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앉아 먹는 유부초밥
[밥하는 노동의 기록] 혼밥이 어때서?
    2017년 08월 09일 0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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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부초밥이 좋았고 동생은 돈까스가 좋았다. 달고 짭짤한 유부피 안의 새콤한 밥이 좋았고 곁들이로 주는 아작아작한 나라즈께가 좋았고 대팻밥을 한 번 말아 그 위에 검은 깨를 뿌린 유부초밥을 얹어내는 차림새도 좋았다.

그러나 내 동생에겐 돈까스가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유부초밥을 시켜주고는 길 건너 경양식집에 가서 동생에게 돈까스를 사줬고 우리는 함께 돌아왔다. 매우 합리적인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 탓에 나는 요샛말로 혼밥을 열 살 무렵에 시작했다. 나는 혼자 앉아 유부초밥 하나를 두 번에 나눠먹고 미소시루를 한 모금씩 마시다 나라즈께를 아작아작 씹어 먹고 나서 또 유부초밥 하나를 두 번에 나눠 천천히 먹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었고 아무 생각이나 날 때도 있었다.

우리 엄마에게 세상 고마운 일이 나를 열 살 때 혼자 유부초밥집에 데려다 놓은 일이다. 엄마는 밥의 본질이란 무엇을 먹느냐이지 누구와 먹느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유부초밥도 먹고 혼자 영화도 보고 조금 지나서는 술도 먹고 고기도 2인분씩 야무지게 시켜 먹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래서 혼밥이나 혼술이라는 말이 매우 언짢았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트렌드라 추켜세우기도 하고 자폐라 메다꽂기도 하는지 모르겠다. 황교익의 말마따나 밥의 사회적 기능이 타인과의 소통이라면 그 소통을 막아서는 것을 먼저 찾는 것이 순서다.

자기 입맛이 보편타당하다 확신하는 직장상사, 밥먹으러 가자며 끌고 가서는 네가 물도 떠오고 수저도 먼저 놓아라 괜히 눈치 주는 선배, 밥을 앞에 두고 이래라 저래라 말이 길어 마주앉은 사람이 수저도 제 때 못 들게 하는 꼰대, 그리하여 한 끼 밥 앞에서까지 자신이 권력관계의 윗자리에 앉아있음을 기어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그들의 걱정은 남이 혼자 밥 먹고 술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랑 안 먹어주는 것이다. 같이 밥 한 끼 먹으며 에헴하고 같이 술 한 번 먹으며 형이라고 불러라 무게 잡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소통의 방법인데 그걸 못하게 생겼으니 애가 타겠지.

싫어도 참고 먹어야 한다고? 아이고 어르신 선생님 너나 참으세요. 그렇게 천 번쯤 참다보면 누군가 다가와 함께 밥 먹자 할 날이 올 거에요.

나라즈께도 대팻밥도 미소시루도 없지만 검은 깨는 올린 유부초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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