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위한
    '노동자 연석회의' 제안한다
    [기고]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 실현 호소
        2012년 08월 23일 0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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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이하 제안자모임)의 소집 책임자인 양경규 전 민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이 현재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는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제안자모임>의 입장을 기고 글로 보내왔다.
    <제안자모임>은 통합진보당의 출범을 전후하여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며 진보신당 또한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으로서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롭게 노동정치를 시작하자는 취지로  민주노조운동의 활동가들과 진보정치의 활동가들이 모여 작년 12월 결성한 모임이다.
    <제안자모임>은 그동안 지역별, 산별 조직을 구성하고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조직화와 함께 그 내용을 고민해 온 조직으로 공개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제안자 모임>은 현재 전국적으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노동자선언 운동과 지역토론회 등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며 이후로는 공개적인 활동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기고글의 앞 부분은  현 상황에 대한 입장과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노동자 연석회의’를 제안하는 내용이며, 뒤의 참고 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고민과 흐름들에 대한 의견과 생각을 담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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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진당의 붕괴를 코앞에 두고 진보정치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위기가 당내 부정부실선거와 폭력사태, 두 의원에 대한 제명처리를 둘러싼 책임공방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통진당내 각 분파의 인식은 참으로 한심하다.

    그런 문제만 없었더라면 통진당은 진보정당이라는 간판을 달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정당이었는가? 최근 통진당 사태는 진보정당운동 위기의 본질이 외화된 모습일 뿐이다.

    통진당은 그동안의 진보정당운동의 과정에서 노정된 한계와 문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안고 출발한 정당이었다. 통진당 사태는 언제고 직면하게 되었을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의 시기를 당겼을 뿐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한 시기가 끝났음을 확인하며

    97년 국민승리 21과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그 이전 시기의 진보정당운동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극복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노동자정치운동의 시도였다.

    이전 시기 대중적 토대의 부재와 이념적 편차를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결합과 사회주의적 이상과 가치에 대한 지향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대중적이고 계급적인 진보정당운동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이제 15년이 흐른 지금 진보정당운동은 피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민중적 요구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이는 서로 경쟁하는 진보운동의 다양한 세력과 지향들이 공존하는 진보정치,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자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한 노동정치로 규정되던 한 시기의 순환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통진당 사태의 본질은 바로 다양한 세력의 공존이 사실은 진보정당의 정체성 훼손과 패권으로 대체되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계급정치의 실종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반통진당에 머무르지 말고 지난 시기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통해 노동정치와 진보정당운동의 실패를 짚어 보고 새로운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길을 모색해 보는 일일 것이다.

    지난 시기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진 진보정당운동의 역사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가치를 포기한 진보정당이 어떻게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몰락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강령의 거듭되는 후퇴를 통하여 사회변혁의 길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방향을 설정했을 때 진보정당이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를 확인시켜 준 과정이었다.

    사회변혁을 포기한 진보정당은 그 활동공간을 필연적으로 의회로 이동시켰고 이는 전술로서의 의회를 넘어 의회주의에 진보정당을 복속시켰다. 의회주의는 당연하게도 의원이라는 권력중심의 당의 구조와 명망가가 주도하는 대리정치로 이어졌다. 의회주의는 또한 당의 운영구조를 비민주적인 구조로 탈바꿈시켰고 당내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리도록 만들었다.

    당연하게 노동현장의 정치, 지역정치는 실종되었고 당의 대중은 의회주의와 패권주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의 노동정치, 계급정치를 책임져야 할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등 대중운동 조직들은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명망가들에 당을 맡겨 둔 채 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와 조합원들을 수단화하는 정치방침을 강제하면서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책임을 송두리째 팽개쳐 버렸다.

    이러한 진보정당운동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 바로 통진당의 창당이었다. 통진당은 새로운 진보를 위해 ‘탈노동’을 내세우며 가뜩이나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해 간 진보정당을 자유주의 세력의 왼쪽으로 위치 지웠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해서 의회권력을 빌은 공세를 계속하더니 급기야는 연립정부를 들이밀며 대중운동의 개량화를 부추겼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진보라는 이름으로 진보운동이 면면히 이어온 진보운동의 가치와 문화를 재단하며 내놓은 혁신보고서는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후퇴이자 진보정당에 대한 정체성을 훼손했다.

