 혹은 ‘-이다’를 결합하면 뜻이 가장 잘 드러나는 말이 된다. ‘동이다’는 실이나 끈 따위로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묶는 것이고 ‘매다’와 함께 하면 ‘동여매다’가 된다.

    그래서 한국말에는 동을 대거나 달기도 하고 반대로 동을 떼거나 자르기도 한다. 이러한 말들은 주로 집이나 옷을 짓는 과정과 같이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천을 연결하여 만든 저고리를 ‘색동저고리’라고 하며 저고리의 깃에 덧대어 붙였다가 떼었다가 하는 부분을 ‘동정’이라고 한다. 이외에 ‘윗/밑동’, ‘끝동’ 같은 말이 더 있다. 개념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치나 조리에 맞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동떨어졌다’고 말하면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 역시 다른 말과 결합하여 매우 재미있는 말을 만든다. 서로의 어깨를 이으면 ‘어깨동무’가 되고 그만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동무’라고 부른다. ‘동아리’는 사람들이 작은 단위로 모인 것을 부르는 말이 되겠다. 이렇게 보면 ‘마을’의 비슷한 말인 ‘동네’도 순수한 우리말일 가능성이 높다.

    ‘동’은 ‘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동’이 완성된 것이 ‘통’이다. ‘통’은 (1) 하나로 묶인 무리와 (2) 전체의 뜻을 가지고 있다. 배추나 박과 같이 굵고 크기가 큰 것을 셀 때도 ‘통’을 사용한다. (작은 것은 ‘톨’로 센다). 또 비밀리에 서로 엮인 사람들의 집단을 ‘통속’이라하고 한다. ‘전부’를 뜻할 때는 ‘않다’, ‘없다’, ‘모르다’, ‘못 하다’ 등의 말과 함께 짝을 이루어 쓴다.

    이렇게 한국말에서 의미가 없고 단순히 모양이나 소리를 흉내 내는 말로 취급되는 말은 알고 보면 의미가 분명한 경우가 많다. 살펴보지도 않고 뜻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가까운 말들을 찾아서 무리와 갈래를 지어보아야 한다.

    또 ‘트다’와 ‘터지다’와 같이 초·중·종성이 유사한 낱말들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소리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의미가 뻗어나가는 자연스러운 길이다. 마치 우리가 뜻을 담는 말소리는 서로 충돌을 피해야 하는 전파와 같이 희소성을 가진 자원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우리는 아직도 뜻이 서로 맞지 않는 한문이나 그리스-로마의 말을 가져다 학문을 하기에 점차 말과 삶은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는 말의 뜻을 따지고 풀어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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