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의 노래와
    날개 꺾인 매미의 울음
    [고전 읽기-2] 가도의 '검객(劍客)'
        2017년 08월 05일 11:3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당나라 중기에 가도(賈島, 779~843)라는 시인이 있었다. 가도는 안록산의 본거지가 있던 허베이성 범양(范陽)의 가난한 평민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힘겹게 자랐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된 뒤에도 그의 고향은 번진(蕃鎭)이 설치된 절해고도와 같은 변방이었다.

    청년 시절에는 가난 때문에 출가해 ‘무본(無本)’이란 법명의 스님으로 지내기도 했다. 가도는 천재적 기질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피가 마르는 노력으로 한 구절 한 구절을 각의구공(刻意求工, 온 마음을 쏟아서 정교함을 구함)하는 유형의 시인이었다. 그 스스로도 “이 두 구절을 세 해 만에 얻어/ 한 번 읊조리니 눈물 두 줄기 흘러내려라”[兩句三年得, 一吟雙淚流。<題詩後>] 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를 ‘고음시인(苦吟詩人, 고통스럽게 읊조리는 시인)’의 전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도의 초상

    고통스러운 읊조림을 토해내는 시인답게 가도는 ‘퇴고(推敲)’라는 낱말의 기원이 된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가도가 가난한 문학청년이던 시절 한밤중에 옛날 벗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려다 문득 시상이 떠올랐는데,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고[밀어제치고](僧敲[推]月下門)” 하는 대목에서 ‘두드리다[敲]’로 할지 ‘밀어제치다[推]’로 할지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다음날에도 이 시구를 정하지 못한 가도는 당나귀를 타고 길을 가면서도 두드리는 손동작과 밀어제치는 손동작을 되풀이하다, 당시 경조윤(京兆尹, 수도 장안의 시장)의 벼슬을 하고 있던 한유(韓愈)의 행차 행렬 앞에서 나귀에 내리지 않는 잘못을 범했다. 한유 앞에 끌려간 가도는 ‘두드리다’와 ‘밀어제치다’의 어감 사이에서 고민하다 행차를 범했다고 설명했다.

    그 자신이 시인이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한유(韓愈)는 전혀 노한 기색이 없이 진지하게 가도의 말을 들으며 시구를 토론했다. 한유의 의견은 ‘두드리다[敲]’가 되레 밤의 정적을 도드라지게 만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고, 가도는 이를 받아들였다.

    한유로부터 시재(詩才)를 인정받은 가도는 이후 한유와 교유하며 그의 권유로 과거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가도는 과거 시험 답안지에 당시의 고관대작을 풍자한 <병든 매미[病蟬]>라는 시를 써서 ‘과거 시험장의 열 가지 나쁜 수험생[擧場十惡]’의 하나로 낙인이 찍혔다.

    병든 매미

    병든 매미가 날 수 없어

    내 손바닥 안으로 기어들어오네

    부러진 날개는 파리하도록 얇고

    스산한 울음은 맑음을 다했네

    뱃속에는 맑은 이슬이 엉겨있건만

    속세의 티끌이 눈동자를 침범하네

    참새와 솔개와 까마귀 따위야

    모두들 오로지 너를 해칠 생각뿐이구나

    病蟬

    病蟬飛不得, 向我掌中行。

    拆翼猶能薄, 酸吟尚極淸。

    露華凝在腹, 塵點誤侵睛。

    黄雀並鳶鳥, 俱懷害爾情。

    <병든 매미>는, 힘없고 배경 없지만 이 세상을 향해 토해내고 싶은 청량한 언어를 가슴 가득 품고 있는 시인 자신의 울분을, 병들고 날개 꺾였지만 맑고 서늘한 울음을 가득 품고 있는 병든 매미에 빗대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고관대작들을, 오로지 매미 쪼아 먹을 생각 밖에 없는 참새와 솔개와 까마귀에 빗대었다.

    ‘거장십악(擧場十惡)’으로 꼽힌 가도는 한 동안 과거시험에서 계속 낙방했지만, 장년에 접어들어 장강현(長江縣)의 주부(主簿)로 발령을 받은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십여 년의 각고 끝에 미관말직의 벼슬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평생 가난하게 살다간 시인 가도에 대해서는 기록이 충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과거에 급제할 즈음에 쓴 것으로 보이는 오언절구 한 수가 매우 신선하다. <검객>이라는 시이다.

    검객

    십년 동안 칼 한 자루를 갈아

    가을서리 같은 칼날 아직 써보지 않았다네

    오늘 이 칼을 잡고 그대에게 보여주노니

    이 세상에 고르지 않은 일이 무엇이던가?

    劍客

    十年磨一劍,

    霜刃未曾試。

    今日把示君,

    誰有不平事?

    기록이 부족해 어떤 맥락에서 쓰인 시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어렵게 과거시험에 급제한 뒤, 이제 세상을 개혁해보고자 하는 자신의 뜻을 ‘칼’이라는 사물을 빌려 영물언지(詠物言志, 사물을 노래하면서 자기 뜻을 말함)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십년 동안 칼을 갈아 이제 이 세상의 ‘고르지 않은 일[不平事]’을 다듬어보겠노라.

    세상을 향해 토해내고 싶은 맑은 소리가 뱃속 가득 응결되어 있지만 참새와 까마귀의 밥으로 살아와야 했던 시인이 득의에 차서 쓴 이 시는, 촛불 시민혁명 이후 산적한 적폐 청산을 과제로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이기도 하다.

    앞 회의 글 [고전읽기-1] ‘허균의 《한정록》에서‘ 링크

    필자소개
    철학연구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