    당내 권력을 놓고 하루도 거르지 않던 싸움은 급기야 분열로 나아갔다. 자신들의 당에 노무현과 전태일의 만남이라며 한껏 그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에 대하여 날선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

    현장은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이 과정에서 노동 현장은 노동정치를 둘러싸고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권력과 자본의 공세를 넘고자 분투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민중의 희망을 말하는 진보정당은 노동자들에게 절망과 냉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악법을 만든 정치세력들과의 통합과 야권연대는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흔들었고, 그렇게 치룬 총선에서 노동자들은 울산, 창원 등 주요 노동자 도시에서 노동자 후보의 낙선과 형편없는 지지율의 추락을 목도해야만 했다.

    제안자모임의 전국회의 모습(사진=제안자모임)

    그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선거방침은 현장 노동자들의 혼란을 더욱 부추겼고 노동자들의 현장투쟁을 철저하게 정치적 조건에 내맡겼던 1-10-100 투쟁은 노동자들의 냉소를 불러오며 민주노조의 투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어진 통진당의 부정부실선거 문제와 당내 폭력사태 등은 다시 한 번 노동정치에 대한 현장의 최소한의 희망마저 꺼버렸다. 통진당 사태는 민주노조운동을 포함한 진보운동 전체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확대시켰다.

    진보정당으로 자처한 통진당으로 인하여 현장 노동자들은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생소한 이름,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이 지독한 혼란의 와중에도 현장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했고 총파업에 나서야 했다. 민주노조의 깃발이 하루 아침에 자본의 공세에 무너져 내렸고 공장은 국가권력의 비호하에 용역깡패의 야만의 폭력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보정당은 없었다.

    현장은 진보정당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진보정치에 대하여 냉소를 넘어 무관심이 현장을 뒤덮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노동정치는 말도 꺼내지마라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도대체 진보정당이 우리 노동자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느냐며 모두 고개를 흔든다.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위기상황과 노동계급의 조건을 내세우며 지금은 정치운동과 단절하고 노동운동의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현장의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장의 모습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대중적 토대가 밑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뼈아픈 평가 속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을 제안한다

    노동정치와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때이다. 그러나 지난 시기에 대한 뼈아픈 평가와 함께 현장 노동자들을 다시 정치의 주체로 세울 내용과 주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출범대회(위)와 중앙위 폭력사태(아래)

    따라서 통진당의 혁신을 통해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이제 접어야 한다.

    진보신당이 새로운 노동정치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한때 탈노동을 이야기하며 통진당을 창당했다가 이제는 다시 노동 중심의 대중정당을 내세우는 정치세력에게 진보정당의 미래를 맡겨서도 안 될 것이다.

    이제는 노동을 진보정당운동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어떤 정치세력에게도 다시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이에 우리 <제안자 모임>은 노동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진보정당, 노동자정당의 건설을 위해 노동자들이 하나가 되는 정치운동,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전선을 제안한다.

    이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전선이 이루어질 때만이 그간의 노동정치, 진보정당 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전선이 구축될 때 현장의 냉소와 혼란을 극복할 수 있고 노동계급 전체와 함께하는 노동 중심의 새 노동자 정당을 건설을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야 난마처럼 얽혀 백가쟁명으로 진보의 허울을 쓰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명망가들과 그 정치세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정치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을 위한 3가지 전제

    동시에 우리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이 단순하게 특정한 정치세력에 대한 반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진보정당의 구체적인 상과 내용은 이후 토론과 대중적 합의로 남겨 놓는다 하더라도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을 위한 출발로서 다음 세 가지의 전제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 첫째는 앞으로 만들어 갈 노동정치, 진보정당 운동의 기본적인 지향점에 대한 확인이다. 즉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갈 정당은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견지하며 반자본주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정당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둘째는 노무현 정권의 철학과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이를 진보정당에 반영하려는 정치세력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참여당계가 명확하게 사회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사회변혁이라는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대중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이상 같은 길을 갈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참여계에 대한 이런 입장은 특정한 세력에 대한 배제가 아니라 진보정치의 철학과 정책기조가 될 수 없는 노선과는 결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확인이다.

