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인간선언’
    역사 잊은 노동자에게 미래는 없다
    [87년 789노동자대투쟁 30년] 전시회를 다녀와서
        2017년 08월 25일 09: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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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노동자 대투쟁 30주년을 기념하는 ‘노동자 인간선언’ 전시회를 24일 찾았다.

    전시관 양 벽면엔 120년 동안의 노동운동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놓은 연대기와 사진들이 걸려있다. ‘노동해방’을 외치던 90년대 노동운동 조직의 선전물, 투쟁물품 등도 볼 수 있다.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은 생각보다 많았다. 잰걸음으로 갈 길 가던 사람들이 사진전 앞에 멈춰서는 모습을 보면 경복궁역에 왔다가 우연한 기회로 관람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했다.

    연령층도, 대화의 주제도 매우 다양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직장인부터 학생, 노인 등이 발길을 멈추고 사진전 앞에 섰다. 한 여대생 무리는 90년대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해 ‘저 청바지가 예쁜 것 같다’, ‘역시 유행은 돌고 돈다’는 식의 대화를 나누는 대학생 무리부터, 노동운동 연대기를 끝까지 정독하는 70대 노인도 있었다. 머리띠나 투쟁조끼 등 투쟁물품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기획은 사진전과 노동운동 연대기였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부터 2016년 박근혜 파면 촛불투쟁까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연도별로 그 해의 대표적인 사건과 사건에 대한 설명 그리고 사진이 곁들여있었다.

    ‘19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6월 민주항쟁의 부록이 아닙니다. 본편입니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노동운동사 연대기. 양규헌 대표에게 간략한 해설을 부탁해봤다.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는 “지난해 9월부터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아 3대 기념사업을 준비했다. 87년 투쟁 기행과 출판, 그리고 이번 전시회가 그 3대 사업의 마지막이다”라고 설명했다.

    1945년, 민주노조 운동의 뿌리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1950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처음 들여온 노동법. 양 대표는 “우리 노동법의 역사는 개악의 역사다. 미국에서 가져온 노동법을 정부는 우리의 실정에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개악해왔다”고 했다.

    민주노조 운동이 가시화됐던 사건인 1970년 전태일 사건 이후로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동일방직 똥물 사건’이다.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구호와 함께 작업복을 입은 여성 2명이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진이 함께 소개돼있다. 동일방직이라는 여성사업장에서 민주노조 깃발을 들고, 주길자가 민주노조의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내부에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남자 관리자들을 중심으로 한 ‘구사대’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뿌린 사건이다. 박정희 정권은 여기에 공권력을 동원했고, 여성 노동자들은 나체로 공권력에 대응했다.

    대통령과 수많은 권력자들을 법정에 세운 ‘블랙리스트’. 이 블랙리스트가 처음 나온 게 바로 동일방직에서다. 공권력에 대응했던 동일방직 민주노조 조합원 120여명은 부당하게 해고당한 후 한국노총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의해 재취업하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게 된다.

    1980년, 민주노조 세력들은 비밀리에 11월에 전태일 추모제를 하기 위해 모였다. 비밀리에 해야 했기 때문에 남한강을 배로 건너서 산 속 깊이 들어가서 40여명이 촛불을 들고 전태일 정신을 추모했다. 어떻게 보면 그 촛불이 대통령까지 끌어내린 광화문 촛불 저항 역사의 시작이었다.

    몇 가지 사건을 거치고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이 발생한다. 양 대표는 “6월 항쟁을 계기로 촉발이 됐지만, 그 이면엔 그동안의 민주노조 운동, 투쟁의 경험과 성과, 고통이 축적돼서 나타났다. 급속한 산업 발전이 야기한 노자 간 응집된 모순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며 “6.29선언에서 직선제 등 정치적 시혜 조치가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건 어떤 조항도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인 노동운동사에선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최초로 시작된 게 울산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6.29선언이 있자마자 성남에 택시노동자들이 곧바로 파업에 들어갔다. 이게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시작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사건을 설명하면서 영화 ‘파업전야’를 언급했다. “노조가 없는 공장의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한 동지가 ‘우리 권리 찾기 위해 노조를 만들자’며 즉각 파업을 하고, 파업 현장에서 노조를 만들었다. ‘선파업 후노조 결성’, ‘선파업 후협상’이 특징이다. 물론 불법이었다”

    당시 3341건의 파업이 벌어지고 2백만명의 노동자들이 투쟁했다. 평균 4~5% 정도의 임금인상률은, 78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22%까지 올랐다. 투쟁의 경제적 성과였다. 노조는 231%가 늘었고, 노조 조직률은 22%에 달했다. “조직적 과제, 계급성, 경제적 성과, 권리 쟁취 그리고 투쟁을 통해 발견한 노동자 문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희망을 갖게 되는 계기. 이런 것들이 모두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였다”고 말했다.

    이 투쟁으로 ‘새로운 민주노조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1988년 지역노조협의회를 최초로 만들면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노동해방’이라는 혈서를 썼다. 그리고 계급적 산별노조 설립이라는 목표를 가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이후 설립됐고, 이후 민주노총이 만들어진다.

    ‘노동자 인간선언’ 전시회는 경복궁역 서울메트로전시관 1관에서 볼 수 있다. 관람비도 무료이고 주최 측에 요청하면 노동운동사에 대한 해설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토요일, 일요일을 포함해 이달 말까지 진행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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