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왕후가 인도서 왔다고?
    [인도100문⑪]'신화의 역사화' 위험
        2017년 08월 22일 11:1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인도와 한국과의 교류에 관한 말만 나오면 빠지지 않는 주제인 ‘허왕후’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하도 많이 해서 식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무리 발표하고 또 발표해도 인도에서 살거나 인도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역사학에 조예가 있거나 하는 사람조차도 역사적 진실은 무시하거나 관심 갖지 않은 채 부풀린 이야기에만 관심 갖는 풍토에 실망하여 낙담하곤 한다. 하지만, 그 동안 발표한 것이 대부분 학술적인 것이었다거나 그 분량이 너무 길어 대중적이지 못했다고 자평하면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풀어본다.

    하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일부가 《삼국유사》에 일부가 채록되어 〈가락국기〉라는 이름으로 있는 기록에 처음 나온다. 가락국의 김유신계가 자기 가문의 영광을 창달하기 위해 시조 수로왕의 부인을 불교의 나라 인도에서 온 것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처음 만들어진 이야기의 뼈대에 불교의 나라로서의 의미인 ‘아유타’가 라말여초에 어떤 불교 지식인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아유타’는 인도 최고의 서사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라마Rama가 다스리는 이상향으로, 불경을 통해 ‘인도’라는 나라를 의미하는 어휘로 쓰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가락국기〉가 편찬된 1076년 이후 《삼국유사》가 편찬된 1281년 이후 그 지역의 여러 이야기와 섞이면서 허왕후 신화가 점점 더 커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허왕후가 인도에서 올 때 풍랑이 심해 파사석탑이라는 돌로 된 탑을 싣고 와 무사히 항해를 마쳤다는 것이다. 물론 원래 이야기인 〈가락국기〉에는 없는 이야기다.

    그 후 조선으로 들어가 15세기 중반 이후 느닷없이 허왕후릉이 나타난다. 이 시기 중앙 정치에서 큰 역할을 하던 양천 허씨 두 관찰사가 주동이 되어 허왕후라는 이야기 속의 인물을 실제 인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김해 주위의 여러 불교 사찰에서는 사찰 비즈니스를 위해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고 그때 그와 함께 그의 오빠인 장유화상이라는 사람이 같이 왔다거나, 허왕후가 수로왕과 결혼하여 아들을 열 낳았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김수로왕의 대를 잇고 일곱은 신선 혹은 부처가 되었고 둘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그 후 허왕후 이야기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않은 채 《삼국유사》에 나오는 그저 그런 옛 이야기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종기라는 아동 문학가 한 분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 인도에 답사까지 다녀오면서 쓴 《가락국탐사》라는 역사 르포의 형식을 빈 책 한 권에 의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를 원용 각색하여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대중적으로 언론에 널리 알린 김병모씨에 의해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일약 국민 신화로 자리 잡았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민족/국가주의가 한창일 때 언론이 조성하고 학자가 왜곡하고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인도에까지 퍼지게 되었고, 인도의 힌두 국수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신들의 정치 이데올로기인 위대한 힌두 민족주의에 맞춰 한층 더 키워지는 중이다. 그 사이 김해 김씨 종친회에 의해 인도 북부 아요디야의 한 곳이 허왕후가 태어난 곳으로 비정되어 그곳에 탄신비가 세워졌고 한국 정부가 주도하여 성역화 사업을 계획 중이다.

    인도 아요디야 시에 이야기의 주인공 허황후의 탄신지까지 생겼다 @이광수

    모든 것을 다 차치하고 아요디야Ayodhya라는 곳은 김수로왕이 살던 서기 1세기 때는 인도 땅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아요디야라는 도시가 있지만, 그곳은 아무리 빨라 봤자 기원 후 5세기경에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아요디야는 인도아대륙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뱅갈만으로 나와 다시 동남아를 거쳐 가락국으로 온다는 이유도 전혀 납득이 되지 않고, 그렇다고 그곳에서 육로로 지금의 버마 쪽으로 넘어가 다시 배를 타고 가락국으로 온다는 것도 말도 안 된다.

    설화를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설화 또한 고유의 가치가 있는 문화자산이고, 문화 행사가 반드시 역사적 사실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설화는 문학이나 예술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이야기로서의 문화 자산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설화를 역사적 실체로서 인정할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허왕후 설화를 한국인들이 인도의 신화 요소를 차용하여 만들어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을 실제 있었던 일로 간주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최근 힌두 민족주의 역사학에 경도된 인도 국민당 정부가 인도의 교과서에 자신들의 공주가 한국 땅에까지 가서 문명을 전파하는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식의 내용을 교과서에 반영하겠다는 움직임도 있다. 이러한 수구 민족주의자들의 신화의 역사화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