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이 최우선이긴 합니다만
    [왼쪽에서 본 F1] ‘헤일로 디바이스’에 대한 논란
        2017년 08월 10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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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시즌부터 F1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바로 ‘헤일로 디바이스( halo device )’라고 불리는 새로운 안전장치가 의무 장착되는 것입니다. 헤일로 디바이스는 F1 레이스카의 콕핏 주위에 달무리와 같은 단단한 파이프 모양 구조물을 배치해, 만약의 사고로부터 드라이버의 머리를 보호해주는 장비입니다.

    F1 드라이버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진 최근의 사고가 대부분 머리에 가해진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이라는 분석에 따라 6년 동안 준비한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입니다.

    F1을 포함한 그랑프리 레이싱은 ‘오픈 콕핏(open cockpit)’을 기반으로 합니다. 현대의 F1은 다른 포뮬러 레이싱과 마찬가지로 ‘오픈 휠(open wheel)’이면서 자동차의 뼈대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모든 겉치장을 떼어낸 차이기도 합니다.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안전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현재의 F1 레이스카는 과거와 비교하기 힘든 높은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게 됐지만, 드라이버의 머리가 노출되는 오픈 콧핏의 개념을 유지하는 이상 근본적으로 안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F1 드라이버의 헬멧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대부분 사고로부터 드라이버의 머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제작됐지만, 최근 10년 사이 포뮬러 레이싱에서의 치명적인 사고로부터 생명을 지키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F1 테스트 도중 마리아 데 비요타가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뒤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2014년에는 일본 그랑프리 도중 다른 차량의 사고 처리를 위해 트랙에 들어왔던 중장비와의 충돌로 머리에 부상을 입은 쥴스 비앙키 역시 목숨을 잃었습니다.

    F1과 같은 포뮬러 레이싱 경기에서도 비슷한 사고는 많았습니다. 2009년에는 전설적인 챔피언 존 서티스의 아들 헨리 서티스가 날아온 타이어에 맞아 세상을 떠났고, 2015년에는 미국의 인디카에서 저스틴 윌슨이 다른 차량의 사고에서 떨어져 나온 노즈콘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F1 드라이버의 사망 사고와 공통점은 역시 오픈 콕핏의 철학 덕분에 드라이버의 머리가 위험에 노출됐다는 점이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고들로 대표되는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F1을 주관하는 국제자동차연맹 FIA에서는 드라이버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 고안에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완전 밀폐형의 전투기 조종석과 같은 ‘캐노피(canopy)’를 포함해 투명 바람막이 형태의 ‘에어로스크린(aeroscreen)’ 등이 디자인되고 실제 레이스카에 장착되어 테스트 됐습니다. 그리고, 7월 말 에어로스크린의 테스트 이후 FIA는 ‘헤일로 디바이스’를 2018시즌부터 의무 장착시킨다고 최종 결정했습니다.

    2018년부터 의무 도입이 예정된 ‘헤일로 디바이스’

    헤일로 디바이스가 드라이버의 머리를 모든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2018시즌부터 헤일로 디바이스 의무화에 따라 드라이버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F1 그랑프리에 나설 수 있게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강력한 안전장치의 도입은 환영받을 만한 일입니다. 적어도 ‘외부에서 본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안전장치의 도입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F1에선 헤일로 디바이스라는 강력한 안전장치 도입에 반대의 목소리가 큰 편입니다. 팬들의 반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고, F1 관계자는 물론 일부 드라이버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냅니다. 헤일로 디바이스의 의미와 기능에는 찬성하면서도, 바로 내년 도입에는 반대하는 다소 복잡한 경우도 나오고 있습니다.

    F1에서 경쟁하는 드라이버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도입되는 시스템에 대해, 직접적인 혜택(?)을 보게 될지 모르는 F1 드라이버들이 반대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보기엔 상당히 이상한 일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모두가 쌍수를 들고 헤일로 디바이스의 도입에 찬성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일단 F1 드라이버의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GPDA(Grand Prix Drivers’ Association)에서는 팬들과 일부 F1 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헤일로 디바이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GPDA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알렉산더 부르츠는 GPDA 차원에서 공식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고, 네 차례나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던 현직 GPDA 디렉터, 세바스찬 베텔의 경우에도 헤일로 디바이스를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 GPDA의 디렉터 중 한 명이 된 로망 그로장을 포함해 일부 드라이버는 앞서 ‘개인적으로’ 헤일로 디바이스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드라이버들의 SNS나 인터뷰 내용에서는 헤일로 디바이스를 비판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F1이라는 바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드라이버들의 이런 반응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전 문제에 너무 매달리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고, 최고의 레이스카에 어울리기엔 아름답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2017시즌 F1 무대에서 경쟁 중인 20명의 드라이버

    스무 명의 드라이버가 단 하나의 목표, 챔피언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F1은 매우 단순한 스포츠인 것처럼 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실제로 단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헤일로 디바이스와 같은 안전장치 문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단순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F1 드라이버들의 노동조합, GPDA의 입장도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노동조합이라면 무릇 자기들의 밥그릇이나 걱정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충분히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만 투쟁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복잡한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터스포츠에 종사하는 노동자인 F1 드라이버들도 인간입니다. 다른 노동자들이 그런 것처럼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부분 모터스포츠에 나서는 드라이버는 더 빠른 속도를 내면서 다른 드라이버와의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당연히 상대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된 경쟁이겠지만, 몸을 사리고 조심스럽게, 얌전하게 차를 조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때로는 생사를 넘나드는 한계 상황에 몸을 내던지는 것이 레이스에 나서는 이유라고 말하는 이도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1970년대에 처음 F1에서 드라이버의 안전 문제를 제기한 드라이버들이 ‘겁쟁이’라고 비난을 받고, 안전 기준 적용에 대한 많은 반대가 나온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F1 초창기만 해도 F1 드라이버는 고대 로마의 ‘검투사’와 비슷하다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생명을 담보로 끊임없는 경쟁을 계속하고, 경기장에 모인 귀족들은 검투사의 목숨을 건 사투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으니, 검투사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망 사고가 발생하던 1970년대부터 지금과 같은 높은 안전 기준이 만들어지기까지 드라이버들 간의 반목과 갈등도 적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옳은 것’이 존재한다고 보기 힘든 문제를 고민하는 F1 드라이버라면 개인적 고민도 많았을지 모릅니다. 드라이버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도, 그렇다고 완전히 안전만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돈 몇 푼 더 준다고 해서 노동자의 이상향이 건설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 기준을 높이는 규정만으로 F1 드라이버가 원하는 꿈의 무대가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헤일로 디바이스는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F1의 안전 기준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생명이 가장 소중하고,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한마디로 모든 사람의 고민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위험한 것을 모두 피할 생각이라면 F1이니 레이스니 모두 집어치우고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요.

    매우 위험할지도 모르는 속도에 대한 도전과 목숨을 건 경쟁, 그리고 소중한 드라이버의 생명과 안전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 어떤 위치에서 합의점을 찾을 것인지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있는 곳이어야 비로소 사람 사는 곳이란 생각도 듭니다.

    누군가 절대적인 가치를 이야기한다면, 그 의미에 대해, 정말 그런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지극히 당연해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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