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외와 배제,
    '裏日本' 탈각이라는 공허한 꿈
    [동아시아 근현대 도시] 지역격차와 개발, 제국주의
        2017년 08월 14일 1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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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裏日本'(리일본. 우라니혼)이라는 단어

    일찍이 ‘裏日本'(우라니혼)이란 단어가 있었다. 뒤를 의미하는 裏(리)에 일본을 더한 단어이다.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이 단어는 거의 들을 기회가 없다. 이는 차별적인 뉘앙스가 내재되어 있기에 매스미디어들이 사용을 자제하게 되었기 때문이지만 1970년대까지는 흔히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단어는 일본의 근대 또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해 고찰할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의 裏日本 지역을 지칭하는 표시

    ‘裏日本’이란 말하자면 호쿠리쿠(北陸)·산임(山陰)지방을 가리키는 단어로 동해 쪽에 있는 여러 지역을 가리킨다. 전형적인 예로 니이가타현(新潟県)을 들 수 있다.

    ‘裏日本’이 있으니 ‘表日本'(오모테니혼)도 있다. 앞을 의미하는 表(표)에 일본을 더한 단어이다. ‘表日本’이란 태평양 쪽의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도쿄와 같은 칸토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裏日本’이란 ‘表日本’의 뒤쪽 그림자와 같은 의미를 가진 지역이다.

    ‘表日本’과 ‘裏日本’의 사이에는 높은 산맥이 있다. 지금이야 그 산맥에는 터널이 뚫려 니이가타와 도쿄 사이에는 신칸센도 다니고 있지만 2차대전 전에는 ‘表日本’과 ‘裏日本’의 단절은 상당히 컸다.

    ‘表日本’은 단순히 지리적인 개념뿐만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용어이다. ‘表日本’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가 진행한 부국강병이란 근대화 정책에 의하여 정치경제적으로 중심이 된 지역이다. 반면 ‘裏日本’은 그러한 여러 정책으로부터 배제되어 ‘뒤쳐진’지역으로 치부되었다.

    아베 츠네히사(阿部恒久) 씨의 연구에 따르면 1900년 즈음에 ‘裏日本’이란 지역격차를 고정관념화 시키는 단어로 사람들 사이에 강하게 인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니이가타 등에서는 ‘表日本’ 쪽과는 다르게 근대화 정책의 진행에 따라 인구 유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裏日本’이라고 불리는 니이가타현의 경우 자연환경 등이 냉혹한 것이 사실이다. 노벨문학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설국(雪国)』은 “국경이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였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일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 구절은 니이가타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

    니이가타는 적설량이 상당히 많다. 그 때문에 눈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고 교통이 두절되는 경우도 많았다. 단 니이가타와 ‘表日本’ 사이의 지역격차는 그다지 자연조건에 의하여 결정된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인프라 정비를 태평양 쪽에 집중시켰고 동해 쪽은 매우 소홀히 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의 산업육성 정책의 결과였던 것이다. ‘裏日本’은 정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裏日本’이라는 개념이 성립했는데 이는 ‘裏日本’ 측의 사람들의 의식도 규정해나가는 개념이다. 자신들은‘表’가 아닌‘뒤쳐진 지역’이다. 그래서 그들은 ‘表’가 되고 싶다. 여기서 니이가타 등지에서는 ‘裏日本’으로부터 탈각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물론 일본 정부의 태평양 지역 우대정책이 변하지 않는 이상 탈각의 길은 쉽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주목되는 점이 대륙과의 무역관계의 강화이다. 1902년 니이가타 상업회의소 보고에 의하면 요코하마(横浜)항이나 고베(神戸)항・나가사키(長崎)항・하코타테(函館)항들과 비교하여 니이가타항의 무역액수가 상당히 저조하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및 시베리아 지방과의 무역발전을 꾀하는 이외에 이대로 가다가는 어떠한 희망도 없다. 그렇다면 이 지방(조선 및 시베리아)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 니이가타항의 미래발전을 위하여 니이가타항민이 당연히 지어야 할 책임이며 이 개발 여부는 나아가서 니이가타항의 해항의 운명에 대하여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라고 저술하고 있다.(小林力三편 『니이가타상공회의소 60년사』 1958년 및 芳井研一『환일본해지역사회의 변용』青木書店、2000년)

    이러한 니이가타 개발에의 전망은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대외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의견, 아시아 침략 주장이 점점 고양한다. 니이가타 등에서는 러시아 연해주와 조선/만주에의 침략을 통하여 지역의 발전을 꾀하려는 의견이 대두된다. 일본에 있어 대외팽창의 사상이 니이가타현 등에 있어서는’裏日本’으로부터의 탈각이라는 지향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일본이 대륙을 향해 팽창해 간다면 동해에 접하고 있는 니이가타 등은 그 진출 거점이 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자신들의 지역의 ‘뒤쳐짐’을 극복하려는 지향이 바야흐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떠받친 것이다.