    그 셋째는 12월 대선을 두고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권력참여를 위한 야권연대와 연립정부 구성에 대하여 분명한 반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노동 중심의 독자적 진보정당의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 정치운동과 대중운동을 포괄하는 폭넓은 공동대응전선을 구축하고 독자적인 노동자.민중후보 전술을 적극 검토한다는 공감대가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노동자 연석회의>를 제안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제 통진당의 한계를 딛고서 노동 중심의 새 정당을 고민하기로 새로 결단한 노동자들과 그동안 현장에서 계급정치와 사회변혁을 고민해 온 노동자들이 모두 함께 이러한 노동정치의 통일의 길에 만나기를 제안한다.

    투쟁의 현장에서 노동자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과 자본주의의 야만에 쓰러지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비정규직과 영세노동자들이 이 노동정치의 통일의 길에 함께 하기를 제안한다.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운동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며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노동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다시 몸을 낮추며 책임을 다하겠다는 노동운동의 선배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만나기를 제안한다. 과거에 머무르기 보다는 미래의 전망을 공유하며 힘을 모으는 모든 노동자들이 이 길에 함께 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이들 모두가 만나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을 위해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노동자 연석회의>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기구의 구성을 위해 앞으로 구체적인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다른 입장을 가진 노동정치 그룹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몸을 낮추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 기구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든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이 상층의 결합이 아닌 현장과 지역에서의 자발적인 조직화를 통한 대중운동이 되도록 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 갈 것이다.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시작이 될 노동정치의 통일이 상층의 정파연합에 머무르며 노동계급을 대상화하는 운동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이 실천의 성과를 모아 노동자 정치운동의 튼튼한 토대를 형성하고 이를 발판으로 모든 진보정치 그룹들과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8월 23일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

     

    * 노동정치와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흐름에 대한 의견

    우리는 이런 제안과 함께 현재 새로운 노동정치, 진보정치를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노동자대중과 다른 정치그룹들에 대하여 우리 제안자 모임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제안하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통일의 의미가 보다 명확하게 확인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정치그룹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그 차이를 확인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함이다.

    우리는 각 그룹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동안 우리내부의 토론을 통하여 지난 진보정당운동에서 우리가 가졌던 오류를 솔직하게 털어놓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노동정치와 진보정당운동의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었음을 뼈아프게 반성한다.

    진보정당으로 하여금 사회변혁이라는 이념적 정체성을 상실하게 한 것은 바로 사회변혁의 중심축으로서의 전망을 상실하고 공장 안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에 천착한 조합주의 운동으로 떨어져버린 민주노조운동이었다.

    진보정당이 전체 노동자 민중의 운동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비정규직의 양산 속에서 급격하게 진행된 노동계급의 분절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노동계급의 대표성을 상실해 간 민주노조운동 때문이었다.

    현장과 지역을 아우르며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의 결합을 만들어내야 할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자들의 실천적인 참여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진보정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원인이 되었다.

    진보정당의 의회주의와 대리주의를 부추긴 것은 민주노조운동이었으며 대중운동에 기대어 권력을 탐한 명망가들을 제어하지 못한 것도 민주노조운동의 책임이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노동정치, 진보정당운동의 위기는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실패로부터 기인한 것이며 바로 그의 실패의 책임은 민주노조운동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는 이러한 반성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함께 노동자가 주체로 참여하는 진보정당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갈 것이다.

    재창당을 말하는 구당권파, 노동중심의 신당창당을 말하는 혁신모임에 대하여

    통합진보당의 정치그룹들의 입장의 출발은 동일하다. 서로에 대하여 비수를 들이대면서도 여전히 그 기본적인 입장은 통합진보당을 혁신해서 재창당하자는 것이다.

    신.구당권파 모두 당면하고 있는 당의 혼란, 즉 부정부실선거 문제와 이를 둘러 싼 당내의 갈등, 그 과정에서 도출된 구 당권파 의원들의 사퇴문제, 당내 폭력사태의 해결 등의 해결을 혁신재창당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 정도의 차이가 이들의 차이의 전부이다. 그 어디에도 지난 15년 진보정당운동이 가졌던 한계와 오류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은 없다. 이러한 오류를 심화시킨 통진당 창당에 대하여 결코 틀린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당이 지금 저렇게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되뇌고 있다.

