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반산행에 혜정 동행하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24] 기억
        2017년 08월 28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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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간의 삶에서 기억은 온전하지 않다. 수많은 경험이 망각되고 재구성된다. 재구성 과정에서 심하게 왜곡되기도 한다. 어떤 경험은 과도하게 남기도 한다. 삶의 경험을 오롯이 담을 수 없는 두뇌의 한계 때문이다. 경험의 특성에 따라 의도적으로 버리고, 또 버리지 못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이다. 복수의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는데도 각자의 기억이 서로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가해자의 기억과 피해자의 기억이 다른 것의 배경이기도 하다.

    기억의 늪에서 고통 당하는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면, 기억의 망각과 재구성은 굉장한 복이다. 물론 꼭 남기고 싶은 기억이 희미해지면 많이 아쉽기는 하다. 그렇지만 슬픈 경험과 기쁜 경험, 뿌듯한 경험과 민망한 경험, 영광의 경험과 치욕의 경험 따위가 재구성되지 않은 채 온전하고 공평하게 기억된다면, 인간은 참으로 환장할 것이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수시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을 의미 있는 첫 만남의 순간으로 기억한다는 점에선 둘 다 같았다. 그렇지만 기억에 남은 첫 장면은 서로 다르다 했다. 서울 후암초 입학식장에서 누리와 혜정은 키가 비슷해 한 줄에 섰고 쪼그마한 서로의 손을 잡았다.

    누리의 기억이라 했다. 그날 혜정 엄마가 자신에게 혜정이와 친하게 지내라고 말했다는 것을 깊게 기억했고, 그래서 더 애정을 가지며 친해졌다고 했다. 혜정 엄마가 누리에게 잘 지내라 당부한 것은 의례적 인사만은 아닐 터였다.

    혜정은 제 아빠 공부 땜에 입학 전까지 일본과 미국에서 생활했다. 한국에 친구가 없었다. 엄마로서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자식의 교우 관계가 걱정되지 않았을까. 학교에 왕따가 있는 불안한 대한민국이었다. 한데 혜정의 기억엔 없다고 했단다. 혜정 엄마가 누리에게 한 말이었기에 그럴 수 있으리라.

    혜정의 기억이라 했다. 그날 춤을 추다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누리의 눈을 찔렀다는 것을 깊게 기억했고, 그래서 더 관심을 갖고 친해졌다 했단다. 한데 누리 기억엔 없다고 했다. 눈이 찔렸다는 것과 춤을 췄다는 것도 기억 못한다고 했다. 혜정은 친구 눈을 찔렀다는 미안한 마음에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순하고 여린 아이였다. 누리는 스치듯 찔려서 기억을 못하고 있으리라. 웬만한 일은 염두에 두지 않는 아이였다.

    둘은 초・중 9년에 이어 고교 3년까지, 12년을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될 죽마고우였다. 다른 몇몇 아이와 더불어 우리 가족에게 깊은 기억으로 자리 잡은 아이였다. 누리는 종종 말하곤 했다.

    “혜정이는 왠지 내가 평생 돌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게 만들어.”

    11월 7일, 오늘의 동반산행엔 혜정이 합류했다. 상명대학교 뒷길로 탕춘대지킴터를 지나 향로봉으로 향했다. 급경사의 바위 구간이긴 해도 비교적 무난했다. 하지만 혜정은 신음을 연발했다. 오늘이 태어나서 첫 등산이라는 아이였다.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아이고.”

    “아하하하.”

    혜정의 신음에 누리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 밟아. 내 손 잡고.”

    누리는 쩔쩔매는 혜정을 끌어 주고 밀어 줬다.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르면서 위를 조심해. 돌이 굴러 내려올지 모르니까. 저번에 아빠랑 여기 왔을 때 돌이 굴러 떨어졌는데, 아빠가 나를 엎드리게 하고 위에서 몸으로 덮어서 보호해 줬어.”

    누리는 해당 구간을 오를 때의 경험을 상기하며 혜정을 조심시켰다. 위험 상황에서 자신을 몸으로 보호해 줬던 아빠의 행동이 뿌듯한 기억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딸이 중3이던 작년 이맘때였다. 함께 그 구간을 오르고 있었다. 딸애가 앞서게 했고, 나는 뒤를 바싹 따랐다. 경사가 급해서 딸이 미끄러지면 밑에서 몸으로 받칠 생각이었다. 갑자기 위에서 사람들 비명이 들렸다. 탁, 딱, 무언가 굴러 떨어지며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돌 굴러 떨어지는 소리라 직감했다.

    “누리야, 빨리 엎드려!”

    다급히 말했고, 딸은 오르던 상태 그대로 바위에 납작 붙었다. 나는 즉각 딸을 몸으로 덮었다. 한손으론 딸의 빈틈을 막았고, 한손으론 내 머리를 감쌌다. 다행히 옆으로 비켜 굴렀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위에서 한 남성이 조심하라고 소리쳤지만, 밑에서 한 남성이 피할 겨를 없이 맞았다. 이마가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화난 남성이 위를 향해서 누구냐고 소리쳤으나 자신의 책임을 고백하는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앞서 오르던 누군가 잘못 밟아 굴러 떨어진 듯했다. 눈에 맞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다.

    혜정과 누리는 인생에서 추억이 가장 깊게 새겨지는 초·중·고를 함께 했다. 사모바위 배경

    누리와 나는 혜정을 고려해 쉬엄쉬엄 걸었다. 그래도 혜정은 힘들어 했다.

    “아이고.”

    “다음에 또 오자.”

    “됐어. 죽어도 다시는 안 올 거야.”

    “아하하하.”

    혜정과 누리는 장난을 쳤다. 평생 우정으로 이어가면 좋겠다 싶었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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