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에는 왜 거지가 많은가?
    [인도 100문-12] 탈세속 문화와 근대화의 빈곤문제
        2017년 08월 26일 10: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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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조금만 살아본 사람이라면 당해 본 적이 있는 일이다. 정상적으로 지나가다가 느닷없이 나에게로 와서 손을 벌리면서 구걸을 청한다. 행색 하는 것을 보면 거지가 아닌데, 왜 저럴까? 뿐만 아니다. 도시 곳곳에 동냥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관광지로 가면, 과장 좀 섞으면, 온통 걸인들 천지다. 도대체 이 나라에는 왜 이렇게 거지가 많은가? 이는 이 나라가 가난해서 그런가 아니면 일종의 문화의 한 부분인가?

    구걸 행위는 탈 세속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광수

    인도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두 가지의 세계관이 공존한다. 하나는 세상을 긍정하면서 그 안에서 공부하고, 돈 벌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부모 모시고 사는 세상 중심의 삶이고 또 하나는 세상에는 궁극적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세상을 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삶이다.

    이 가운데 후자는 세상의 물질적 이치를 부인하는데 그 가운데 핵심은 세상을 유지하는 근본 중의 근본을 생산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세상을 버린다는 것은 곧 생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연명하는가? 일차적으로 자연 속에 풍부하게 널려 있는 여러 과일 같은 것을 따 먹는 것이다. 인도는 워낙에 더운 나라이니 잠자리는 큰 나무나 동국 같은 데서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별 어려울 것이 없고 입는 것도 더운 나라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같은 차원에서 먹는 것도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이런 탈(脫)세속의 문화를 어엿한 삶의 한 방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세상 안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을 만나면 그들을 존중한다. 그들을 산스끄리뜨어로 빅슈bhikshu 빨리어Pali로 bhikku라고 부르고 그 어휘를 한국어로 부를 때 비구라고 부른다. 불교에서 남자 중을 일컫는 비구, 바로 그것이다.

    비구라고 부르는 이들은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상당히 존중받는 문화가 오랫동안 널리 형성되어 있어 왔다. 그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이나 입을 것 혹은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지 못하는 세계의 본질을 좇는 사람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여러 왕이나 돈이 많은 부자들은 그들을 한결같이 스승으로 모시고 물질을 바치는 전통이 오랫동안 인도에서 행해져 왔다.

    그런데 그 비구라는 사람들은 속세를 영원히 떠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역사가 지나면서 다시 속세로 돌아와 탈속과 재가의 삶을 적당히 섞어서 살아나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정을 꾸리고 살지만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집을 비우고 몇 개월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기간 동안 세상을 헤매면서 떠돌이 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깊은 산 속이나 힌두 신앙에서 항상 성스러운 장소가 되는 큰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연명하기 위해 도시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도시가 아니면 구걸하기가 어렵고 그게 되지 않으면 연명하기가 어려워져 궁극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가 어려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런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그냥 경제적인 차원에서 남에게 빌어먹는 사람들에게도 우호적으로 대접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둘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는 인도인들의 세계관 때문이고 또 실제로도 그 둘을 분명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결국 인도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없는 사람 특히 자신에게 그 일부를 요구하는 사람에게 나눠 주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사는 문화 안에 익숙해 있다. 주는 사람이 있으니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공존 공생의 문화가 근대화가 되고 영국의 식민화가 심각해지면서 인도 농촌 공동체가 파괴되고 도시가 변태적으로 커져갔고 그곳으로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대책 없이 이주해갔다. 그러면서 중국, 멕시코, 브라질, 인도네시아와 같은 소위 제3세계의 대도시들은 늘어나는 거지와 슬럼으로 국가의 큰 문제로 불거졌다. 국가 차원에서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착취에서부터 비롯되어 신생 정부가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발생한 빈곤의 문제에서 도시 거지의 양산이 큰 문제가 되어 왔다.

    그런데 인도 사람의 전통적 세계관 차원에서는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과 나눠 갖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게 되면서 구걸을 하는 행위가 별로 부끄럽지 않게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아름다운 전통 문화가 서구의 제국주의 때문에 변질되면서 큰 사회 문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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