    통진당의 구당권파는 오랜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중심을 이루어 온 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진보정당운동의 당면한 위기에 대하여 우선 그 책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세력이다. 스스로도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자신들의 패권주의에 그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고 인정했으면서도 패권주의에 대한 폐해를 걷어내지 못했다.

    진보정당으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강령개정은 진보정당운동의 방향을 틀어버린 일이었다. 진보대통합 과정에서 선 진보정당 통합이라는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뒤로 하고 앞장서 국민참여당을 불러 들인 것도 구 당권파였다. 지금 국민참여당이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바로 그것이 자신들의 책임이자 오류였음을 인정하는 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신당 창당을 열어 놓고 있는 혁신모임의 태도 또한 어처구니가 없다. 통진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방향으로 탈노동을 이야기했던 그들이, 여전히 그 연장선에서 당내 갈등의 해결만 이루어진다면 통진당에 남겠다는 사람들이, 노동 중심의 신당창당을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신당 창당의 기본적인 근거로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위한 진지구축을 드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말하는 노동 중심이 도대체 무엇일까 싶다.

    이들에게 노동은 새로운 정당을 위한 물리적 토대 정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노동이 중심이 되는 당이라면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사회를 변혁을 말하고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말하야 하지 않겠는가?

    <제안자 모임>은 이들에게 분명한 입장을 요구한다. 진정으로 진보정당의 혁신과 노동 중심의 신당 창당을 말하고자 한다면 지난 시기의 오류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겸손한 자기성찰을 대중에게 말해야 한다.

    똑같은 오류를 범하면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어물쩍 주장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노동 중심을 이야기하지만 어떤 노동 대중도 그 진정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통진당의 각 분파들이 노동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사회변혁의 목표를 갖는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는 명확한 자기선언을 할 때 그 진정성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진정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자신들을 중심에 세우기 보다는 자기성찰을 통해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통진당을 탈당하며 노동 중심의 정당을 말하는 노동자들에 대하여

    처음부터 무망했던 ‘통진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 중심성의 강화’는 이제 명확히 그 한계가 확인되었다.

    동시에 신당추진 그룹인 혁신모임이 내세우는 노동 중심의 신당추진이 사실은 또 한 번 노동 대중을 기만하는 일이라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통진당에 한 때 몸을 담았던 노동자들이 통진당의 오류를 확인하고, 신당 추진의 허구성을 직시하며 다시 노동계급에 기반한 노동정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통진당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이 통진당이 내세운 혁신의 실패로부터 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통진당이 갖고 있었던 기본적인 오류를 분명하게 확인하며 새로운 출발을 결단한 것이라 믿는다.

    사회변혁의 기본노선을 폐기하고, 의회주의와 대리주의를 통해 노동자들을 대상화하고, 그리고 당내 명망가들이 당을 좌지우지하면서 당내 민주주의를 실종시켰던 통진당에 대하여 엄정한 평가를 내린 것이라고 믿는다.

    지지철회와 탈당이 정치적 냉소주의와 조합주의로 머무른다면 이는 또 다시 통진당과 신당추진그룹에 면죄부를 주고 노동자들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에 두고자 하는 명망가들의 또 한 번의 맹동을 부추기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종래 진보정당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정치운동과 대중운동을 분리하여 노동운동의 혁신이 정치운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통진당의 오류에 힘을 실었던 일련의 주장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 <제안자 모임>은 한때 통진당에 머물렀던 노동자들의 이러한 결단이 노동자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 노동정치의 새 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함께 열 내일의 노동정치, 진보정당운동의 길이 같다면 우리는 힘을 모으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에 대하여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구심이었던 민주노총은 노동정치의 실패를 방기했다. 노동정치가 실패의 일로를 걷는 동안 민주노총은 무기력했다.

    내놓는 지침은 현장에서 외면당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껍데기만 남은 정치방침과 묻지마 세액공제, 철저하게 정치일정과 상황을 고려한 투쟁지침들은 돈대고 몸대는 노동정치의 폐해와 대리주의만 강화시켰다.

    2012년 5월 민주노총의 노동절 집회(사진=민주노총)

    이미 그 실효성을 상실한 소위 배타적 지지방침을 신주단지 떠받들 듯이 끌고 감으로써 노동정치의 통일은커녕 혼란만을 부추겼다.

