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허가제 폐지해야”
    이주노동자, 연이어 자살
    사업장 이동 제한 '강제노동제도'
        2017년 08월 14일 03: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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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네팔 노동자가 고용허가제로 인해 사업장 이동을 제한 당하고 자살한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이주노동자 착취 제도이자 죽음의 제도인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경기이주공대위,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노동단체들은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이주노동자가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고용허가제가 죽음을 만드는 제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고용허가제 폐지 기자회견(사진=민주노총)

    2004년 8월 처음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정부가 국내에 취업을 희망하는 15개국 출신 이주노동자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해주는 외국인력 도입 정책이다. 체류 기간은 최대 3년이다.

    고용허가제 취업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회사 폐업 등의 특별한 사유가 있거나 사업주의 허락이 있지 않으면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고, 사업장의 문제로 설사 변경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3개월 내에 다른 사업주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본국으로 쫓겨나게 된다.

    앞서 지난 8월 6일 충북 충주의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을 하던 27살 네팔의 청년 노동자가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용허가제 때문이었다.

    고인이 된 네팔 청년은 유서에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자신의 통장에 모아둔 320만원을 여동생과 부인에게 보내달라는 말도 유서에 남겼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에 따르면, 그는 오랜 야간 근무와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다가 주간으로 변경된 이후에도 불면에 시달렸다. 이에 회사에 사업장 이동이나 네팔에서 치료 받고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회사가 이를 거부했다. 고인은 사망한 당일에 동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잠은 자서 뭐하나’ 등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팔 청년노동자가 사망한 바로 다음 날인 7일에도 사업장 이동 제한에 절망한 이주노동자가 연달아 자살한 일이 발생했다.

    화성의 돼지 축산농장에서 일을 하던 25살의 네팔 노동자는 농장에서 사업자 변경을 해주지 않는다고 동료들에게 괴로움을 털어놓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지 1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사망하는 이주노동자들도 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경북 군위와 경기 여주 돼지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4명이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없이 정화조를 청소하다 분뇨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7월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러시아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정부의 평가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현대판 노예제도’로 불렸던 산업연수생제도에 비해 고용허가제는 근로기준법 등 내국인과 동등하게 노동법을 적용하는 선진적인 제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단체들은 이날 회견에서 “고용허가제의 본질은 강제노동제도”라며 “지난 13년 동안 정부는 사업주의 이해만 반영해 끊임없이 제도를 개악해 왔을 뿐 이주노동자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무권리 상태의 결과가 끊임없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이라고 질타했다.

    실제로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13년 동안 지금까지 30여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단속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사망했고, 올해에 알려진 사례에서만 3명의 이주노동자가 단속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노동단체들은 “2017년 한국은 전체 이주민 200만, 그 가운데 이주노동자가 100만 명인 시대가 됐다. 한국 경제의 한 축이 이주노동자”라며 “이주노동자 착취 제도이자 죽음의 제도인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근본적으로 보장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한편 전국 이주노동자 등은 오는 20일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쟁취를 위한 ‘전국 이주노동자결의대회’를 개최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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