    ‘裏日本’ 탈각의 꿈

    그 후 니이가타의 발전은 생각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하지만 러일전쟁부터 25년 정도 지나고 니이가타가 처해진 상황은 크게 변화해 가고 있었다.

    1931년 9월 1일 조에츠선(上越線)의 우에노(도쿄)–니이가타 구간이 전면 개통되었다. 니이가타와 도쿄 사이에는 산맥이 우뚝 솟아 있다. 이 산맥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터널 공사가 필요했다. 970미터에 달하는 시미즈(清水) 터널이 개통하면서 처음으로 조에츠선이 연결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등장하는 터널이 바로 이 시미즈 터널이다. 도쿄과 니이가타가 직접 조에츠선으로 연결된 것은 ‘表日本’,’裏日本’의 단절을 돌파한 의미를 가진다고 니이가타 사람들은 기대하였다.

    그때까지 니이가타–도쿄 사이에는 다른 루트의 철도를 이용할 경우 11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조에츠선의 개통으로 7시간까지 단축되었다. 실제로 4시간이나 줄어든 것이다. 도쿄에서 보면 니이가타는 동해로 들어가는 현관문처럼 보였을 것이다.

    같은 해 9월 18일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일본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932년에는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이 세워진다. 이로 인하여 니이가타는 만주국의 현관문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즉 도쿄에서 조에츠선을 통하여 니이가타에 간 후 니이가타항에서 조선 동북부의 항구(청진항이나 나진항)에 상륙하여 거기서 철도를 이용해 만주국의 수도인 신경(新京)으로 향한다. 당시 도쿄에서 신경까지는 단 50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이는 대련을 경유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이라고 선전되었다.

    마침내 조에츠선의 개통 그리고 일본의 만주침략이 본격화하는 것에 의하여 니이가타의 ‘裏日本’ 탈각의 꿈은 어느덧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고 여겨졌다.

    일본과 「만주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루트를 선전하는 지도.
    出典:鉄路総局『敦化図們間鉄道の完成と日満関係』1933年

    ‘裏朝鮮’이란 단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조선쪽의 사정을 보자.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이후 일본인들은 함경도 및 강원도의 연안일대를 가르켜 ‘裏朝鮮’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는 필시 ‘裏日本’이란 단어를 조선에도 적용시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은 ‘裏朝鮮의 경제’라는 연재 기사를 게재하고 있었다.(1912년 8월 27일 ~ 1912년 11월 3일) 이 기사에 따르면 ‘裏朝鮮’은 조선 남부와 다르게 산악지대로 수전이 적고 교통도 불편하다고 한다. 한편 명태어업이 활발하였고 축산과 광업자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이후 개발이 기대 된다고 하였다.

    또한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점으로부터 이후 무역발전을 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역이라고 칭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군이 나남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기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며 이 지역의 개발을 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일본에게 이익이 된다고 내다보았다.

    ‘裏朝鮮’이라는 단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 중심적인 단어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 그중에서도 일본인의 경제 침략은 수도 서울과 수전지대를 시작으로 하여 조선 남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반하여 조선 동북부에 있어서는 일본인 상인조차도 전면적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하였다.

