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근본주의를 생각하며
[종교와 사회] 반공동체적 신앙운동
    2017년 08월 30일 04: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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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사람보다 종교가 있다는 사람이 훨씬 많은 한국 사회이기에 늘 종교에 대한 뉴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회자되곤 한다.

최근 어느 스님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제목이 “예수”라고 한다. 예수에 대해서 스님이 불교적 시각에서 바라본 영화인지 어떤지 안 봐서 모르지만, 어쨌든 스님이 기독교의 예수를 영화화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타종교에도 마음이 열려있다는 뜻으로 이해되기에 불교의 넓은 포용성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뉴스였다.

반면에 육군 4성 장군과 그 부인이 공관병들에 행한 참으로 어려운 갑질 행위에 대한 뉴스가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그 부부는 개신교인(아마도 교회 중직자들이었을 것)들이었으며, 심지어 장군의 부인은 교인이 아닌 공관병을 일요일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도록 강요하여 마지못해 공관병은 일요일 교회를 가야만 했다고 하니, 목사인 나로서도 부끄러운 뉴스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어느 대형교회 목사는 설교하면서 “개도 부잣집 개가 낫다”고 했다는데, 이는 대개 사병들이 부대에서 근무하는 것보다는 장군 공관에서 근무하면서 더 잘 먹고, 더 여유로운 군대생활을 하니까, 가끔 장군과 부인이 갑질을 좀 하더라도 부대 내부반 생활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 결국 개(병사)도 부잣집 개(공관병)가 더 낫지 않냐 하는 의미가 그 설교에 내포되었다는 것이다. 계속 개신교인임을 부끄럽게 하는 이런 뉴스들을 접하면서 종교근본주의를 생각해본다.

흔히 종교를 “세계 설명체계”, 그리고 “삶의 문제 극복체계”라는 두 개의 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서 자기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가지고 자기를 이해, 인식하는 과정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게 형성된 세계관으로 사람들은 각자 인생의 문제들을 나름대로 해결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는 한편 “세계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종교의 발전은 세상과 자기이해 세계관의 발전이 아닐까.

독일 철학자 틸타이(Wilhelm Dilthey)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맞서는 “역사이성비판”을 쓰고자 했다. 인간의 인식 과정을 순수 이성만이 아닌 역사적 경험으로 이해하려 했었다는 말이다. 종교라는 세계관도 마찬가지로 이성적으로만 규범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경험 속에서 실현될 때 더욱 발전적 종교세계관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우선 종교근본주의는 역사와 사회적 삶과 경험으로부터 유리된 형이상학적 가치체계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생기는 왜곡된 종교이념 행태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근본이라는 말은 기초, 토대, 본질, 기본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근본주의는 종교의 가장 기초가 되고 본질이 되는 중심 원리와 입장을 최대한 견지해 나가자는 주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순수하고, 핵심적인 종교적 이상을 견지해 나가는 아름다운 종교운동이 될 것인가,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역사와 경험을 강조하는 근대주의, 곧 계몽과 과학과 역사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기초와 본질이 위협받으니, 기초와 본질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불변의 캐논(Canon) 또는 기준을 만들어 보수하면서부터 왜곡된 종교근본주의적 사고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결국 종교적 불변의 진리체계를 만들게 되고, 기본과 본질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순수 종교를 반 과학, 반 역사, 반 경험의 초자연의 불변적 교리체계를 무조건적 신봉하는 반 공동체적 신앙운동으로 변질시키게 된 것이다. 종교의 기초이며 본질인 사랑, 평화, 용서, 구원, 해방, 자유의 이념은 왜곡되어 제도화되고 박제화된 교리로만 강조하는 근본 아닌 근본을 추구하는 이념만 남게 된 것 아닌가.

대개 근본주의는 18세기 근대주의적 경향에 반대하면서 19세기 후반 생겨나기 시작한 사조를 일컫는다. 그러나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사실 20세기 들어와서 미국 개신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실제 역사는 120년 정도에 불과한 새로운 이념체계로,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왔다고 하는 기독교 불변의 진리를, 포기할 수 없는 기초와 본질,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이념이다.

20세기 초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발행된 팜플렛, <근본: 진리를 향한 증언. The Fundamentals: A testimony to the Truth)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과학의 발전, 현대주의의 등장과 다원적 문화의 확장, 자유주의 신학 등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에 대항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다섯 가지 기독교 교리 즉, “성서무오설, 그리스도의 신성과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 예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심판을 위한 재림, 사탄과 비(非)그리스도인들의 멸망, 예수 믿는 자들의 부활과 천국에서의 영생”을 주장하게 된다.

이 교리들은 결토 움직일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교리들이 되었다. 결국 기독교 근본주의는 모더니즘(Mordernism)의 등장과 과학의 발달, 다원적 인식론 등 사회의 발전을 세속적으로 타락해가는 현상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에 맞서 사회를 정화시키고 과거의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본질 추구적 근본주의 운동은 시대 조류에 맞지 않게 개혁적, 개방적, 다원적 정치제도나 문화발전에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역사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게 된 것이다.

이런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우리나라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몇 가지 근본적 교리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결코 용납하지 않고, 자기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상대에 대해 공세적 자세를 취하는 한편 폭력적 모습으로 변질되어 한국 개신교 안에 퍼져있다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폭력적 근본주의적 양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고, 대표적인 것이 이슬람 원리주의(근본주의)의 극단적 테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근본주의는 근본주의를 낳는다. 이런 모습이 종교의 탈을 쓰고 폭력적 갑질로 변질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육군 4성 장군과 그 부인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오버하는 것일까?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교리 교육과 신앙 양태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척하며 자기의 성전만을 높게 구축해 나가려는 특성을 지닌다. 역사와 사회적 경험성을 부인하며, 초월적, 내세적, 신비적 상상만을 강조하면서 교회와 교인으로 하여금 반 역사성, 반 사회적 왜곡된 공동체 의식만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와 유리된 종교를 언제까지 사람들이 용납하고 받아들일지는 지금 나타나는 현상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근본주의적 개신교인들의 폭력적 갑질이 뉴스가 되지 않는 그런 때가 언제나 올지 모르겠다.

필자소개
목사. 거창 씨알평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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