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걀만 있으면 든든했다
    [밥하는 노동의 기록] 늦잠 잔 날은
        2017년 08월 23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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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떠서 뒷목이 싸하면 그날은 늦잠을 잔 날이다. 아침 시간은 하루의 다른 때보다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다만 오 분, 십 분이라도 늦게 일어난 날은 콩 뛰듯 팥 뛰듯 해야 한다. 그럴 때 나에게는 달걀이 있다.

    밥을 데워 어제의 반찬과 부친 달걀을 얹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간장 양념장과 참기름만 올리기도 한다. 달걀을 부치는 사이 밥과 버터를 함께 데우고 다시마 간장을 뿌려주면 반찬도 필요 없다. 썰어놓은 채소가 있는 날은 채소를 볶다가 푼 달걀을 우유와 섞어 부쳐 그냥 주기도 하고 빵이 있으면 끼워준다. 이럴 땐 좀 짭짤해야 잘 먹어서 케첩이나 토마토 소스를 곁들여 준다. 찬밥에 달걀을 풀어 섞어 달군 팬에 볶다가 액젓으로 간하기도 하고, 파기름에 달걀만 먼저 휘저어 익힌 후 밥을 볶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기도 한다.

    모두 10분 이내에 차려낼 수 있는 음식들이다. 많이 늦은 날은 달걀만 부쳐서 준다. 심각하게 늦은 날은 부친 달걀을 종이컵에 담아 학교 가는 길에 들려 보내거나 반찬통에 담아주고 차 뒷자리에서 먹으라 한다. 그런 날은 빈 반찬통 두 개를 달랑달랑 들고 집에 올라오면서 달걀이 없는 삶은 늦잠을 잘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반찬이 궁한 날에도 나에겐 달걀이 있다. 채소가 어중간하게 있으면 납잡하게 썰어 밀가루 옷에 달걀물을 입혀 지지거나, 자투리밖에 없으면 다져넣고 달걀말이를 하면 된다. 가끔 정성이 돋는 날엔 달걀물을 세 번쯤 체에 내려 찜을 한다. 맞춤하게 익으면 그릇이 흔들릴 때마다 살짝 찰랑거리는 것이 보기 좋다. 불과 가까이 하기 싫은 여름날, 고기보다 금방 익어 조리 시간이 짧은 달걀 장조림을 넉넉하게 해놓으면 이틀은 든든하다. 아침저녁이 선선해져 속은 찬데 끓여놓은 국이 없을 때 가장 만만한 게 달걀국이다.

    간식이 고민되는 날에도 달걀만 있으면 된다. 햇감자를 사온 날은 감자 찔 때 달걀도 같이 쪄서 소금에 절여 꼭 짠 오이와 함께 으깨 섞어놓으면 아이들이 오매가매 한 숫가락씩 떠먹는다. 굳어서 맛없는 빵도 우유와 섞은 달걀물에 적셔 구우면 되고, 먹다 남은 볶음밥도 지단에 싸서 주면 된다. 이도 저도 귀찮은 날엔 달걀만 삶아 놓는다.

    꼭 그런 날이 아니어도 달걀이 냉장고에 없으면 허전하다. 김밥에 햄은 없어도 달걀은 들어가야 맛이 나고, 다른 날은 몰라도 생일의 잡채나 설날의 떡국이라면 채친 지단이 나붓하게 올라가 있어야 이름 붙은 날의 음식행세를 할 수 있다.

    달걀을 하루도 안 먹고 지나가기 어려운 세상이다. 빵을 먹어도, 과자를 먹어도, 튀김을 먹어도, 김밥을 먹어도, 만두를 먹어도 달걀을 함께 먹는다. 시판 제품도 포장지 뒷면을 보면 ‘본 제품은 달걀을 함께 제조하는 시설에서 생산되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이렇게 흔하고도 든든한 달걀은 이름 그대로 암탉의 알이다. 암탉은 태어난 지 석 달쯤부터 일 년 반까지 알을 낳는데, 육 개월쯤엔 하루에 열 개도 낳는다고 한다. 사람도 그렇듯 닭도 잘 먹어야 좋은 달걀을 낳을 것이다. 나는 닭이 무엇을 먹는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가게에 가보면 별별 달걀이 많다. 닭이 어떻게 알을 낳는지는 모르지만 가게에 쌓여있는 달걀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 경험상 포장재가 얇은 플라스틱이면 싼 달걀이고 두꺼운 종이면 비싼 달걀이다. 이름이 짧으면 싼 달걀이고 길면 길수록 비싼 달걀이다. 닭이 아파도 약을 안 주면 무항생제 달걀이고, 인공수정을 시켜 낳게 하면 유정란이란 말은 주워 들었다. 넓은 농장에 풀어놓고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이 있다던데, 그런 달걀은 비싸고 참 염치없게도 나는 돈이 없다.

    돈이 없다는 말이 참 염치가 없는 것이, 내가 돈이 없는 것과 닭이 갇혀 알을 낳는 것은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돈은 없는데 달걀은 싸게 계속 먹고 싶은 마음을 쏙 빼놓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한 개에 400원도 안 하는 달걀을 자주 샀다. 볏도 잘리고 부리도 잘리고 내내 환한 조명 속에서 낮인지 밤인지 아침인지도 모르고 알을 낳아야 하는 닭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내가 늦잠을 자야 하니까, 반찬이 궁하면 안 되니까, 간식은 줘야 하니까, 애들이 잘 먹으니까 하며 샀다.

    물론 사회 시스템의 잘못이 있음을 안다. 그렇다고 내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닭에게, 달걀에게 무례했다. 닭은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한 것은 닭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보지도 않은 인간이다. 억압을 행하는 자의 말을 애써 믿은 것을 내 지갑 사정으로 둘러댄다면, 내가 좋은 달걀을 먹을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어느 아침의 달걀부침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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