    확실히 조선 동북부는 자연상황 등이 조선남부와 상당히 달랐고 산업의 방향도 달랐다. 하지만 이는 조선 남부에 비하여 뒤쳐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 남부와 조선 동북부는 각각 독특한 경제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어느 것이 더 뛰어나다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 비해 일본의 경제력이 충분히 침투하지 못했던 점에서 ‘裏朝鮮’이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러일전쟁으로부터 조선 식민지화에 걸친 시기에 대하여 조선 동북부에서는 특히 강력한 저항운동이 일어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조선 동북부에서는 러일전쟁기부터 지방 관료나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하여 일본의 침략과 맞서 싸워왔다. 이러한 사실들을 비추어 볼 때 신문기사 ‘裏朝鮮의 경제’는“통감정치시대에는 우리 관헌에 대하여 반항의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통치가 힘든 백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강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고 또한 조선 안에서도 특히 지배하기 힘든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같은 기사에서 조선왕조에 있어서도 ‘裏朝鮮’ 지역은 통치가 닿기 힘든 곳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문명이 닿지 않는 야만스러운 지역이라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裏朝鮮’이라는 단어에는‘반항적’이고‘야만’스러운 지역이라는 차별적인 시선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裏朝鮮’즉 조선 동북부의 조선 식민지화의 과정에서 일본 측이 개항시킨 곳이 청진항이었다. 청진항의 근처에는 일본군의 군사거점인 나남이 있었다. 청진은 당초에 군사적인 목적으로 형성되었는데 일본 측에 의하여 점점 경제적인 역할도 맡게 될 거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다.

    신문 기사 ‘裏朝鮮의 경제’는 “裏朝鮮의 미래에 대하여, 내가 가장 흥미를 갖는 점이 청진의 운명이다. …… 裏朝鮮과 만주가 연결된다면 청진은 대련・부산・블라디보스톡의 세 항구와 대치하여 동아시아의 관문이 될 것이고 길림성・흑룡강성의 물자 일부를 반드시 드나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裏朝鮮’ 특히 청진항은 일본 측에 있어서 만주와의 접근이라는 점에 아주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裏朝鮮’탈각의 꿈은 앞서 본 ‘裏日本’ 탈각의 꿈과 겹친다. 단 중요한 것은 이 꿈은 일본인에게만 유효한 것으로 조선인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조선 동북부의 사람들은 일본의 침략 이전부터 만주와 러시아 사이를 왕래하고 있었으며 독자의 경제활동도 하고 있었다. 조선 동북부는 현지의 조선인에게 있어 ‘裏朝鮮’이 아닌 국경을 넘어선 경제활동의 장이었다. 일본인 측의 조선 동부북에의 차별적인 시선은 이러한 조선인의 활발한 경제활동을 충분히 보려 하지 않았고 ‘裏朝鮮’이란 일방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일본해 호수화’론의 전개와 좌절

    이야기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이가타현 등 지역에서는 만주국 건국 이후 드디어 ‘裏日本’으로부터 탈각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던 중 등장한 것이 ‘일본해 호수화론’이다. 일본에서는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일본해’를 바다가 아닌 호수로 취급하자는 주장이다. 제국주의 침략이 고양되고 있던 중 이러한 공허한 논의가 진지하게 주장되어졌던 것이다. 이상의 역사적 경위를 비추어 봤을 때 ‘일본해’라는 단어는 매우 정치적인 단어로써 제국주의과의 관계가 상당히 깊다고 할 필요가 있다.

    조선 동북부에서는 청진항과 더불어 일본에 의한 나진항이 새롭게 건설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조선인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니이가타항들에서 조선 동북부을 경유해 만주로 가는 루트는 당시 「북선(北鮮)루트」라고 불리었다. 조선인에게 있어 국경을 넘은 경제활동의 장이었던 조선 동북부를 단순히 「통과점」으로 재편하려 했던 것이다.

    나진항전경 出典:南満洲鉄道株式会社『羅津港建設工事写真集』1935年

    이처럼 조에츠선이 개통되어 나아가 「북선루트」가 정비되었지만 ‘裏日本’ 지역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해를 경유해 조선 동북부를 경영하는 수송루트는 가장 중요한 조선 동북부쪽의 철도수송력이 부족하거나 선박이 불충분함으로 인하여 무역량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았다. 결국 ‘裏日本’이나 「북선루트」의 경제적인 의미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니이가타 등의 지역의 ‘裏日本’ 탈각의 꿈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번역 최인철)

    <참고문헌>

    阿部恒久『’裏日本’はいかにつくられたか』日本経済評論社、1997年

    加藤圭木『植民地期朝鮮の地域変容―日本の大陸進出と咸鏡北道』吉川弘文館、2017年

    加藤圭木「日露戦争下における朝鮮東北部の「軍政」」『一橋社会科学』8巻、2016年(http://doi.org/10.15057/28148)

    古厩忠夫『裏日本―近代日本を問いなおす』岩波新書、1997年

    芳井研一『環日本海地域社会の変容―「満蒙」・「間島」と’裏日本’』青木書店、2000年

    전 회의 글 “장진과 밀양, 두 마을 이야기”

    필자소개
    히토츠바시대학 전임강사. 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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