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아이 방을 바꾸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22] 외상
        2017년 08월 11일 0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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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2일,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자 산장과 약속한 일요일이었다. 오늘의 출발점은 우이동이었다. 도원사를 거쳐 영봉코스를 탔다. 산을 오르며 딸이 재잘거렸다.

    “방을 바꾸고 나니까 공부가 더 잘 돼.”

    그저께였다. 딸아이 소원을 이뤄 줬다. 딸은 두어 달 전부터 방을 바꿔 달라고 졸랐다. 책과 책상과 침대가 각방으로 흩어져 있는 게 답답하다는 이유였다. 공부가 안 된다고 투정 부렸다. 아내는 고등학교까지만, 이라는 전제를 달고 승낙했다.

    방을 옮기는 것은 나의 일이었으나 틈이 나지 않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이번 추석 연휴를 활용해 옮겼다. 딸이 배치도를 그렸는데 아무리 봐도 짐이 다 들어갈 수 없었다. 나름대로 궁리했다. 딸과 아내는 나의 구상을 불만스러워하며 잔소리를 했다. 나는 흘려들었고, 땀을 뻘뻘 쏟으며 짐을 빼고 넣었다. 책상, 옷장, 침대 따위 무거운 가구를 얼추 혼자 옮겼다.

    “이래서 남자가 필요한 거야.”

    모녀는 조잘거렸고, 잔짐을 옮겼다. 완성하니 짐이 전부 들어갔고 효율성도 높았다. 딸은 흡족해했다.

    모녀는 친구였다. 북한산 영봉에서 도봉산을 배경으로

    오늘 산행엔 아내가 동행했다. 예상보다 심했다. 아내는 채 15분도 되지 않아 뒤처졌다. 그때부턴 한 번에 100미터를 오르지 못하고 쉬었다 걸었다 반복했다. 저만치 앞서던 딸아이가 꼼지락대는 아내 곁으로 왔다.

    “엄마, 쉬지 말고 천천히 계속 걸어. 발걸음은 넓게 하지 말고, 좁게 반걸음씩. 높게도 하지 말고.”

    나는 아내가 메고 있던 배낭을 건네받아 2개를 걸머졌다. 아내 덕에 겨우 북한산장에 도착했다. 족히 2시간은 더 걸린 듯했다. 딸과 나만 왔으면 하산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산장에 들어가서 라면 1개와 막걸리 1통을 주문했다. 젊은 여성이 돈을 받았다.

    “엊그제 와서 라면을 외상으로 먹고 간 사람입니다. 추가로 받아야 합니다.”

    바쁘게 장사하고 있던 산장 노부부와 가족들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진짜로 왔네요.”

    사발라면을 줬던 산장 아들이 반가워했다. 엊그제만 해도 한산하던 탁자가 안팎으로 꽉 찼다. 우리는 마당 탁자 한편에 끼어 앉았다. 아내는 배낭에서 추석 음식을 잔뜩 꺼냈다. 딸과 아내에게 산장 식구들의 반응을 전했다.

    “외상 갚는데 진짜 왔냐며 놀라는 눈치야. 아마 외상 먹고 갚지 않은 나쁜 사람이 있었나 봐. 산 밑에서 여기까지 짐을 메고 올라오려면 정말 많이 힘들 텐데.”

    “맞아. 갚아야지.”

    모녀는 이구동성 맞장구쳤다. 옆자리 남성이 동행한 여성에게 산장 막걸리 값이 비싸다고 여러 번 주절댔다. 귀에 거슬려 한마디 하려다 관뒀다. 산장 막걸리 값이 1통에 3,000원인데, 산상까지 메고 올라오는 것에 견주면 비싼 게 아니었다. 관악산과 수락산 등에선 1사발에 2,000원이었다. 1통이면 2사발 4,000원이 나왔다.

    백운대 밑까지 갔다. 아내는 다리 아프다며 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딸과 나는 내친김에 백운대를 올랐다. 정상에서 딸아이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백운대 정상에서

    위문과 대서문을 거쳐 산성 입구로 하산했다. 하산을 마쳤는데, 딸아이 감기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백운대 오르내릴 때에 걸린 듯싶었다. 백운대엔 바람이 차갑게 불고 있었다. 딸은 바람막이를 입은 상태였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아빠 때문이야.”

    딸은 코맹맹이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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