    현장에 혼란을 주고 2012년 총파업 투쟁방침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대중투쟁을 오로지 의회주의에 기댄 진보정당의 전략에 맡겨버린 2012년 총선방침에 대한 반성도 없었고, 최근 통진당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과 성찰은 뒤로 한 채 그럴듯한 수사를 통해 여전히 통진당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려는 데만 급급했다.

    민주노총은 강기갑 체제의 등장을 진보정당 운동의 혁신이자 노동정치의 새로운 출발로 간주하며 다시 또 통진당 중심의 정치방침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다가 제명부결이 되고나서야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우리는 민주노총의 8월 13일 중집결정이 노동을 중심에 놓지 않았던 정치세력에 대한 분명한 단절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간의 오류로 인해 발생한 현장의 혼란과 민주노총 집행부의 책임이나 입지약화를 모면하고자 하는 미봉책이라면 노동계급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새정치특위를 통해 대선에서의 노동자.민중후보 전술을 통해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입장이 진정한 반성과 새 정치에 대한 의지의 표명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실천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동시에 우리는 민주노총이 새로운 정치운동에서 어디에 위치해야 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민주노총은 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현장 노동자들의 조건을 엄밀하게 평가하고 이 연장선에서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노동자정치운동의 한 순환이 끝난 시점이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노동자의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한 노동정치의 한 시기가 끝났음을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 시기의 순환 이후 지금은 노동현장에 다양한 정치세력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제는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적 틀을 통한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정치방침으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신뢰가 무너진 현장을 상대로 다시 민주노총이 정치방침이라는 이유로 대중운동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민주노총은 큰 틀에서의 노동 중심의 노동정치의 방향과 노선을 제시하고 현장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정치운동의 길을 열어주는데 주력해야 할 때이다.

    진보신당에 대하여

    진보신당이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자신들의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다면 우리는 이 또한 동의하기 어렵다. 의회주의나 패권주의가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 만의 오류였다고 할 수 는 없다.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를 내세웠던 진보신당에게서 노동과 생태의 희망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진보대통합이 절대 선도 아니고 또 그 실패가 온전히 진보신당의 몫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진보신당에게 노동정치의 통일을 열망하던 대중과 소통하려고 했던 모습은 없었다.

    노동정치와 진보정당운동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지금 진보신당은 대중에게 새로운 등대도 희망도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보신당이 적어도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현 단계에서 우리 진보정당운동에 가장 중요한 대중적 토대의 한 부분임을 인정한다.

    우리는 이러한 소중한 토대가 될 진보신당이 보다 큰 틀의 노동정치, 진보정당운동을 위해 열린 자세로 현재의 국면에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무조건적인 세력연합도 당연히 배격해야겠지만 무조건적인 거부도 올바르지 않다.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거나 교조적 순결성을 갖는 고립주의를 자초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하게 확인해야 할 원칙들에 입각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놓지 않으면서, 당이 고민하고 있는 배제된 자들을 중심에 놓는 전략을 열린 자세로 추진해 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진보신당이 당 안팎의 어려움을 들어 진보신당 중심의 재창당의 논리를 세우기 보다는 보다 큰 틀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정당건설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계급정치, 노동정치, 현장정치를 고민해 온 노동자들에 대하여

    통진당의 오류와 진보신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현장의 일련의 흐름들은 새로운 노동정치, 진보정당운동의 희망이다. 전위정당을 통한 사회주의 실현과 계급정치를 꾸준히 모색해 온 그룹의 노력은 오늘 새로운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운동에 중요한 토대이다.

    현장의 투쟁을 통해 노동정치의 영역을 의회주의의 한계에 붙잡아 두지 않으려고 했던 현장정치운동 또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지향해야 할 앞으로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견지하면서 현장투쟁을 통한 현장정치운동을 형성해 온 이러한 흐름들이 이제는 노동계급 전체의 대표성을 획득하는 대중적인 진보정당으로의 전망을 여는데 중요한 토대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과거를 평가하되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전망을 같이 하는 운동을 통해 노동정치의 새 길을 여는데 보다 큰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현재의 조건과 정치운동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틀의 연대와 실천이 필요한 시기임을 함께 확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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